아픈역사에서 배운다/중국 명산,명소,문화를 찾아서

중국 명산 3 숭산

화이트보스 2008. 10. 19. 11:45

중국 명산 3 숭산

연천대협곡에서 엄청난 氣의 세례를 받다

선종 창시자 달마가 창건 수행한 소림사 품은 중악 하남성 황하 연변의 숭산(嵩山)은 중국 사람들이 상고시대 때부터 섬겨오는 천신(天神)의 산이자 황하 하신(河神)의 산이다. 숭산을 왜 동서남북 오악 중 중심이 되는 중악이며, 흔히 역사가들은 중화(中華)사상, 천명(天命)사상의 발원지라고 말하는가. 또한 중국 3대 사찰 중 하나로 선종(禪宗)의 발원지며 소림무술의 본산인 소림사가 왜 이곳 숭산에 있는 것일까. 숭산에 가보면 그 깊은 뜻을 곧 알 수 있다.


 


 


▲ 달마상.

황산은 아름다움이 빼어난 산이라면, 태산은 문화역사의 산이고, 숭산은 온몸으로 산의 기를 느낄 수 있는 신비스러운 설화의 산이다. 또한 숭산은 25억 년의 지각변화 과정을 한눈으로 체험할 수 있는 연천대협곡과, 달마가 면벽 9년간 인고수행(忍苦修行)을 했다는 달마동, 그리고 팔을 자르고 달마의 제자가 된 혜가가 머물던 1,500년 된 이조암이 있다. 한 마디로 숭산 전체가 자연사박물관이자 불교역사박물관이다.


하남성 등봉시에 위치한 숭산은 72개 봉우리가 이어져 있어서 ‘숭산산맥’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태실산과 소실산으로 구분하며 소림사와 달마동, 연천대협곡과 숭산 최고봉인 연천봉(1,512m) 같은 명승지가 모두 소실산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이번 3차 중국 그림산행은 숭산 소실산을 찾았다.


 


 

▲ 연천대협곡. 소림사탑구(少林寺塔溝) 국제무술학교 기숙사와 함께 있는 달마 홀(Dharma Hall)에 여장을 풀고, 243개 탑이 숲을 이루고 있다는 탑림(塔林)으로 향했다. 탑신에 수북히 쌓인 하얀 눈은 천 년의 역사를 침묵으로 말하며 이국에서 찾아온 원객을 맞는다.


탑림은 소림사 역대 고승들의 부도군이다. 당나라 고승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약 천 년간 소림사에서 수행, 포교한 이름 높은 스님들의 부도가 230여 개나 서 있다. 탑 모양은 시대마다 달라 육각, 사각, 원통형을 이루고 있다. 공적에 따라 1층에서 7층까지 높이도 다르다. 명나라 말 홍건적의 난 때 명성을 떨친 소림사 주방장 긴나라가 거꾸로 매달려 요리하며 무술을 연마했다는 소림사를 둘러본 후 오유봉에 있는 달마동으로 향했다.


나는 듯 계단 오르는 소림사 스님


소림사 뒤편으로 난 작은 오솔길을 따라 초조암(初祖庵)을 거쳐 달마동으로 오른다. 길바닥은 누더기 옷처럼 어제 내린 눈이 군데군데 얼어 있다. 오르는 사람이 없어서 한적한 시골길 같다.


 

 

 

 

 


 

▲ 현안적교 위의 소림무술. 초조암을 지나서 물건을 파는 민가 한 채를 더 지나니 가파른 돌계단이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다. 수직에 가까운 계단을 힘들게 오르는데 옆을 스치는 작은 체구의 스님 한 분은 소림무술이 뛰어난 듯 나비처럼 가볍게 날아오른다. 지그재그 급경사 돌계단 양옆으로 소나무는 한 그루도 보이지 않고 키가 낮은 잡목뿐이다.


달마는 세속을 등지고 이 길을 따라 달마동을 찾아 오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당나라 때 도선이 편찬한 속고승전(續高僧傳)에 의하면 달마대사의 나이 140여 세 때다. 훤한 대머리와 부리부리 한 눈, 매부리코와 늘어진 귀, 텁수룩한 구레나룻과 굳게 다문 입술을 하고 구부러진 나무지팡이 하나를 짚고 이곳을 올랐을 달마 모습을 마음으로 그려본다.


드디어 달마가 면벽 9년을 했다는 달마동에 올랐다. 발아래로는 삶의 흔적인 듯 걸어온 오솔길 끝자락에 고궁 같은 소림사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개울 건너에는 옛날에 절터였을 법한 밭뙈기 뒤로 우뚝 솟은 연천봉과 희미한 산릉들이 수묵화 한 폭을 보는 듯하다.


