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祐鏞(이우용) 삼성서울병원 외과 전문의는 우리 농산물 애호가다. 그는 비만아동의 부모를 만날 때마다 ‘신토불이’에 대해 열띤 강론을 펼치곤 한다. 최근 10년 동안 대장암 환자만 3000명 넘게 수술한 그는 “食(식)습관이 서구화하면서 대장암 환자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면서 “비만아동은 20~30년 후 대장암에 걸릴 확률이 보통 아이들보다 높다”고 걱정한다. 암 예방 차원에서라도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올바른 식습관을 갖도록 부모가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국내 암 환자 발생 빈도는 위암, 간암, 대장암 순으로 높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대장암이 간암을 누르고 2위로 올라섰어요. 달라진 식생활 문화 때문에 이전에는 40대 이후에 많이 생기던 대장암이 요즘에는 20, 30대는 물론 10대에도 발병하고 있습니다.”
이웃나라 일본도 사정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 일본 의학계는 머지않아 대장암 환자가 간암 환자보다 많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식습관과 대장암의 상관관계는 하와이로 이민 간 일본인들의 암 발생 변화 보고서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일본계 하와이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대장암 환자가 위암 환자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고 한다.
아이들 식습관 지금부터 바꿔라
대장은 소장 끝에서 시작하여 항문에 이르는 약 1.5m 길이의 장기로서 맹장, 결장(상행, 횡행, 하행), 직장 및 항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장의 주요 기능은 소장에서 영양분을 흡수하고 남은 음식찌꺼기를 변으로 만들어 항문을 통해 배출하는 것이다. 여기에 문제가 생기면 배변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으며, 심한 경우 생명을 잃는다.
대장암은 오랜 세월 장에 쌓인 오물이 독성을 지니면서 생기는 질환이라 장년층에서 많이 발병한다. 아직까지 대장암 환자의 90%는 50대 이상이 차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대에 와서 대장암 환자가 급증한 데는 평균 수명이 늘어난 것도 한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과거에는 대장암이 발병하기 전 수명을 다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우용 박사는 “1989년 서울대병원에 있을 때만 해도 대장암 수술을 1주일에 한 건 정도 했는데 지금은 1주일에 평균 10건씩 한다”고 말했다.
“10년 전만 해도 위암과 대장암의 수술 비율은 3 대 1 정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1 대 0.9 수준으로 대등해진데다, 점점 늘고 있어요. 발병 연령층도 다양해지고 있고요. 대장암 발병률을 줄이기 위해서는 고기는 좋아하면서 야채는 싫어하는 어린이들의 식생활 습관부터 바로잡아야 합니다.”
소화기 계통 질환이 식습관과 연관이 깊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진들에 의해 밝혀졌다. 가족력에 의한 발병도 따지고 보면 식습관에 원인이 있다는 얘기가 있다. 육류를 많이 먹는 집안과 채소류를 즐기는 집안의 암 발병률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高지방질 음식은 소화기 계통의 각종 염증과 질환을 유발하는 반면, 섬유질이 많은 음식은 발암물질을 제압해 암 생성을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우용 박사는 “대장암 수술이 주된 업무지만 치료보다는 암 발생 단계에서 예방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식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금부터라도 아이들의 식생활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머지않아 대장암이 발병 1위 자리에 오를 것이란 지적이다.
그렇다면 암 예방에 좋은 식습관은 어떤 것일까. 그는 “균형 있는 식사를 하되 가급적 육류는 줄이고 야채를 많이 먹는 것이 좋다”며 이렇게 말한다.
“붉은 색 육류나 가공된 육류는 될 수 있으면 피하고, 가금류나 생선, 두부 등을 통해 양질의 단백질을 섭취하는 게 좋습니다. 세균과 싸우는 면역세포는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야채뿐만 아니라 좋은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는 고기도 적당히 섭취해야 해요. 미국의 경우 1인당 육류 소비량을 1주일에 500g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우리는 체격이 작으니까 300g 정도가 적당하다고 봅니다.”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임상 시험을 통해 붉은 색 육류와 가공 육류가 대장암 위험 증가 요인 중 하나라고 지목해 왔다. 이 식품군을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한다면 되도록 낮은 온도에서 조리하고, 튀기거나 굽는 것보다 삶거나 쪄서 먹으라고 권장한다.
체지방(특히 복부 지방)을 높이는 알코올도 대장암을 증가시키는 많은 요인 중 하나다. 전문가들은 동물성 지방이나 당분이 함유된 식품, 치즈 등도 가능하면 멀리하는 것이 좋다고 지적한다.
