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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대외정책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파리드 자카리아 뉴스위크 국제판 편집인이 뉴욕 뉴스위크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아래 작은 사진은 5월 오바마가 자카리아의 저서 『미국 이후의 세계 (The Post-American World)』를 들고 있는 장면.[뉴욕지사=안준용 기자] | |
미국의 젊은 스타 국제정치학자이자 칼럼니스트로 오바마의 국제정세 인식에 영감을 주고 있는 자카리아를 지난 16일 뉴욕의 뉴스위크 16층 사무실에서 만났다. 인터뷰 직전 그의 비서는 시간을 지켜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워낙 성품이 착해 상대방이 인터뷰 시간을 넘겨도 중간에서 끊지 못한다”는 것이다. 방에 들어서니 사방에 정치·경제에서부터 이슬람 관련 서적에 이르기까지 각종 책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특히 그의 의자 뒤에 꽂혀 있던 『하마스 (이슬람 과격단체)』라는 붉은 표지의 책이 눈길을 끌었다. 기자에게 반갑게 손을 내미는 그의 첫인상은 무척이나 부드럽고 겸손해 보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국제정세 논의가 시작되자 표정과 어투 모두 단호하게 바뀌었다.
- 각종 칼럼과 저서에서 제시한 ‘새로운 거대 전략 (New Grand Strategy)’의 요체는.
- 미국은 주변국이자 최대 경쟁국인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하나.
- 그렇다면 미국으로서는 약한 중국과 강한 중국 중 어느 쪽이 바람직한가.
“미국은 중국에 대한 영향력에 한계가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중국의 미래는 자신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확실한 건 안정된 중국이 우리에게 훨씬 유리하다는 사실이다. 안정된 중국이란 경제적 번영과 함께 자부심을 갖춘 상태일 것이다. 중국이 붕괴한 상황을 상상해 보라. 물론 중국의 힘은 약해질 것이다. 엄청난 유민이 전 세계를 덮을 것이고, 국제적인 정치갈등이 일어나게 된다. 나아가 중국 경제는 물론 미국에 이어 전 세계 경제가 무너지게 된다. 안정된 중국은 강한 중국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것이 미국·한국과 전 세계에 도움이 될 것이다.”
-미·중 관계가 한반도에 미칠 영향은.
“아시아 어느 나라보다 한국엔 지역적 안정이 절실하다. 지역적 불안정성은 각국에 경제적 위기 등 악영향을 줄 게 분명하지만 특히 한반도의 경우 북한의 붕괴를 촉발시킬 수 있다. 이로 인해 북한이 남한에 흡수되면 한국의 발전이 20년 정도 지장을 받게 될 것이다. 독일의 경우 국내총생산(GDP)의 5%가량을 전 동독 지역 개발에 쓰고 있다. 독일 통일 이후 19년째다. 따라서 새로운 거대 전략은 어느 나라보다 한국에 바람직한 것이다.”
- 최근 경제위기가 세계 질서에 끼친 영향은.
“이번 사태를 통해 미국 등 주요국들도 국제적 현안은 상호 협력을 통해 풀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됐다. 금융자본은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전 세계를 흘러다닌다. 그래서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G7, G8도 아닌 G20이라는 체제를 통해 문제에 접근해야 했다. 즉 사상 처음으로 서방 선진국들이 주변국들과 손잡고 새로운 문제 해결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이는 훨씬 더 안정적이고 정당성 있는 체제다. 앞으로 미국이 어떤 정책을 써야 할지를 파악하려면 G20을 보면 된다. 앞으로 G8로 회귀할 일은 없을 것이며 G20이 이를 대체할 것이다.”
- 미국이 지도적 위치를 잃는 데 대한 반발은.
“미국 외교관들은 과거 모델에 익숙해 있다. 이들은 노선이 정해지면 다자외교란 명목으로 서울에 가서 ‘이렇게 해 달라’고 정중히 요청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서울에 가서 ‘당신 생각은 뭐냐, 뭐를 기여할 수 있느냐’ 등을 묻고 공통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다른 나라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할 수 있다.”
-한국의 역할은.