달마동 입구에는 묵현처(默玄處)라 새겨진 돌패방(牌坊)이 서 있다. 뜻은 침묵으로써 깨달음을 얻은 곳이라는데, 도가(道家)의 사상과는 어떻게 다르다는 것일까. 그래서 달마상을 유불도(儒佛道)가 융합한 상이라고 하는가. 굴문 기둥에 새겨진 ‘달마정좌 면벽구년(達摩靜座 面壁九年), 설법논도 완석점두(設法論道 頑石點頭)’ 글씨와 혜가의 ‘사문외시립 적설삼척(師門外侍立 積雪三尺)’ 문구가 말하듯, 어제 이곳에 내린 첫눈은 나에게 깨우침을 주려는 서설(瑞雪)이었다는 말인가. 스스로 나에게 한없는 질문을 던진다. 묵현처 석문 옆에는 초조 달마에서 6조 혜능까지의 소상이 새겨진 오석비(烏石碑)가 세워져 있다.


 

▲ 직립 암석지대 비경. 석문 계단 아래에는 조그만 마당이 있다. 이곳에서 면벽수행을 하며 틈틈이 굳어진 몸을 풀기 위한 운동으로 우주심령의 기(氣)와 호흡조절과 정신집중에 바탕을 둔 소림 무술을 창안했으며, 법경의 포교적 교화보다는 고행수도(苦行修道), 인욕정진(忍辱精進), 좌선각행(座禪覺行)을 본지로 삼고 수행하는 것을 중시하는 선종을 창시했을 것이다.


달마동을 뒤로 하고 오유봉 정상을 향해 오른다. 낭떠러지 절벽에 작은 계단길이 잡목 사이로 위험하게 나 있다. 힘들게 팔각정에 오르니 오후 3시20분. 일기가 좋지 않다. 태양은 구름에 가려 가끔 희미하게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팔각정에서 건너다본 거구의 달마상은 동쪽을 바라보고 좌선하고 있다. 달마상 뒤 능선길은 우리의 정맥길처럼 잡목이 우거진 사이로 어슴프레하게 나 있다. 등산로는 연봉으로 이어져 있어 종주산행도 가능하다고 한다.


달마상 옆으로 다가가니 짓다만 허름한 집 한 동이 있고, 10m 기단을 쌓은 위에 5m 기단을 쌓고 대리석 조각으로 달마상을 웅장하게 만들었지만, 앞에 놓인 향촉대에는 향불도 없다. 겨울이라 찾아오는 사람이 많지 않아 관리하는 사람이 없나 보다. 달마상 4면 기단 모서리에 조각된 보살상들만 힘들게 받치고 있을 뿐이다.

비경 숨었다는 삼황채협곡 찾아나서


다음날 아침 8시에 호텔을 나서니 안개가 자욱하다. 호텔관리인은 오늘 같은 날씨에는 산행이 불가능하다고 극구 만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구 대장과 딸아이까지 모두 셋이서 이조암으로 오르는 삭도정류장에 도착했다.  한참을 기다리고서야 이조암으로 오르는 삭도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조암 주위는 온통 설원의 세계다. 건너편 오유봉 산정의 달마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조암(二祖庵)은 선종 이조(二祖)인 혜가가 머물던 곳이라 한다. 혜가는 천 년 전 하늘에서 붉은 눈이 내리면 너를 제자로 삼겠다던 달마에게 자신의 팔 하나를 잘라 달마에게 바치고 내리는 하얀 눈을 붉은 피로 물들여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인간의 의지로 가능한 일일까. 혜가는 달마로부터 무엇을 확신하고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려 한 것일까. 구도 의지란 그토록 간절하고, 진리란 그처럼 처절하게 얻어지는 것일까. 그래서 혜가의 행동 하나하나가 사미승들에게는 큰 스승이라고 한다.


그런 혜가를 생각하며 우리는 이조암으로 들어선다. 이구 대장은 향촉을 사서 불상 앞에 세우고 절을 한다. 옆에 서 있던 스님이 나에게 물을 마시라고 하여 영문을 모르고 물을 받아 마셨다. 스님은 손을 내밀며 돈을 내라 한다.