반면 대장암 위험 요소를 감소시키는 좋은 습관으로 ‘적당한 운동으로 체중 조절하기’, ‘섬유소를 함유한 식품 섭취하기’, ‘항암 식품으로 알려진 마늘을 꾸준히 먹기’, ‘양질의 칼슘 및 단백질이 함유된 우유 마시기’ 등을 꼽는다.
이 밖에 다양한 과일과 생선, 엽산(비타민 B9, 혹은 비타민 M) 함유 식품(시금치, 상추, 키위, 오렌지, 바나나, 호박, 브로콜리 등)과 셀레늄 함유 식품(호두, 잣 등의 견과류와 조개, 굴, 새우 등의 어패류) 등이 대장암 예방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우용 박사는 “육류든 야채류든 가급적이면 국산을 먹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국내에서 키우고 재배된 것이 가장 신선하고, 별다른 약품 처리 없이 자연상태로 숙성된 것이라 영양소도 풍부하고 건강에도 좋단다. 그는 야채를 기피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우리 농산물 많이 먹기’ 캠페인을 전개할 참이다.
“우리 땅에서 재배한 싱싱한 야채가 대장암 예방에 좋다는 사실은 대한대장항문학회가 보증합니다. 아이들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 우리 학회는 앞으로 농협중앙회와 협의해 야채를 파는 대형 마트에서 암 예방에 대한 대대적인 캠페인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농협중앙회 측도 적극적이었다. 朴興鐵(박흥철) 상무는 “우리 농산물 애용과 소비촉진을 위해 각 의료단체와 협력하여 가족건강 행복식탁 지키기 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어릴 적 식습관이 평생의 건강을 좌우합니다. 농협중앙회는 앞으로 의료전문단체와 공동으로 건강한 식문화 정착시키기 캠페인을 갖고, 유치원과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우리 농산물이 왜 건강에 좋은지 설명할 예정입니다. 또 비만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농촌사랑 시범마을과 팜스테이 마을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장기적으로 의료기관과 협력하여 아토피 등 기타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웰빙마을’을 육성할 계획입니다.”

대장암의 증상
건강한 식이습관 외에 또 다른 예방법은 조기 검진이다. 이우용 박사는 “대장암은 발병 후 2~3년 동안 아무 증상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며 이렇게 설명한다.
“대장은 복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어져 있는데 암 발병 시 양쪽의 증상이 많이 다릅니다. 우선 소장에 가까운 오른쪽에 발병할 경우 피가 나지만 변에 섞여서 보이지 않고, 약간의 빈혈이 있을 뿐이죠. 이 때문에 암 세포가 상당히 자랄 때까지 별 다른 증상을 못 느낍니다. 빈혈이 심해지고, 소화불량에 변 색깔이 검어질 즈음이면 배에 덩어리가 만져지는데, 이는 벌써 3기 증상입니다.”
항문에서 가까운 왼쪽에 발병할 경우 증상이 뚜렷이 나타난다. 변에 붉은 피가 묻어나 변기가 시뻘게지기도 하고, 이전에 비해 변을 자주 여러 번 보게 되며 항문 안쪽에 이물질이 있어서 금방 변을 보고도 개운치가 않다. 또한 변에 코 같은 물질이 묻어나기도 한다.
암 세포가 오른쪽에 있을 경우 내시경을 해도 관찰하기가 쉽지 않아 수술도 까다롭다. 반면 왼쪽에 있는 경우 항문으로부터 15cm까지 만질 수 있어 수술이 쉽다. 다행스럽게도 대장암의 70%는 왼쪽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대장암은 다른 암에 비해 완치율이 높다. 이우용 박사는 “대장암 역시 조기에 발견할수록 완치율이 높으니 40세가 되면 필히 대장 내시경을 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일반적인 경우 용종 크기가 0.5~1cm이면 암으로 변할 확률은 2%이고, 2cm가 넘으면 20~30%입니다. 용종이 0.5~1cm 커지는 데는 1~2년이 걸리죠. 우리의 목표는 2cm 미만의 용종을 마취 없이 내시경만으로 제거하는 것입니다. 이때의 완치율은 95%나 되죠. 2cm가 넘어가면 수술을 해야 하는데, 완치율이 2기 때는 80~90%, 3기 때는 50~70%입니다. 사람들이 죽는 것으로 아는 4기 환자도 대장암의 경우에는 완치율이 30~40%나 됩니다.”
名醫는 환자와 환자 가족이 만든다
대장암 발병률은 다른 암(여성 암 제외)과 마찬가지로 여자보다 남자가 훨씬 높고, 마른 사람보다는 뚱뚱한 사람이 높다. 발병 시 수술도 남자가 여자보다 어렵다. 남자들의 경우 여자들에 비해 골반이 좁고 깊기 때문이라고 한다. 복부 비만인 환자는 대장암에 걸리기도 쉽지만 수술도 어렵다고 한다.
