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명산 6 구화산(九華山)
천길 절애와 수많은 사암 어울린 ‘구화성경(九華聖境)’
신라왕자 김교각 스님 진신불 모신 불교 4대 명산 중 하나
중국을 대표하는 신앙의 명산으로는 동악 태산(泰山), 서악 화산(華山), 남악 형산(衡山), 북악 항산(恒山), 중악 숭산(嵩山)의 5악과 아미산(峨眉山ㆍ보현보살의 거주처), 보타산(普陀山ㆍ관음보살), 오대산(五臺山ㆍ문수보살), 구화산(九華山ㆍ지장보살)의 불교 4대 명산을 꼽을 수 있다. 그 중 동남제일산인 구화산(九華山)은 지장보살 도량으로서 신라 왕자였던 김교각 스님의 진신불이 모셔진 곳으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 대붕청경석(大鵬聽經石)을 바라보며./ 연화불국 천대사(蓮花佛國 天臺寺).
구화산은 안휘성 남부 청양현에 위치해 있으며, 천하제일 산이라는 황산산맥의 지맥이다. 최고봉은 시왕봉(十王峰ㆍ1,342m)으로, 천대(天臺)와 나란히 위치해 있다. 천대는 구화산에서 제일 높은 사찰인 천대사(天臺寺)가 천길 절애(絶崖)에 누각처럼 구름을 뚫고 높이 솟아 기승절경(奇勝絶景)을 자랑하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천상세계를 연상케 한다. 또한 99개의 크고 작은 연봉들 중 1,000m가 넘는 봉우리만해도 30개나 된다.
구화산은 ‘구화성경(九華聖境)’이라는 수식어가 말해 주듯, 산 전체가 불교마을이어서 연화불국(蓮花佛國)이라고도 한다. 화강암봉으로 이루어진 등산로를 따라 종주산행을 하는 데는 빠른 걸음으로 6~7시간이 걸린다. 등산로 주위에는 고찰과 역사유적지가 전시장처럼 널려 있어 불교성지 순례를 겸한 등산을 한다면 좋을 곳이다.
제자와 신도들이 지어 지장스님께 바쳤다는 화성사(化城寺ㆍ757년), 신라에서 온 여인이 지장을 만나지 못해 항상 서서 기다렸다는 낭랑탑(娘娘塔), 매달 보름이면 신비한 광채가 비추었다는 신광령(神光岺), 상선당(上禪堂), 김교각 스님의 시신이 등신불로 모셔져 있는 월신보전(月身寶殿)과 7층육신탑, 회향각(回香閣), 고배경대(古拜經臺)의 비경, 감로사(甘露寺), 기원사(祇圓寺), 백세궁(百歲宮), 천대봉(天臺峰)의 노을, 만불사(万佛寺), 일숙암(一宿庵), 동애봉(東崖峰) 등 구화산 전체가 불교성지이고 지장도량(地藏道場)이다. 청대에 이르러서는 한때 사찰이 190여 개나 되고 승려가 5,000여 명에 달하였으나, 현재 구화산에는 사찰 86동, 각종 불상 6,800기, 스님이 700여 명 있다.
구화산의 원명은 구자산이었으나 이태백이 친구의 초청으로 이곳을 찾아 “妙有分二靈氣 芙蓉開九華(花)”(묘할 손 영기가 둘로 나뉘매, 부용이 구화산을 열어 놓았도다)라고 하여 그 후로 구화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대납촉봉의 불성(佛聖).
‘중생을 제도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으리’
이구씨(자이언트트레킹 대표)와 나는 김미연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구화산 산문에 도착했다. 구화산에 들어서려면 우선 한백옥(漢白玉)으로 제작돼 한껏 그 자태를 뽐내고 있는 구화산문 패방을 지나야 한다. 이 산문 패방에는 청나라 강희제(1645-1722)가 직접 써서 하사했다는 ‘九華聖境(구화성경)’이라는 편액의 뚜렷한 글씨가 유독 눈길을 끈다.
이곳은 99라는 숫자와 인연이 많다. 산길도 99굽이를 돌고, 봉우리도 99봉, 계단도 99계단이다, 김교각 스님이 99세에 입적한 데서 유래한 것 같다. ‘1999년 9월9일이 되면 내가 입적한 날자와 같은 날인 음력 7월30일이 될 것이다’ 라고 1,200년 전에 예언했다고도 전한다.
터널 같은 계단식 복도를 지나 김교각 스님의 진신불이 모셔진 월신보전에 다다랐다. ‘東南第一山’, ‘月身寶殿’대형 현판은 국사가 만들어 하사한 것이라고 한다.
월신보전 북쪽 99계단으로 난 출입문은 평소 김교각 스님이 사용하던 문이다. 남쪽 문을 사용하지 않았던 깊은 뜻은 구화산에서 바라보면 신라가 북쪽에 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지장보살이 된 큰 스님도 고향산천을 그렇게 그리워했던 모양이다.