이조암에는 본전 양쪽에 영험한 기운이 뿜어나오는 샘이 둘 있는데, 양쪽 물맛이 서로 다르다. 어느 날 이조암을 찾은 달마가 혜가에게 부족한 것이 있느냐고 묻자 물이라고 했다. 즉시 달마가 샘을 파주었는데 물에서 쓴맛 매운맛 신맛 단맛이 차례로 났다고 한다. 이는 사미승이 불가에 입문하여 부처님의 참뜻을 눈뜨게 되는 과정이라고 했다.



 

▲ 달마동 가는 길.

오유봉 위에서 이조암을 굽어보고 있는 달마상은 아침의 붉은 햇살을 받아 유난히 광채를 발하고 있다. 다시 이조암 위에 있는 작은 암봉으로 오른다. 눈길을 조심스럽게 조금 오르니 오른편으로 삼황채 이정표가 있다. 눈길이라 매우 미끄러워 진행하기 힘들 것 같다. 소실산 서편 자락에는 상고대가 피어 장관을 이룬다. 


우리는 오후 10시30분에 이조암에서 내려와 15원에 흥정을 한 빵차(빵 모양으로 생겼다는 뜻인 듯)를 타고 10여 분 이동해 신비스런 비경이 숨어 있다는 삼황채 협곡을 찾아 오르기로 했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터널 같은 설경을 통과하여 가파른 계단을 30분쯤 오르니 이조암과 연결되는 등산로 표지석이 나온다. 계곡을 따라 정비된 계단길을 따라 오르다보니 소림무술 수련장 같은 공터가 있다. 양옆으로는 고개를 쳐들고 허리를 뒤로 꺾어야 산정을 바라볼 수 있는 기암연봉이 이어진 협곡이다. 이곳을 붉은 운동복을 입은 무술학교 학생들이 비호처럼 뛰어 다닌다. 울창한 잡목이 하늘을 가려 여름산행에는 안성맞춤이겠다.


점점 눈은 발등을 덮고, 발 아래서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딸아이는 20분이면 된다더니 1시간이 넘었다며 힘든 표정을 짓고 쫑알대면서도 따라 오른다. 빵차 기사가 차에서 내려 20분이면 된다던 삭도정류장은 1시간40분이 넘어서야 도착했다.

 

 

 

 

 

 

 


▲ 현천동과 잔교.

삭도정류장에서 바라본 조망은 힘들게 오른 만큼 가슴 후련한 장관을 연출한다. 동편으로 건너다보이는 단애에 걸쳐 있는 암자는 고치고 뺄 것 하나 없이 탁본을 뜨는 게 더 나을 것 같은, 정말 그림 같은 진풍경이다. 삼황채 풍경구 표지판에는‘지질은 기묘하고 풍광은 수려하고 절은 숲처럼 빽빽이 늘어서 있고 고적은 대단히 풍부하고 예부터 지금까지 모든 여행객들의 명승지가 되었다. 삼황(三皇·복희 신농 수인)의 인류 시조가 이곳에 머물렀으며, 태실산은 용의 눈 같고 소실산은 봉황의 춤 같다’라고 쓰여 있다.


황산 서해대협곡보다 더한 절벽 계단길


천애벼랑에 매달린 돌계단을 조심스럽게 걸으며 신비의 협곡으로 접어든다. 점점 계단길은 가파른 경사에 앞도 옆도 쳐다볼 수 없는 험준한 산길로 실지렁이 같이 산허리를 감아 돈다. 황산 서해대협곡보다 더 위험하다는 생각에 오금이 저려온다. 공포와 가파른 계단에 힘이 들어 이 겨울에 땀이 비 오듯 흐른다.



 

▲ 달마동에 내리는 눈.

가까스로 산허리에 걸쳐진 조망처에 도착했다. 모처럼 가슴을 펴고 사방을 바라본다. 화법(畵法)에서는 3원법이라 하여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고원법(高遠法), 심원법(深遠法), 평원법(平遠法)으로 구도를 잡는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어찌나 산정은 높고 계곡은 깊은지 화폭 하나에는 그 법칙을 벗어날 수밖에 없다. 스케치를 마치고 산중턱을 돌아 사지를 모두 이용하여 험준한 소석문(小石門)을 통과하니 이 대장과 딸아이는 벌써 건너편 산자락 가파른 계단길을 오르는데 청솔모만큼이나 작아 보인다.


