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명산 7 안탕산
수많은 폭포로 넋 빼앗는 환중절승(幻重絶勝) 옛 시인들은 산과 호수의 으뜸은 서호(西湖)에 있고, 산과 강의 명승은 계림(桂林)에 있고, 산과 폭포의 아름다움은 안탕(雁蕩)에 있다고 노래했다. 기암연봉들 사이로 쏟아지는 폭포의 비경이 얼마나 아름다우면 이렇게 노래했겠는가.
▲ 조양동 비폭(飛瀑)./합장봉과 관음봉.
중국의 산들을 두루 돌아보고, ‘五岳歸來不看山(오악을 보고 나니 다른 산은 눈에 차지 않는다)’고 말한 서하객(徐霞客ㆍ1587-1641)도 이곳을 세 번이나 찾아 ‘욕궁안탕지승 비비선불능(欲窮雁蕩之勝 非飛仙不能·안탕산의 아름다움을 탐험하는 것은 신선이 마땅히 하늘을 나는 것과 같다)’고 했다. 한 마디로 안탕산은 산 전체가 거대한 산수화를 보는 듯하며, 기봉(奇峰), 거석(巨石), 유곡(幽谷), 수호(秀湖), 동 부(洞府)가 많아 환상만태(幻像萬態)한 곳이다.
절강성 남단에 위치한 안탕산은 남안탕산과 북안탕산으로 나뉘며, 남안탕산은 평양현, 북안탕산은 낙청현에 위치한다. 필자가 찾아간 북안탕산은 고대의 명산으로 해상명산(海上名山), 환중절승(幻重絶勝)으로 불리며, 동남제일산(東南第一山)이라고 한다.
안탕산은 영봉, 영암, 삼절폭, 대용추, 안호, 양각동, 현승문, 선교의 8개 절경구로 나누며, 그중 영봉, 영암, 용추폭포는 안탕삼절로 불린다. 이곳은 당송 이래 승려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고, 마애불이 수도 없이 많고 고찰들이 널려 있으며, 춤추는 듯한 비문과 석각들, 미적인 느낌과 영감을 표시한 시, 그림, 문학작품들만 해도 5천여 편이 넘게 전해오고 있어 문사보고(文史寶庫)라 한다.
오전 11시가 되어 안탕산에 도착했다. 간밤에 심한 태풍이 지나간 흔적이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가로수가 넘어져 있고, 계곡의 불어난 물은 하얀 포말을 이루며 금시 강둑을 넘을 것만 같다.
아직도 태풍이 완전히 지나간 것은 아닌 듯 요란한 바람소리와 함께 빗방울이 세차게 휘몰아친다. 길을 가던 한 사람은 아예 우산을 접어들고 비를 맞으며 뛴다.
▲ 천문협의 천창(天窓)./영암의 비경.
폭포 물줄기 강풍이 말아올려 운무로 흩뿌려
독수루비관(獨秀樓賓館)에 여장을 풀고 하늘을 쳐다보니 비바람이 곧 갤 것 같지는 않다.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어서 간단한 쌀국수 한 그릇으로 식사를 마치고 대용추폭포를 찾아나섰다. 빗속을 헤치고 오후 3시가 되어 매표소에 도착하니 지난밤 폭우로 수량이 불어나 출입을 통제한다고 한다. 힘들게 찾아온 곳인데 실망이 크다. 이번 그림산행은 아무래도 허탕 치는 것 아닌가 하는 허탈감에 공연한 걱정이 앞선다.
다시 되돌아서서 방동(方洞)경구를 내려오는데 차창 밖으로 보이는 암봉들과 곳곳에 하얀 포말을 이루며 쏟아지는 폭포들이 장관을 이룬다. 비에 젖은 산천은 생기를 더욱 북돋우고 비탈진 차밭은 선명한 녹색으로 청량감이 감돌아 더욱 아름답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화산석으로 이뤄진 이곳은 건폭이 많아 폭포는 별로 볼거리가 없었다고 택시기사가 말을 전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행운을 잡은 것이 아닌가. 어쩜 내일 날씨가 조금만 개어준다면 우리는 천하의 비경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태풍이 고맙게까지 느껴진다. 여행을 하다보면 때로는 불행도 행운이 될 수 있다는 새옹지마의 교훈을 떠올리며 조양동으로 향했다.