도교가 많던 이곳에 김교각 스님은 불교를 전파하여 지장도량을 만들며 “중생을 제도한 뒤에야 보살과를 이루고, 지옥이 비지 않는 한 성불하지 않으리(度盡衆生 方證普提 地獄未空 誓不成佛·도진중생 방증보제 지옥미공 서불성불)”라는 맹세를 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지장보살의 거룩한 맹세(地藏大愿)라고 한다.
월신보전에서 1,200년이 넘은 지장 김교각 스님의 진신불을 친견하고 합장한 뒤 다시 터널 같은 복도를 내려선다. 이곳 구화산에는 15구의 진신불이 모셔져 있는데, 1992년에 입적하여 95년에 진신불이 된 자명 스님이 15번째 등신불로 나타났다고 한다.
월신보전의 법당 문턱이 유난히 높은 뜻은 불가에 입문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라고 한다. 아미타불전은 모든 소원을 들어준다기에 합장해 보지만 빌 소원이 없었다.
월신보전 지장선사(地藏禪寺)를 거쳐 행원무진(行願無盡) 산문을 나서니 구화가의 민가마을의 아침은 참으로 조용하다. 민가라 하여도 모두가 민가식 사찰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일행은 모노레일을 타고 백세궁을 향해 오른다. 백세궁은 민가식 사찰로서 외부에서 보면 일반 가정집처럼 보이지만 400년 된 백세옹의 진신불이 모셔진 곳이다. 백세궁에 오르니 전면으로는 구화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며 뒤편으로는 최고봉인 시왕봉과 천대봉의 암봉들이 마치 북한산의 백운대와 인수봉을 보는 듯하여 발묵에 힘이 넘치는 산수화 한 폭을 보는 듯하다.
실제 사람크기와 같은 나한상 500기
백세궁을 빠져나와 사람의 실제 크기와 같은 500나한을 둘러보고 천대로 향한다.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20여 분 이동하니 천하제일송이란 글씨가 새겨진 입석에서 1,200년 된 봉황송(鳳凰松)을 바라보며 천년 학을 생각한다. 이곳은 차 농사를 주로 한다. 작은 상가 마을 사이로 난 석판 길을 따라 오르니 염장을 한 숭어처럼 보이는 생선과 통오리, 통닭, 두툼한 삼겹살을 건조시키느라 여기저기 세탁물처럼 매달아 놓았다.
▲ 차밭이 있는 전통가옥./천대를 오르며 바라본 고배경대(古拜經臺).
등산로 입구는 장정의 팔뚝보다 훨씬 굵은 대나무숲이 울창하다. 그런데 오늘은 케이블카가 수리 중으로 운행하지 않는다. 이구씨가 “천대봉까지는 5km 밖에 안 되니 도보산행을 하자”며 앞장선다.
금강사를 지나 혜거사 대나무밭 사이로 평면석을 깔아놓은 오솔길이 영화촬영 세트장 같은 분위기다. 산문전(山門殿)이라는 현판 아래 용화궁(龍華宮)이라 쓰인 제법 큰 절을 지난다. “규모가 크든 작든 사(寺)는 비구니 절이고 암(庵), 묘(廟)는 비구니가 생활하는 곳”이라고 김미연 가이드가 일러준다.
계단을 오르노라니 땀이 비 오듯 주체할 수 없이 흐른다. 관음동과 함께 있는 관음암은 민가식 사찰로 길이 절 안으로 통과하게 되어 있다. ‘동중유선수(洞中有仙水)’ 약수를 한 바가지 떠서 갈증을 달랜다. 절 주위 경치가 너무 아름답다. 절경에 빠져 실족이라도 할까봐서 그런 것인지 ‘안전에 주의하세요’라고 한글로 안내문을 세워 놓았다.
관음동에서부터는 직벽에 가까운 지그재그 계단길을 올라야 했다. 조금 전의 경고문을 한글로 왜 써놓았는지 이해가 간다. 서두르기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을 걱정한 모양이다. 너무 계단이 가팔라 만약 실족이라도 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지겠다는 생각에 머리끝이 쭈뼛하다. 걸을 때는 옆을 보지 않고 자연을 볼 때는 걷지 않는다는 말은 지금 필요한 말이다. 관음동서 천교사까지는 정말 숨이 목까지 차오른다.
산은 언제나 그렇지만 힘들게 오른 만큼 거기에 따른 보람도 크다. 천교사에 오르자 확 트인 조망에 구화가가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백세궁과 6각탑은 한 폭의 원근법이 확실한 동양화 한 폭이다. 천교사 옆에 우뚝 솟은 대납촉봉을 올려다보니 옹골찬 남성미를 느끼게 한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곳마다 한 폭의 의미 깊은 그림들이 펼쳐진다.
천교사에서 조금 오르니 소나무숲이 우거진 조망처가 있다. 휴식을 취하는데 덩치 큰 원숭이가 숲속에서 엉금엉금 기어 나온다. 배낭에서 빵 한 쪽을 꺼내 던져준다. 장가계 원숭이들처럼 식탐을 내고 달려들지는 않는다. 배낭을 메고 산행을 다시 시작하니 원숭이가 앞서 계단을 오르며 안내한다.
