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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안 통과 쇼'가 보여준 우리 국회의 수준

화이트보스 2008. 12. 15. 16:33

'예산안 통과 쇼'가 보여준 우리 국회의 수준

국회는 13일 본회의를 열어 정부 원안보다 1000억원 삭감된 217조5000억원 규모 내년도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한나라당자유선진당 등이 참석했고 민주당민노당은 회의 진행을 방해하면서 표결에 불참했다.

국회의 올해 예산안 심의·의결 과정은 시종 졸속과 파행의 연속이었다. 당초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12일까지 예산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이 날짜도 헌법이 정한 예산안 처리시한보다 열흘이나 늦은 것이었다. 그러나 정치 공방 속에 툭하면 회의가 공전하면서 제대로 된 심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국회는 결국 12일 밤 11시 소집된 본회의에서 국회의장 직권으로 상정된 종부세법·소득세법 개정안 등 예산관련 법안 13개를 처리했다.

이튿날 오전 11시쯤 예산안이 통과될 때까지 국회는 난장판 그 자체였다. 지금까지의 예산안 세부조정 결과를 반영키 위해 국회 정무위와 행정자치위, 기획재정위, 국토해양위 등을 급히 열어야 했고 정부 실무자들은 예산 심의자료의 수치 오차를 바로잡느라 새벽 5시까지 수정을 거듭했다. 오전 6시쯤 국회 예산결산특위 계수조정소위가 열려 1시간 30분 만에 1000쪽 가까운 예산자료 검토를 마쳤다. 자료를 정독하기에도 턱없이 짧은 시간에 국민 세금을 얼마나 걷고 어디에 쓸 것인가 하는 문제가 결정된 셈이다. 이어 열린 예결특위와 본회의도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표결을 거부하고 '12·12 예산쿠데타' 피켓을 든 채 회의장 앞에서 농성했다. 민노당은 본회의장 단상 점거를 시도했고 의원 5명과 보좌관 20여 명이 국회 곳곳을 돌아다니며 "강도 잡는 깡패가 되겠다"고 떠들었다. 국회가 원칙도 규율도 없는 무법천지로 전락한 것이다.

지금 나라가 직면한 경제위기를 생각한다면 여야는 1분1초도 허비할 수 없다는 자세로 예산에 꼭 담아야 할 것, 세금이 몰래 새는 곳을 찾아내는 데 전념했어야 한다. 그러나 올해 예산안 심의·처리는 다른 어느 때보다 졸속으로 이뤄졌고 정치권은 처음부터 문제의식이나 위기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예산안 처리과정에서 3류 활극을 연출했던 여야는 연말 임시국회까지 한미FTA, 금산분리, 출자총액제한 완화, '떼법 방지법', 미디어 관련 법안 등을 놓고 격돌을 이어가겠다고 예고했다.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쟁점 법안은 전쟁모드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고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을 대화와 협상 파트너로 인정할 수 없다"며 결사저지를 다짐했다. 구제 불능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