조양동에 도착하니 태풍 때문인지 관리원이 아예 철수하고 없다. 시간을 보니 4시30분이다. 지금부터 호텔에 들어가 잘 수는 없는 일이고 위에 보이는 폭포까지만 가보자고 배가 나온 중국 상해여행사 홍광해(洪光海) 과장을 설득해 본다.
울릉도 성인봉으로 오르는 도로처럼 나선형 길을 따라 조양동에 오르니 간밤에 폭우로 불어난 수량이 장관을 이루며 쏟아진다. 이름 없는 이곳이 이 정도라면 내일 중국 4대 명폭 중 하나인 대용추폭포는 어느 정도나 될까. 설레는 가슴으로 벅찬 기대를 해본다.
폭포 안쪽 동(洞)이 있는 곳은 비를 피할 수 있다. 이곳에서 폭포를 바라본다. 웅장함과 천둥소리를 내며 쏟아지는 폭포의 경관은 예사롭지 않다. 암봉을 감돌아 불어닥친 강풍은 육중하게 떨어지던 폭포의 물줄기를 말아 올려 운무를 만들어 하늘로 사라지게 한다. 참으로 장관이다. 폭포 아래는 인공담(人工潭)을 만들어 선비조각상을 세워놓았지만 주위의 웅장함에 초라함마저 느껴진다.
폭포를 보고 옥녀봉으로 오르는 계단길에는 물이 넘쳐흐른다. 빗길을 조금 오르니 금귀봉(金龜峰)에 이른다. 숨은 비경에 산자락은 마력을 가진 듯 우리를 조금씩 빨아들인다. 처음에는 산 오르기를 힘들어하던 홍 과장이 절경에 반하여 이제는 앞장을 선다.
비래석(飛來石)을 지나 조금 오르니 조천문(朝天門)과 오로전(五老 ) 갈림길이 나온다. 태풍에 오로전 이정표가 넘어져 있고 그곳으로 오르는 길이 가팔라 보여 조천문으로 방향을 잡았다. 조금 오르다 조망처에서 빗속의 안탕산 시내와 넘실대는 하천을 한눈에 내려다본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멀리 동쪽 바다도 보인다고 한다.
비바람 강풍 속에서 우뚝 솟은 서천문(西天門)을 통과하여 조천문으로 내려섰다. 대협곡의 거대한 실경산수화가 펼쳐진다. 중국의 대가들이 그토록 감탄한 안탕산의 진경이 바로 이것이구나. 지금은 무슨 말도 필요가 없다. 이래서 안탕산에서는 말을 아끼라고 했나 보다. 할말을 잊고 만다. 산정을 휘감고 도는 운무와 바람에 흔들리는 숲의 물결, 시작은 있으나 끝이 없는 비폭(飛瀑), 참으로 변화무쌍한 장관들을 연출한다. 협곡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은 서 있는 나를 중심을 잃게 하고, 홍 과장의 너울대는 비닐우의 한쪽 팔꿈치 마저 뜯어냈다. 한동안 비바람 부는 줄도 모르고 넋을 잃고 몰아지경에 빠져 있다가 폭풍우가 점점 강해져 웅장한 암봉 아래 비좁은 동천문(東天門) 계단을 내려선다.
▲ 전도봉과 녹차밭./영봉과 북두동천.
거대한 실경 산수화로 펼쳐진 대협곡 풍경
미끄러운 계단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서니 세 갈래 하산도(下山道)가 나온다. 우리는 왼쪽으로 난 길로 방향을 잡았다. 영봉 입구쪽이다. 지나온 길을 뒤돌아본다. 산중턱의 계단길은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하다. 이제부터는 협곡의 돌계단이 너무 가팔라 돌아서서 사다리를 내려가듯 쇠줄을 붙들고 내려선다. 낙석이라도 구르면 피할 길이 없겠다는 생각에 조심을 더한다. 빗물이 계단으로 넘쳐흐르고 이끼가 많이 끼어 있어 여간 미끄러운 것이 아니다. 이곳은 사람의 통행이 별로 없는 길인가 보다.