“그간 비서방국가로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국가는 일본과 한국밖에 없다. 중국과 인도는 여전히 1인당 국민소득 면에서 뒤떨어져 있다. 한국은 다른 후진국들에 경제 발전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확히 제시할 수 있다. 선진국과 후진국 간 중개자 역할도 가능하다.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지만 한국의 민주화 성공사례도 중요하다. 이런 경험들이야말로 다른 후진국들이 눈여겨 볼 사안이다. 발전 도중 멈춰 버린 중남미 국가들은 참고하기 어렵다.”
- 한국에 가본 적이 있나.
“아직 못 가봤지만 내년 9~10월께 갈 생각이다.”
- 오바마 당선인에게 대북 문제는 우선순위가 낮다고 하는데.
“세상사는 여유를 주지 않는다. 임의로 우선순위를 정하더라도 갑작스럽게 위기에 처하면 그에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인도와 파키스탄도 최우선순위에 들지 않았지만 테러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신속한 대응조치가 취해졌다. 대북 문제에서 중요한 점은 북한이 협력하면 보상을 받았던 것처럼 이를 거부하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각인시키는 일이다. 특히 미국뿐 아니라 중국이 여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중국의 영향력이 미국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중국은 현재 국내 문제에 너무 몰입하고 있어 이들의 관심을 돌릴 필요가 있다.”
-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면 대북정책은 바뀔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오바마는 비록 사람을 바꿀 수는 있지만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추진하는 방식을 지지한다.”
- 오바마를 만난 적이 있는가.
“만난 적이 있고, 그 후에도 현안이 생기면 구체적인 정책 등을 놓고 여러 번 통화했다. 우리는 서로를 존중한다. 그는 무척 스마트하다.”
- 오바마에게 해 준 가장 중요한 조언은.
“지금이 다른 나라에 대한 미국의 대응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을 여러 번 얘기했다. 그간 미국은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미국은 다른 나라를 향해 이야기만 했지 들으려 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가 중에서 문화적으로 풍요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들 국가에는 이들 나름의 생각이 있다.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다른 나라에 대한 대응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 오바마가 북한 문제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는가.
“나로서는 절대 말해선 안 될 사안이다. 오바마는 함께 나눈 얘기가 외부에 발설되지 않을 걸로 믿고 이야기했다.”
- 오바마는 적과도 대화를 해야 한다고 했다. 가까운 시일 내에 김정일과 만날 가능성은.
“사람들은 오바마가 토론회에서 한 번 한 얘기의 의미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가 말하려 했던 건 의견이 다른 적이라도 만날 태세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우리는 옛소련도 중국도 만났다. 그러나 김정일이든,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든,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든 이들을 만나는 게 생산적인 일인지부터 따지는 게 중요하다. 이런 만남은 실무적 차원에서 먼저 합의가 이뤄진 후에 성사돼야 한다.”
-한국의 한류를 아는가.
“물론이다. 중국은 좀 덜하지만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건 모두 한국 거라더라. 한류야말로 진정한 글로벌화와 주변국의 부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어서 개인적으로 큰 흥미를 갖고 있다. 과거엔 외국 문화라고 하면 모두 미국산이었다. 어느 나라에서든 외국 문화라면 비틀스의 노래, 할리우드 영화를 뜻했다. 그러나 요즘 일본에 가면 미국·일본 문화 외에 한국의 음악·드라마 등이 무척 많다. 이야말로 진정한 글로벌화를 뜻한다. ”
뉴욕=남정호 특파원
파리드 자카리아는
1964년 1월 인도 뭄바이에서 태어난 칼럼니스트이자 국제문제 전문가. 미국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땄다. 이후 외교 문제 전문지인 포린어페어 편집장을 지낸 뒤 뉴스위크 국제판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명료한 논리 전개로 유명한 그는 뉴스위크를 비롯해 뉴욕 타임스·워싱턴 포스트 등에 칼럼을 쓰면서 명성을 얻었다. CNN방송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국제 문제 관련 시사프로그램을 매주 진행하기도 한다. 『자유의 미래 (The Future of Freedom)』 『부에서 권력으로 (From Wealth to Power)』 등 여러 권의 저서가 있다. 특히 올 5월에 출간한 『미국 이후의 세계 (The Post-Americnan World·사진)』는 오바마의 애독서로 뉴욕 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