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 대출 줄이고 금리는 올리고… "비오는데 우산 뺏는 격"
기업 / 환율 추가상승 예상 '달러 챙기기'… 원화 약세 초래
은행·개인·기업 등 경제 주체들이 전체 국익(國益)에 반대되는 '마이너스 베팅(betting·투자)'에 치닫고 있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각자가 '나부터 살고 보자'는 논리에 과도하게 갇힌 나머지 전체 이익을 해치고 있는 것이다.
개인 투자가들은 주가가 더 떨어지기를 기대하는 선물(先物) 매도에 나섰고, 기업들은 환율 추가 상승을 예상해 달러 챙기기를 하면서 환율 약세에 일조하고 있다. 은행들은 건전성 지표를 높이려 대출자금 회수에 나서면서 기업 자금난과 실물경기 악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각자도생(各自圖生·각각 살 길을 도모한다)이라지만, 저마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에 대해 공매도(空賣渡·주가 하락을 전제로 주식을 빌려 투자하는 것)에 나선 셈이다. 이로 인해 각자 입장에선 최선의 선택이나, 결과적으로 전체 이익을 해치는 '부분 최적, 집합 오류'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성신여대 강석훈 교수는 "각자 사익(私益)만 추구하는 나머지 모두가 더 큰 손해를 보는 전형적인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개인
지난 11~20일 동안 국내 증시는 8일 연속 하락, 글로벌 증시의 하락폭을 훨씬 상회했다. 지난 10월 폭락장에선 외국인 매도가 주목됐다면 이번 하락장에선 개인들의 선물 매도 주문이 단연 시선을 끌었다. 선물 매도는 주가가 하락해야 돈을 벌고, 주가가 오르면 손실을 보는 투자이다.
이번 8일간 하락기에 개인들의 하루 선물 매도 주문액은 이틀 빼고는 12조원을 넘었다. 작년 11월 하루 평균(10조 3000억원)보다 항상 1조~2조원 이상 많았다. 이는 곧 개인 투자자들이 증시가 추락하는 쪽에 돈을 걸었다는 뜻이다. 그 결과 오랜 하락장에서 모처럼 주가가 반등을 시도할 때도 하락을 노리고 들어온 선물 매도에 발목이 잡혀 주저앉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선물 매도 증가가 그 자체로 주가를 끌어내리지는 않지만 요즘 같은 불안한 장세에서는 선물시장에 '팔자' 주문이 쏟아지니, 주식시장도 덩달아 충격을 받고 프로그램 매물까지 쏟아지면서 '왝 더 독(선물시장이 주식시장을 뒤흔드는 현상)' 현상을 촉발하고 있다.
한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IMF 외환위기 때는 금반지 행렬까지 나오며 모든 경제주체들이 희생에 동참했는데, 지금은 위기가 기회니 하면서 제 살 길만 찾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인터넷 등에는 선물 투자로 하루 2억 원을 벌었다는 등의 투자일기가 히트를 치고 있다.
◆경기침체에 베팅하는 은행
평촌의 한 전자부품업체 사장 이모(46)씨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기업들에 대출을 정상적으로 해주라고 독려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면서 "유일하게 바뀐 것은 은행원들이 되레 '우리 사정도 좀 봐달라'며 애원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국내 은행들은 지난 9월 이후 대규모 대출 축소와 금리 인상에 나서 "비올 때 우산을 뺏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달엔 정부가 국민세금으로 은행들의 유동성(자금흐름) 불안과 외화 부족을 해결해 줬지만 은행들은 여전히 돈줄을 잠가놓고 있다. 이는 결국 은행들이 경기침체와 기업의 경영악화 쪽에 베팅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은행들은 "내가 살아야 남도 살릴 수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 A 외국계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한쪽으로는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 등 건전성 관리에 주력하라면서, 다른 한쪽으론 위험성을 감수하고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라는 것은 모순"이라며 "은행이 망하면 누가 책임지느냐"고도 말했다.
하지만 한 민간 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최악의 경우 은행의 건전성은 미국과 유럽처럼 정부가 직접 돈을 투입해서라도 지켜 줄 수 있다"면서 "은행들이 건전성을 내세워 기업 지원을 끊는 것은 공동체와의 상생(相生)을 고려하지 않는 이기주의"라고 비판했다.