조금 더 내려서니 이제는 코끼리바위가 길을 막고 버티고 서있다. 쇠줄을 붙들고 겨우 천창(天窓)에 도착했다. 하늘로 난 창문이라는 이곳은 협곡이 하도 깊어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바라본 하늘의 작은 창문은 자연 속에서 또 다른 자연을 느끼게 한다. 천문동 안내판 아래 너럭바위에서 바라본 절경은 폭풍우 속에서도 스케치북을 꺼내게 한다. 홍 과장은 찢어진 비닐우의로 비를 가려준다.
땀과 빗물이 범벅이 되어 천문협을 내려선다. 이곳은 너무 가파르고 힘이 들어 통행하는 사람이 적은 모양이다. 돈 받기 좋아하는 중국인들이지만 이곳 입구에는 매표소조차 없다. ‘朝天門’이라는 화살표뿐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우리는 대용추폭포를 보기 위해 출발했다. 빗줄기는 어제보다 많이 약해졌다. 대용추로 가던 중 케이블카를 타고 영암경구로 오르려 했으나 태풍으로 인해 케이블카 운행을 하지 않는다. 걸어서 오를 수도 있지만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으니 케이블카 정류장에서 산중턱의 그림 같은 묘(廟)만 바라보고 대용추경구로 이동했다.
대용추 매표소 앞 주차장에는 궂은 날씨에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차량과 인파가 북적거린다. 명소가 분명한가 보다. 산중턱 대나무가 우거진 곳에 자리한 빗속의 조용한 민가 한 채가 시심(詩心)을 불러일으킨다. 향 연기가 자욱한 용추묘(龍湫廟)를 지나 금계를 따라 오르니 중첩한 암봉들이 원객을 맞이한다. 조금 오르니 전지가위처럼 생긴 전도봉(剪刀峰)과 녹차밭의 어우름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전도봉은 보는 방향에 따라 모양과 명칭이 다르다. ‘아이를 안은 봉’(抱兒峰), ‘돛대봉’( 杆峰), ‘옥란꽃’(玉蘭花), ‘딱따구리’(啄木鳥), ‘곰바우’(熊岩), ‘악어봉’(鰐魚峰), 산 아래 운무가 깔리면 일엽편주에 돛을 올리고 항해하는 듯한 ‘일범봉’(一帆峰)으로 변한다.
보는 방향과 때에 따라
이름 달라지는 암봉들
금옥교를 건너 산 입구로 들어서니 1억3천만 년 전 화산 형성과정을 몸으로 느끼고 눈으로 볼 수 있는 화산 천연박물관 지대가 나온다. 마치 화산이 지금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듯한 구포유문암(球泡流紋岩)과 유문구조의 형성과정을 설명해놓은 화산석 지대를 지나 대용추폭포에 이르렀다. 연운봉에서 떨어지는 197m의 거대한 물줄기는 천둥소리를 내며 포효한다. 한 마리의 백용이 몸을 틀어 승천하는 듯하고, 다른 한 마리는 소용돌이치는 옥빛 담에서 꿈틀거린다. 참으로 천하제일폭포다. 이래서 옛 시인은 대용추의 아름다움을 ‘불가명상(不可名狀ㆍ말로 형언할 수 없다)고 했나 보다.
대용추에서 넋을 잃고 있다가 하산도로 접어들어 천불암(千佛岩)을 올려다본다. 중첩한 암봉들은 낮게 깔린 구름 위로 솟아올라 천불천탑을 보는 듯 기기묘묘하다.
대용추경구 구경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영봉(靈峰)경구로 향했다. 석교로 된 과합교(果盒橋)에 서니 높이 80여m가 넘는 두 개의 직립봉인 쌍필봉이 우선 눈을 압도한다. 석교 아래 옥빛 맑은 물과 쌍필봉은 물기 넘치는 수채화 한 폭을 보는 듯하다.
조금 걷다보니 다리 난간에 비를 맞고 앞발을 치켜든 사마귀 한 마리가 고개를 갸우뚱하고 빤히 나를 쳐다본다. “니하우” 인사를 나누고는 영봉고동(靈峰古洞)으로 들어선다. 영봉고동은 굴속에 또 굴이 있으며 암자가 7개나 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옥빛 담들도 많다. 허원담(許愿潭)의 물빛이 하도 고와 계단을 내려서서 물을 만져본다.
