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서울 논현동 고시원에서 '묻지마 살인'에 희생된 53세 중국동포 조영자씨 빈소는 22일에도 차려지지 못했다. 중국에 있는 유족들이 여권이 없거나 비자 발급이 늦어져 입국하지 못한 것이다. 범인 정상진의 칼에 스물네 번 찔려 숨진 이월자씨가 평소 그토록 보고 싶어했다는 중국의 외아들도 입국을 못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한 푼이라도 더 보내겠다고 노는 날도 못 쉬고 일했는데, 아들은 어머니의 이 억울한 빈소를 지키지 못했다.
사망자 6명 중 3명, 부상자 7명 중 3명이 중국동포 여성들이었다. 대부분 부근 식당가에서 품을 팔면서 교통비·생활비를 아끼려고 고시원의 가로 2m, 세로 2m 쪽방을 빌려 지친 몸을 누이던 사람들이었다. 중국 동포들은 입국 때 서류비와 선(先)이자까지 합쳐 브로커한테 보통 1500만원의 빚을 진다고 한다. 밤 10시까지 허리도 펴지 못하며 일하면서 월 150만원 정도를 받아 봐야 브로커한테 매달 100만원씩 보내고 20만~30만원을 중국 가족에게 송금하고 나면 남는 20만~30만원으로 한 달 생활을 해야 한다. 고시원비로 17만~20만원을 제하면 손엔 만원짜리 몇 장 남는 것이다.
노숙자나 별반 다름없는 이런 비참한 생활을 하다 어이없는 칼을 맞고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으니 영혼이 있다면 이 땅 위를 언제까지 맴돌고 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도 이들의 죽음은 보상받을 길이 막막하다. 범인은 고시원비조차 낼 능력이 없는 인간이다. 그에게서 위로금은 고사하고 장례비도 나올 턱이 없다. 유족들은 당장 시신을 중국으로 모셔갈 일부터 아득하다. 사망자 1000만원, 중상자 300만~600만원을 주게 돼 있는 범죄피해자 구조금도 외국 국적인에게는 해당이 안 된다고 한다. 작년 2월엔 여수출입국관리소 참사로 중국동포 8명이, 지난 1월엔 이천 냉동창고 화재로 13명이 사망했지만 중국동포들의 이런 처지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지금 37만명의 중국동포가 들어와 한국인들이 꺼리는 힘든 일을 대신 하고 있다. 보험이 안 되는 이들에겐 몸이 아파도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은 시민단체나 종교기관에서 운영하는 두세 곳뿐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중국동포들이 이 땅에서 험한 일을 하면서 사람 같지 않은 처참한 밑바닥 생활을 하도록 방치해도 되는 것인가.
'경제,사회문화 > 정치, 외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GPS까지 달린 공영 자전거 (0) | 2008.10.23 |
---|---|
용병(傭兵)을 쓰는 세계 9위 군사대국 (0) | 2008.10.23 |
'악의 축' 소리나 하지 말든지… (0) | 2008.10.21 |
YS와 돈 (0) | 2008.10.20 |
10년내 올 3차대전은 '로봇전쟁'아닌 '물전쟁' (0) | 2008.1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