“직장암의 경우 골반을 통해 수술을 해야 하는데, 남자들은 골반이 좁고 깊어서 환부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웬만한 테크닉이 아니고서는 수술하기 힘들죠. 게다가 골반 부위에 성 기능 신경과 소변 기능 신경이 있어 수술 후 사정액이 줄고 발기가 안 되는 등 성 기능 장애가 올 수도 있고, 소변을 볼 수 없어 소변줄을 꽂아야 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그래서 우리끼리는 남자들의 골반을 일컬어 ‘저주 받은 골반’이라고 얘기하곤 해요.”
대장암은 유전성 요인이 가장 먼저 밝혀진 질환이기도 하다. 이우용 박사는 “가족성 용종증이 있는 대장암은 가족을 특별 관리해야 한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가족성 용종증 대장암은 식습관과 상관 없이 장 안에 혹이 100개 이상, 심한 경우 수천, 수만 개가 생기는 질환으로, 50% 정도 유전되는 것으로 밝혀져 있습니다. 이 경우 부모가 대장암 병력이 있다면 그 2세들은 부모에게 대장암이 최초로 발병한 시점보다 5년 빨리 정기검진을 받아야 해요.”
그는 개인적으로 가족성이 있는 대장암 환자를 대할 때가 가장 가슴 아프다고 한다. 어느 해인가는 결혼을 1주일 앞둔 여자 두 명이 출혈이 있어 1주일 간격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한다. 검진해 보니 가족성 용종증 대장암이었다. 이 사실을 안 예비신랑 중 하나는 곧바로 파혼을 했고, 다른 한 사람은 그대로 결혼을 강행했다. 하지만 1년 후 신부는 사망했다. 이우용 박사는 “예비신부의 병력을 알고도 결혼한 남자가 존경스러웠다”고 말했다.
수술 후 완치 여부는 환자의 노력과 주위 식구들의 협조에 따라 달라진다. 이우용 박사는 “똑같이 수술을 해도 어떤 환자는 재발하고 어떤 환자는 재발하지 않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암은 의사는 물론, 환자 자신과 주위 가족 등이 삼위일체가 되어야 치료할 수 있는 질환입니다. 본인도 노력해야 하지만 가족도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해요. 솔직히 요즘은 의료계가 평준화되어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의사는 없어요. 10년 경력의 의사라면 테크닉은 대동소이하죠. 그런 점에서 名醫(명의)는 환자와 가족들이 만든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족의 협조란 곧 식이요법을 두고 하는 말이다. 대장암 수술 후 회복에 좋은 음식은 대장암 예방에 좋은 음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우용 박사는 “방금 수확한 신선한 과일과 야채는 만병통치약과 같다”고 말했다.●
[미니기사]
대장암 증상에 대한 몇 가지 오해
대장암은 흔한 질환이고, 발견만 하면 치료하기가 쉬운 편에 속하는데도 잘못 알려진 상식 때문에 병을 키우는 사례가 많다. 반대로 간단한 염증일 뿐인데도 암으로 오해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있다.
▲ 변기에 출혈이 보이면 무조건 치질이다?
출혈이 보이면 80~90%는 치질이다. 하지만 대장암의 경우에도 출혈이 나타나니 이럴 때는 검진을 받는 것이 좋다. 치질 검사 중 대장암이 발견되는 사례가 많다.
▲ 대장암을 수술하면 모두 인공항문을 달아야 한다?
인공항문을 다는 경우는 극히 일부다. 인공항문은 괄약근에서 가까운 곳을 절제해야 할 경우 달게 된다. 과거에는 환부가 괄약근으로부터 최소 4cm 이상 떨어져 있어야 인공항문을 달지 않아도 되지만 최근에는 기술이 발달해 괄약근으로부터 2cm까지도 인공항문 없이 수술이 가능하다.
▲ 대장암 수술 후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
수술 전과 마찬가지로 수술 후에도 균형 잡힌 식사를 해야 한다. 특히 항암 치료 때는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고단백질 음식을 먹어야 한다. 운동도 마찬가지. 하루 20~30분씩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 배변 습관이 변했는데 혹시 암 아닐까?
정기검진을 받은 지 한 달도 안 되어 배변 습관이 달라졌다며 재검진을 하러 오는 이가 있다. 과민성대장증후군을 암으로 오해하는 경우다. 대장 내시경은 한 번 제대로 받으면 2~3년 동안은 문제가 없다. 다만 용종이 있는 경우에는 1년 후 재검진을 받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