호운동(好運洞)은 600년이 넘은 곳으로 이곳에 온 지 6년이 되었다는 인상이 퍽 너그러워 보이는 지원(智遠) 스님(41)이 합장하며 반갑게 맞이한다. 중앙에는 적수관음의 큰 불상이 모셔져 있으며, 벽에는 음각으로 십팔나한이 조각되어 있다. 희미한 백열등에 향촉 냄새가 너무 강하고 습도는 매우 높아 땀이 비 오듯 한다.
영봉고동을 빠져나와 서요대(西遙臺) 정자에 올라서니 시원스런 조망에 반하여 명시 한 수가 저절로 나올 법도 하다. 이제는 빗방울이 그치고 구름의 이동이 빨라진다. 건너다보이는 합장봉 아래 관음동과 북두동은 천하걸작 신의 창조물이다. 주위의 연봉들은 장가계와 계림의 연봉들을 조합하여 놓은 듯하고, 청송 주왕산 정상으로 오르다 뒤돌아 기암봉을 보는 듯도 하다. 암봉 위에 또 암봉이 있고, 곳곳에는 동(洞)과 부묘(府廟)가 지천이다.
우리는 서요대와 동요대에서 건너다본 합장봉인 관음동으로 들어선다. 입구에는 정여봉(情侶峰)이라 쓰여 있고 야경(夜景)이라 표시되어 있다. 이곳의 암봉들은 보는 방향이나 때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그래서 봉 하나가 몇 개의 이름들을 갖고 있기도 하다. 관음봉도 합장봉(合掌峰), 정려봉(情侶峰), 북두동천(北斗洞天), 영봉동천(靈峰洞天)이라 하고, 야경에 바라보는 암봉들의 이름은 듣기만 하여도 아름다운 ‘독수리 날개 접다’, ‘달을 바라보는 코뿔소’, ‘시아버지봉’(公公峰), ‘부부봉’, ‘연인봉’, ‘목동봉’, ‘노파봉’, ‘사랑에 번민하는 소녀’, ‘쌍유봉’등등으로 불린다. 그래서 영봉의 풍경은 낮에는 놀랍고, 밤에는 혼을 빼앗는다고 한다.
▲ 대용추 불가명상(不可名狀).
모두에게 안탕산행 권하고파
관음동으로 들어서는데 다시 빗방울이 굵어지며 세찬 바람이 분다. 관음동은 높이 113m, 폭 14m, 깊이 76m나 되는 거대한 천연동굴이다. 굴 안에는 3천(泉)이 있으며 층층으로 건물이 지어져 있다.
천왕문을 지나 가파른 계단 위 연못이 있는 쉼터에서 거대한 석벽 사이로 바라보는 세상은 정말 좁아 보인다. 이곳에선 혜안으로 마음의 소리를 볼 수 있다고 하여 관음동(觀音洞)이라 했는가. 낙숫물 떨어지는 것을 보니 빗소리가 보이고, 먼 산에 일렁이는 나뭇잎을 보니 바람소리가 보인다는 것일까. 보이니 들리고, 들리니 보인다는 것일까. 한없는 선문답을 자신과 나누며 두타고행을 하듯 쇠난간을 붙잡고 직벽에 가까운 끝없는 계단을 오른다. 마지막에는 널따란 광장이 있어 대형 관음금불상이 어두운 동굴에서 광명을 발하듯 조명을 받아 정말 황홀할 지경이다.
관음동을 나서 북두동을 둘러본 후 산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오르다 장군동으로 들어선다. 장군동 바로 옆 녹차밭 사이로 작은 산길이 나 있다. 어제 조양동을 지나 조천문(朝天門)과 오로전(五老 ) 갈림길에서 오로전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이곳으로 내려올 수 있다고 한다. 산길 입구에는 ‘유객금지통행(遊客禁止通行)’이라는 팻말과 위험 표지판이 함께 세워져 있다. 날씨가 좋으면 이쪽에서 다시 한번 조양동으로 산행하며 넘어 보고 싶다. 산천경개를 즐기며 산행하고 싶다면 안탕산을 권한다.
장군동에서 산을 내려서다 옥빛물이 하도 맑고 짙어 파초 잎을 꺾어 하얀 구름 위에 산수화를 그리고 땀에 젖은 얼굴은 옥수에 담근다. 이태백이 달을 따러 몸을 던졌던 그 물빛도 이토록 곱고 아름다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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