백련사에서 오르는 계단은 양쪽이 모두 벼랑인데 난간이 없다. 계단 위에 서서 천대사를 올려다보니 하도 높아 현기증이 난다. 조금 전에 본 원숭이가 이곳까지 따라와 왼편 넓은 바위에 어린 새끼와 함께 앉아 있다.
▲ (좌)민가식 사찰 관음암./(우)천대선경을 바라보다./(아래)초생달과 원숭이 모녀.
천대 정상은 선계에 드는 자리
황금색의 관음봉 원통보전 뒤에 우뚝 솟은 거대한 관음석에 법복을 입혀놓았다.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었을까. 관음봉 원통보전에서 고배경대로 오르는 계단은 대리석에 연꽃과 동전 모양을 조각하여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난간기둥도 정교하게 조각했다. 계단을 오르며 배경대와 천대사를 올려다보니 버리고 뺄 것 하나 없는 기승절경 산수화다.
배경대 대웅보전은 황금색 벽과 붉은 기둥 문창살까지도 5방색으로 단청이 곱게 된 중국의 전통적인 건축물로 화려하기가 그지없다. 난간에 걸터앉아 장기를 두는 노승과 젊은 승이 퍽 한가로워 보인다.
지장스님이 수도했다는 고배경대(古拜經臺)는 대웅보전 뒤쪽의 조그만 건물이다. 건물 앞 자연석 너럭바위에 스님의 발자국 모양이 뚜렷하다. 이곳에서 고행하며 수도 정진할 때에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산을 내려가는 동자승을 바라보며 스님은 ‘송동자하산(送童子下山)’한 수를 남긴다. 번역하면 이러하다.
불문이 쓸쓸하여 집 생각하더니
절방을 하직하고 구화산을 떠나는구나.
난간에 기대어 죽마 타던 어린 시절 그리워하던 너
금 같은 불도의 땅도 너를 붙잡지 못하는구나.
병에 보탤 시냇물에 달을 부르지 말라.
차 달이는 병에서는 꽃 즐기기 쉬웠구나.
서운해 눈물 흘리지 말고 잘 가거라
노승은 안개와 노을을 벗하리라.
스님은 사찰생활의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어린 동자를 고향의 어머니 품으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스님은 아이에게 최상의 법(法)이란 바로 어미의 품(情)임을 알았기 때문일까. 그런데 아이는 막상 내려가며 그간의 정 때문에 눈물을 훔친다. 이를 본 노승의 마음 또한 적잖이 흔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개와 노을을 벗하며 수행을 계속했다.
왼편에 우뚝 솟은 암봉을 ‘大鵬聽經石’(대붕청경석)이라 표시해 놓았다. 천대사를 오르며 고배경대를 내려다본다. 대붕청경석 아래 고배경대는 봉황이 알을 품고 있듯 위용과 평온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천하 명당이다. 암봉 위에서 천년세월을 지켜온 일그러진 괴송은 지친 나를 허공에 한 획을 그어대게 한다.
천대사 대웅보전을 떠받친 거대한 암벽에 ‘非人間’이라고 쓴 커다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백의 시 ‘별유천지 비인간(別有天地 非人間)’에서 따온 말인지, 아니면 이곳은 범인이 접할 수 없는 지장도량 불도의 땅이란 뜻인지는 알 수 없다.
천대 정상에 서니 거대한 암봉들로 쌍둥이 입석과 널따란 와석이 조화를 이룬다. 시왕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넓다란 암반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 저녁노을이 서산마루에 걸려 동자승이 하산하던 희미한 산길을 물들이고 있다. 김교각 스님은 이곳에 올라 초승달을 쳐다보며 떠난 동자승과 고향산천의 그리운 마음을 떨쳐 버리기 위해 얼마나 염불로 짓눌렀을까. 선계에 드는 듯한 이곳이야말로 참선과 염불을 함께 하는 선정쌍수(禪淨雙修)의 자리라 할 수 있다. 옆에 세워진 ‘地藏古洞’(지장고동) 비석이 그것을 말해준다.
조금 전부터 따라오던 어미원숭이 모자는 바위에 앉아 저녁노을을 등진 초승달을 쳐다보고 있다. 그 모습이 이별을 앞둔 노승과 어린 동자승을 떠올리게 한다. 산길을 내려서며 눈물을 훔치며 자꾸 뒤를 돌아보는 동자승에게 울지 말고 떠나나라며 손짓하는 노승과의 이별이 자꾸 떠올라 산을 내려서는 나의 눈에 눈물이 어른거린다.
/ 그림·글 곽원주 blog.empas.com/kwonjoo50 협찬 자이언트트레킹
'아픈역사에서 배운다 > 중국 명산,명소,문화를 찾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산에 올라 천하를 조망하다 (0) | 2008.10.19 |
---|---|
중국 명산 7 안탕산 (0) | 2008.10.19 |
중국 명산 2 태산 (0) | 2008.10.19 |
중국 명산 3 숭산 (0) | 2008.10.19 |
중국 명산 4 항산 (0) | 2008.1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