나는 연천대협곡으로 내려서면서 산의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연천봉 위로부터 안개구름이 쏟아져내리며 나를 마법의 세계로 끌고 간다. 순간 두려운 느낌이 엄습해온다. 말로 표현 할 수 없이 가슴을 조이는 엄청난 기(氣)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무속인 같았으면 산신의 영을 받았다고 했을 듯하다. 그곳에서 이구 대장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숭산의 정상부는 숲도 별로 없으며 지질은 대부분이 거후층석영암(巨厚層石英岩)으로 바위색은 온통 시멘트반죽을 끼얹어놓은 듯 옅은 회색을 띠고 표면은 거칠다. 낙석으로 절개된 부분은 맥반석 같은 짙은 홍색을 띄고 있다. 어쩜 영암 월출산처럼 산 전체가 맥반석인지도 모르겠다. 바위가 늙어서 표면이 흘러내려 느티나무 고목 표피처럼 주름이 졌다고 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신비적 연천대협곡은 2억6천5백만 년 전에 발생하여 연산운동(燕山運動)으로 숭산지구가 형성되었으며…’라는 안내문이 그 배경을 말해주고 있다.


연천대협곡에 서니 인간이 너무 나약하고 작아 보인다. 급경사 계단을 오르니 어제 소림무술학교 입구에서 본 현안적교(懸岸吊橋·출렁다리)가 발아래 펼쳐진다. 적교는 가동교(可動橋)로서 공중로프에만 매달려 있어서 상하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다. 우리는 이곳을 건너야 한다. 소림무술은 동(動)과 정(靜)적인 공(功)을 잘 결합해야 한다더니 이곳이야말로 동과 공을 동시에 연마할 수 있는 소림무술의 수련도장이다.


 

▲ 숭산선원과 연천봉.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적교 위에 있는 너럭바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중원의 옛 땅을 내려다보니 무림 고수들의 칼끝 바람소리가 귓전을 스친다. 중원의 수많은 고수들이 목숨 건 혈투 끝에 얼마나 많은 목숨을 잃었으면 ‘낙양성 십리하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이 몇몇이더냐’ 했겠는가. 그 많은 무덤들의 원혼을 달래려고 빠이주 한 잔을 따른다.


갈 길이 멀어 서둘러 가는데 누군가 수도했을 법한 동굴 위에 신선동(神仙洞)이라는 커다란 글씨가 음각되어 있다. 신선동을 통과하여 현천동(懸天洞)에 이르니 직립 거후층석영암석지대다. 바위 모양은 대나무 단을 묶어 세워 놓은 듯하며 ‘잔도기관(棧道奇觀)’이라 바위에 새겨진 대형 글씨가 설명을 더해준다.


계속 나아가는데 길이 너무 깨끗하고 빗자루 흔적이 나 있다. 누군가 이곳까지 올라와 길에 쌓인 눈을 쓸고 내려 갔나 보다. 조금 더 가니 커다란 자연석문이 나온다. 6,500만 년 이래 암층의 절리현상으로 형성된 석문이라고 쓰여 있다. 인간이 백 년도 못 사는데 나는 지금 6,500만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오르고 있다.


가까스로 숭산선원에 도착하니 이구 대장과 딸아이는 스님에게 얻은 빵으로 허기를 달래고 있다. 선원 뒤가 연천봉이라고 하나 안개구름에 가리어 높이를 헤아릴 수 없다.


겨울철이 아니면 정상을 오를 수도 있다고 한다. 숭산선원은 당대부터 이곳에 있었으며, 건물은 몇 차례 보수했다고 한다. 선원 바로 옆에는 소림무술연구원이 있으며 건물을 증축 중이다.


숭산선원 맨 윗 건물 무량성전(無量聖殿)은 중앙에 불상이 모셔져 있고 단청은 되어 있지 않다. 천정은 돔형식으로 붉은 색을 띤 자연석으로 되어 있다.


오후 3시가 되어 선원을 나서는데, 내려가는 계단이 남쪽이라서 눈이 녹아 깨끗하다. 남천문을 지나 지그재그 직벽 계단을 내려선다. 무술연구소 건축자재를 메고 오르는 일꾼의 숨소리가 가쁘게 들린다. 산 아래 멀리 차도가 보인다. 딸아이는 너무 지쳤는지 반응조차 없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새로운 계단길 옆으로는 돌을 쪼아서 만든 협소한 옛길이 아직도 남아 있다.


계단을 내려서니 금궐운궁에서 노인들이 작업하고 있다. 도교인지 불교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작은 암자다. 암자에서 직선으로 주차장까지 가파른 계단이 나 있다. 나는 한 계단씩 내려서며 지나온 풍광들을 정리해본다. 숭산은 한 마디로 기(寄) 준(峻) 수(秀) 괴(怪) 유(幽) 등의 특징을 모두 갖춘 산이며, 그 비경은 모두 동편에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달마가 동쪽으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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