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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걸음 앞 이토에 3발 명중… 러시아어(語)로 "한국 만세!" 3번 외쳐

화이트보스 2008. 10. 24. 08:52

열 걸음 앞 이토에 3발 명중… 러시아어(語)로 "한국 만세!" 3번 외쳐
● 재구성 ―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驛 현장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1909년 10월 26일 새벽 하얼빈, 만 30세의 안중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의 하얼빈역 북쪽 썬린가(森林街) 34호에 있던 동포 김성백(金成白)의 집에서였다. 천주교 신자인 그는 "오늘 저로 하여금 2000만 동포의 원수를 처단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 검은색 모직 신사복 위에 반코트를 걸치고 납작한 모자를 쓴 안중근은 브라우닝 8연발 권총을 꺼내 손수건으로 닦은 뒤 오른쪽 속주머니에 넣었다.

오전 7시, 안중근은 마차를 타고 하얼빈역에 도착했다. 러시아 군인들이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었지만, 그는 일본인 환영객 사이에 끼어 역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안중근은 플랫폼이 잘 보이는 역 구내 찻집에 들어가 차를 시켜 마셨다. 대륙을 침략할 야욕을 품었던 전 조선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의 대장대신 코코프체프와 회담하기 위해 그곳으로 오고 있었다. 참으로 기나긴 두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오전 9시, 초록색 특별귀빈열차가 하얼빈역으로 서서히 들어왔다. 플랫폼에 서 있던 일본인 환영단이 일장기를 흔들며 "환영합니다"라고 소리쳤다. 러시아 의장대가 '받들어 총'으로 경례를 했고, 장중한 군악이 연주됐다. 코코프체프가 열차로 올라가 이토를 맞았다. 30분 뒤, 이토가 열차에서 내렸다. 각국 사절과 인사를 나눈 이토는 도열한 러시아 의장대를 사열하기 시작했다.

이토가 열차 쪽으로 되돌아올 때, 안중근은 찻집을 뛰쳐나와 플랫폼으로 나섰다. 러시아 의장대 뒤로 바짝 붙어 선 그의 앞으로 이토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눈앞을 2~3보 지나쳤을 때 안중근과 이토의 거리는 10보 정도였다. 그 순간, 안중근은 권총을 뽑아 들고 사격했다. 일곱 발의 총성이 울렸다. 세 발이 이토에게 명중했고, 나머지 네 발 중 세 발은 옆에 있던 수행비서관, 하얼빈 주재 일본 총영사, 만철 이사를 맞혔다. 총을 내던진 안중근은 큰 소리로 세 번 외쳤다.

"코레아 우라(러시아어로 '한국 만세'의 뜻)!"

안중근은 달려드는 러시아 헌병에게 포박됐다. 이토는 응급처치를 받았으나 내장 부위의 출혈로 30분 뒤 숨졌다. 11시40분, 특별열차는 이토의 시체를 싣고 떠났다. 역 구내 헌병대 파출소에서 취조 받은 안중근은 오후 9시쯤 쇠사슬로 묶인 채 지금의 화위안가(花園街) 97호에 있던 일본 총영사관으로 이송돼 지하실 감옥 독방에 수감됐다. 그가 뤼순 감옥으로 이송된 것은 11월 1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