◆원화 약세에 베팅하는 기업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 LG전자 등 국내 주요 수출 대기업들은 지난달부터 내부 보유 달러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평소에 비해 10~30%씩 보유 달러 물량을 늘린 곳도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중견·중소기업 중에도 달러를 외화예금 등의 형태로 예치해놓고 환율이 오를 때를 기다려 내다파는 곳이 적지 않다고 한 시중은행 지점장은 전했다.
심지어 수출을 해놓고 대금 결제는 환율이 더 좋을 시점을 기다려 미루고 있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가뜩이나 한 푼의 달러가 아쉬운 판국에 국내로 송금해오는 달러의 규모가 크게 줄면서 환율이 더욱 상승세(원화 약세)를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국내 외환시장의 최근 일일 거래 규모는 30억 달러 전후로 쪼그라들어, 금융위기 이전의 100억 달러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이에 대해 한 대기업 관계자는 "환차익은 노리는 게 아니라 은행조차 달러를 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수입대금을 결제할 때 달러가 부족해지는 상황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기업들의 외환 챙기기로 내다 파는 달러 물량이 적어지다 보니, 외환시장은 투기세력의 공격에 쉽게 노출되면서 환율이 상승세로 돌아가 결국은 기업들의 수입 비용 상승 부담으로 전이되는 등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
선물(先物) 매도
주가지수나 개별 주식 주가 등을 미래의 일정한 시기에 특정한 가격으로 사고팔기로 약속하는 것. 주가 하락 때 선물 매도 계약을 하면 현재 가격에 미리 팔고 난 뒤 나중에 떨어진 값으로 되사면 되기 때문에 차익을 남길 수 있다. 선물 매도로 선물가격이 과도하게 떨어질 경우 기관들의 컴퓨터를 이용한 대량 매도가 작동해 현물(주식)을 자동으로 팔아 치우게 된다.
죄수의 딜레마 (Prisoner’s Dilemma)
자기 이익에만 매달린 나머지 전체가 모두 손해를 본다는 게임이론. 경찰에 붙잡힌 두 명의 죄수가 모두 침묵하면 서로에게 이득인데 결국 상대방을 믿지 못해 둘 다 자백한다는 논리다. 각 부분에서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는 것이 결국 집합적으로는 오류가 된다는 '부분 최적, 집합 오류'도 같은 의미이다.
개인 투자가들은 주가가 더 떨어지기를 기대하는 선물(先物) 매도에 나섰고, 기업들은 환율 추가 상승을 예상해 달러 챙기기를 하면서 환율 약세에 일조하고 있다. 은행들은 건전성 지표를 높이려 대출자금 회수에 나서면서 기업 자금난과 실물경기 악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각자도생(各自圖生·각각 살 길을 도모한다)이라지만, 저마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에 대해 공매도(空賣渡·주가 하락을 전제로 주식을 빌려 투자하는 것)에 나선 셈이다. 이로 인해 각자 입장에선 최선의 선택이나, 결과적으로 전체 이익을 해치는 '부분 최적, 집합 오류'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성신여대 강석훈 교수는 "각자 사익(私益)만 추구하는 나머지 모두가 더 큰 손해를 보는 전형적인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개인
지난 11~20일 동안 국내 증시는 8일 연속 하락, 글로벌 증시의 하락폭을 훨씬 상회했다. 지난 10월 폭락장에선 외국인 매도가 주목됐다면 이번 하락장에선 개인들의 선물 매도 주문이 단연 시선을 끌었다. 선물 매도는 주가가 하락해야 돈을 벌고, 주가가 오르면 손실을 보는 투자이다.
이번 8일간 하락기에 개인들의 하루 선물 매도 주문액은 이틀 빼고는 12조원을 넘었다. 작년 11월 하루 평균(10조 3000억원)보다 항상 1조~2조원 이상 많았다. 이는 곧 개인 투자자들이 증시가 추락하는 쪽에 돈을 걸었다는 뜻이다. 그 결과 오랜 하락장에서 모처럼 주가가 반등을 시도할 때도 하락을 노리고 들어온 선물 매도에 발목이 잡혀 주저앉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선물 매도 증가가 그 자체로 주가를 끌어내리지는 않지만 요즘 같은 불안한 장세에서는 선물시장에 '팔자' 주문이 쏟아지니, 주식시장도 덩달아 충격을 받고 프로그램 매물까지 쏟아지면서 '왝 더 독(선물시장이 주식시장을 뒤흔드는 현상)' 현상을 촉발하고 있다.
