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핫이슈
대통령이 해외에서 국무회의를 연 것은 처음이다. 회의를 기획한 청와대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이 밖에 나가서도 빈틈없이 나랏일을 챙겼다는 점을 홍보했다. 인터넷을 활용함으로써 정보기술(IT) 시대와 호흡을 같이하는 지도자라는 인상도 심어줬다.
청와대는 이날 대통령이 서명한 법안이 어떤 것인지도 자세히 설명했다. 식품위생법 개정안 등 법률안 48건을 포함해 대통령령안·일반안건 등 모두 61건을 e-메일로 받아 처리했다고 한다. 국립대학이 학교발전기금으로 수익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과 임대사업자의 등록 요건을 완화하는 조치도 들어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해외 출장 중에 황급히 처리해야만 했던 안건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라 밖에서도 평상시와 똑같은 국무회의를 열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정보화 시대의 흐름을 타는 괜찮은 이벤트 하나를 봤다고도 여길 수 있다. 대통령도 정치인이고 정치인에겐 ‘쇼맨십’이 중요하다. 쇼의 관객인 국민이 만족한다면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들이 회의 준비에 며칠 밤을 샌 것을 문제 삼기도 곤란하다.
겉모양은 첨단을 지향했지만 내용이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 이번 회의의 진짜 흠이다. 대통령은 모니터를 통해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에 비례해 시중금리가 내려갈 수 있도록 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을 향한 지시였다. 하루 전 워싱턴에서 한 라디오 연설에서는 “마른 논에 물을 대듯 낮은 금리로 필요한 곳에 자금을 공급해 달라”고 은행들에 주문했다.
나는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이 대통령이 시장의 원리를 잘 알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일찍 깨졌다. 취임 직후 서민 부담을 생각해 생필품 물가를 특별관리하라는 지시를 하면서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바로 52개 품목 명단을 만들었다. 이른바 ‘MB 물가지수’가 탄생한 것이다. 10개월이 지난 뒤 보니 별 의미가 없다. 오를 건 다 올랐다는 얘기다. 어떤 건 원자재 값이 뛰어서, 어떤 건 환율 탓이라며 이유도 제각각이다. 용케도 설탕이 잘 참는다 싶었는데 사흘 뒤부터 15%나 오른다고 한다.
문제는 MB노믹스의 고리타분함이 갈수록 더해진다는 점이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금리가 떨어지고, 은행 창구에서 돈이 술술 풀리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미 드러났는데도 대책은 제자리 걸음이다. 그는 앞선 두 번의 라디오 연설에서도 은행들에 중소기업 대출을 독려했다. 기업들의 어려운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 문제가 전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자 갑갑해 그랬을 것이다.
은행이 본업을 잊고 돈을 움켜쥐고 있을 땐 다 이유가 있다. 떼일 위험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정이 좋을 때 방만하게 자금을 운영한 것은 분명 은행 잘못이다. 자금이 넉넉할 땐 곳곳을 찾아다니며 대출 세일을 했다. 해외 은행 등에 무리한 투자도 일부 했다. 그러다 위기가 닥치자 일제히 돈줄 죄기에 나선 것이다. 이런 영업 행태가 사회적 비판을 받지만 은행이란 본래 그런 곳이다. 돈이 넘치면 어떻게든 굴려서 수익을 내려 하고, 제 코가 석 자일 땐 대출금 회수에 나서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은행장 팔목을 비틀어 대출을 강요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관치금융 때 익히 들었던 말들이 잇따르고 있다. 기업 대출이 정말 화급하고 중요하다면 그게 가능하도록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외국인 주주가 50%를 넘는 상업은행에 부실 위험을 감수하라고 윽박질러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정부가 나서 그 위험을 덜어줘야 한다. 부실 대출이 생기면 신용보증기금을 통해 물어주겠다고 해야 한다. 국영은행인 산업은행과 기업은행도 동원해야 한다. 또 다른 정부의 은행인 우리은행을 활용할 수도 있다. 이성태 한은 총재가 위기상황에서도 중앙은행 독립선언서만 만지작거리며 할 일을 안 하고 있다고 판단하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대책 없이 먹히지도 않는 지시를 반복해서는 대통령의 리더십과 권위만 훼손된다. 최근 한 달 새 대통령의 은행 비판은 여섯 번에 이른다. 한술 더 뜬 대목도 있다. 싼 금리로 지원하라는 것이다. 은행들이 이자에 상관없이 대출 자체를 기피하고 있는 데도 말이다. 대통령의 말 가운데 정말 오해를 살 부분이 있다. 모든 기업을 살려야 한다는 뉘앙스다. 그건 애초 불가능하다. 죽일 기업은 죽일 수 있도록 해야 가능성 있는 기업으로 돈이 간다. 참모들이 아무 얘기도 안 하는지, 대통령이 귀를 열지 않는 것인지 궁금하다.
심상복 경제부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