한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IMF 외환위기 때는 금반지 행렬까지 나오며 모든 경제주체들이 희생에 동참했는데, 지금은 위기가 기회니 하면서 제 살 길만 찾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인터넷 등에는 선물 투자로 하루 2억 원을 벌었다는 등의 투자일기가 히트를 치고 있다.
◆경기침체에 베팅하는 은행
평촌의 한 전자부품업체 사장 이모(46)씨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기업들에 대출을 정상적으로 해주라고 독려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면서 "유일하게 바뀐 것은 은행원들이 되레 '우리 사정도 좀 봐달라'며 애원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국내 은행들은 지난 9월 이후 대규모 대출 축소와 금리 인상에 나서 "비올 때 우산을 뺏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달엔 정부가 국민세금으로 은행들의 유동성(자금흐름) 불안과 외화 부족을 해결해 줬지만 은행들은 여전히 돈줄을 잠가놓고 있다. 이는 결국 은행들이 경기침체와 기업의 경영악화 쪽에 베팅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은행들은 "내가 살아야 남도 살릴 수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 A 외국계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한쪽으로는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 등 건전성 관리에 주력하라면서, 다른 한쪽으론 위험성을 감수하고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라는 것은 모순"이라며 "은행이 망하면 누가 책임지느냐"고도 말했다.
하지만 한 민간 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최악의 경우 은행의 건전성은 미국과 유럽처럼 정부가 직접 돈을 투입해서라도 지켜 줄 수 있다"면서 "은행들이 건전성을 내세워 기업 지원을 끊는 것은 공동체와의 상생(相生)을 고려하지 않는 이기주의"라고 비판했다.
◆원화 약세에 베팅하는 기업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 LG전자 등 국내 주요 수출 대기업들은 지난달부터 내부 보유 달러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평소에 비해 10~30%씩 보유 달러 물량을 늘린 곳도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중견·중소기업 중에도 달러를 외화예금 등의 형태로 예치해놓고 환율이 오를 때를 기다려 내다파는 곳이 적지 않다고 한 시중은행 지점장은 전했다.
심지어 수출을 해놓고 대금 결제는 환율이 더 좋을 시점을 기다려 미루고 있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가뜩이나 한 푼의 달러가 아쉬운 판국에 국내로 송금해오는 달러의 규모가 크게 줄면서 환율이 더욱 상승세(원화 약세)를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국내 외환시장의 최근 일일 거래 규모는 30억 달러 전후로 쪼그라들어, 금융위기 이전의 100억 달러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이에 대해 한 대기업 관계자는 "환차익은 노리는 게 아니라 은행조차 달러를 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수입대금을 결제할 때 달러가 부족해지는 상황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기업들의 외환 챙기기로 내다 파는 달러 물량이 적어지다 보니, 외환시장은 투기세력의 공격에 쉽게 노출되면서 환율이 상승세로 돌아가 결국은 기업들의 수입 비용 상승 부담으로 전이되는 등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
선물(先物) 매도
주가지수나 개별 주식 주가 등을 미래의 일정한 시기에 특정한 가격으로 사고팔기로 약속하는 것. 주가 하락 때 선물 매도 계약을 하면 현재 가격에 미리 팔고 난 뒤 나중에 떨어진 값으로 되사면 되기 때문에 차익을 남길 수 있다. 선물 매도로 선물가격이 과도하게 떨어질 경우 기관들의 컴퓨터를 이용한 대량 매도가 작동해 현물(주식)을 자동으로 팔아 치우게 된다.
죄수의 딜레마 (Prisoner’s Dilemma)
자기 이익에만 매달린 나머지 전체가 모두 손해를 본다는 게임이론. 경찰에 붙잡힌 두 명의 죄수가 모두 침묵하면 서로에게 이득인데 결국 상대방을 믿지 못해 둘 다 자백한다는 논리다. 각 부분에서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는 것이 결국 집합적으로는 오류가 된다는 '부분 최적, 집합 오류'도 같은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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