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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진면목’보려면 중국 여산에 가라”

화이트보스 2008. 12. 25. 17:49
[레저]“‘진면목’보려면 중국 여산에 가라”

[레저]여산(廬山)
풍경·문화·교육·종교 한 몸에 지닌 세계 명산
장강 중류 제일 큰 담수호인 파양호 주변에 위치
높이 1484m 대한양봉 한개의 지루식 단절덩어리 산

2006년 11월 02일 00시 00분 입력

남송시대때 한 나무꾼이 발견했다는 그 유명한 ‘삼첩천 폭포’“하나의 진주같은 폭포를 감추기 위해 여산은 겹겹히 감싸고 있었는가“라고 할 정도로 너무나 웅장하고 주변의 풍광과 잘 어우러져 있다./기경범 기자 kgb@

중국남부 강서성에 위치해 있는 여산은 풍경과 문화, 교육, 정치, 종교를 한 몸에 지닌 세계 명산이다. ‘진면목’이란 단어가 여산에서 첫 나왔던 것처럼 그 진가를 알려면 직접 여산에서 찾으라 했던가? 일년 365일 중 200여일을 운무에 뒤덥혀 천운이 없으면 여산의 진풍경을 보지 못하리라.

▲여산(廬山)

중국의 황산과 장가계에 버금가는 명산인 여산은 중국의 저명한 장강 중류의 남쪽기슭 제일 큰 담수호인 파양호 주변에 위치해 있으며, 지형은 암층이 끊어져 갈라지면서 형성된 산이다.

1996년 문화경관유산으로서 세계유산명록에 등록될 정도로 여산은 험준한 산봉우리와 기이한 자연풍광은 수려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최고산봉우리 높이가 1484m인 대한양봉으로 한개의 독특한 지루식 단절덩어리 산이다.

겉으로는 험준하고 내속으로는 아름다워 원래부터 지질공원이란 이름이 있었다.

첩첩산중 높이 솟은 봉우리와 굽이쳐 흐르는 강물, 검푸룬 호수는 옛 나무꾼이 선녀의 옷을 가로 채 한평생 같이 살았다는 옛 구전이 여기에서 나오지 않았냐는 설이 있을 정도다.

2천여년전 중국의 첫 기전체역사책의 작자인 사마천이 여산에 올라 ‘사기’에 기록했고, 기원 756년 당나라의 저명한 시인인 ‘이백’은 여산의 3겹폭포를 묘사해 천고에 남을 유명한 시를 남기기도 했다.

‘향로봉에 해가 비쳐 보랏빛 연기일고/ 멀리폭포가 비단처럼 걸렷구나/ 삼천척을 날아 흐르는 저 은하수/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가’

또한 ‘이태백’은 “내가 천하를 돌아다녀 유람해본 산수는 매우 많은데 아름답고 웅위로우며 기이하고도 특별함은 이산을 초과하는 곳이 적드라, 정말 천하의 절승이로구나”라고 여산을 칭찬한바 있다.



여산은 아열대계절풍으로 산지기후 특색을 가지고 있어 강수량이 연간 1천 917mm에 달해 운무가 빈번, 연평균 안개낀 날짜가 190일이 넘어 여름에 시원하고 상쾌하다.

여산의 볼만한 관광특색은 풍경구내의 16개의 큰 기이한 자연풍광과 474개 경관지점이 있다.

이들을 합치면 ‘봄은 꿈같고, 여름은 떨어진 물방울 같으며, 가을에는 취하는 것 같고, 겨울에는 옥 같다’며 오래전부터 ‘중국 전원시의 탄생지, 산수시의 발원지, 산수화의 발상지’로 알려졌다.

이렇듯 여산은 2천년이래 도연명, 사영운, 이백, 백거역, 소시, 왕안석,등 1천500여명에 달하는 유명한 문학가, 정치가, 예술가들이 생활, 유람하며 4,000여수의 여산을 찬양하는 시사가부와 많은 문장, 여행기, 그림들을 그렸다.

지금까지도 중국문화역사상 명편명작 등 고대문화유적들이 보존돼 있는데 상고시기의 문화유적이 20여곳, 중고시기의 문화유적이 600여곳, 마애석각이 900여곳, 글새긴비석이 300여개가 남아 있다.


남송시대때 한 나무꾼이 발견했다는 그 유명한 ‘삼첩천 폭포’“하나의 진주같은 폭포를 감추기 위해 여산은 겹겹히 감싸고 있었는가“라고 할 정도로 너무나 웅장하고 주변의 풍광과 잘 어우러져 있다.


세계지질공원마크


여산의 아름다운 산세


여산의 특산품인 운무차 판매소


옛 별장을 호텔로 개조해 사용


여산을 중국남방의 불교중심으로 만든 불교수령 혜원은 기원 391년 여산에 동림사를 세우고 관상념불의 정토인 법문을 수립해 중국식 불교를 개척했다. 또한 중국본토종교인 도교의 선조 육수정도 여산에서 도교 남천사파를 개척했다.

이렇듯 기원4세기부터 13세기 까지 여산은 종교가 흥성하고 사묘가 500여개에 달했다.

명나라와 청나라 이후 이슬람교와 기독교, 천주교도 여산에 교회당을 수립 선교하였으며, 한산에 5개의 종교가 자라잡는 현상까지 빚어졌다.

기원 940년에 창건한 백녹간서원은 중국고대 4대서원에서 첫번째로 가는데 송나라 교육가 주희가 제기한 교육사상과 교육규제는 중국 고대교육의 준칙 및 지금도 세계교육역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림2중앙#

역사상 여산은 많은 중대한 사건들을 유발했는데 진나라때부터 청나라까지(기원전 221-1911), 무려 30여명의 황제들이 여산의 문화 창조 발전에 참여했다. 또한 국민정부의 여름수도로도 불리웠고, 1937년 중국공산당은 국공(國共)양당의 연합항일을 촉성하기도 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후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여산에서 세번이나 회의를 소집, 중국의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여산에는 근대별장들이 모여있는 고산도시 ‘고령진’이 있는데 세계적으로 서늘한 도시라는 뜻에서 쿨링(Kuling)으로 더 알려져 있고 지금까지도 완전하고 양호하게 보존돼 있고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등 25개 국가의 가지각색 품격을 띈 별장들이 1,000여채 있다.

그중 놓치지 말아야 할 명소중의 하나가 1903년에 지어진 ‘미여별장’으로 장개석과 그의 부인 송미령에게 선물로 주어진 곳이다. 곳곳에 페인트 칠이 벗겨지고 훼손 됐지만 부부가 살던 흔적과 유품이 아직고 기념관에 많이 전시되어 있다. 화려하게 장식된 송미령의 침실에는 부부가 사이좋게 찍은 기념사진이 걸려 있다.

오늘날에 여산회의회지로 더 잘 알려진 ‘인민극원’은 1959년부터 1970년사이 지도자 모택동이 중국의 현대사를 바꾸던 곳으로 쓰여졌다.

#그림3중앙#

고령 옆에는 노림호가 있는데 ‘모택동의 옛집’과 ‘여산박물관’도 자리해 있다. 박물관의 동쪽에는 모택동 기념시비를 모아놓은 ‘모택동 시비원’이 있고 동쪽에는 여산과 그 주변에서 서식하고 있는 3,000여 동식물과 열대식물들의 표본이 전시되어 있는 ‘식물관’이 있다.

또한 남송시대때 한 나무꾼이 발견했다는 그 유명한 ‘삼첩천 폭포’가 있는데 일본에서 제작한 전동 모노레일을 타고가 2천800여계단을 오르 내려야한다.

“하나의 진주같은 폭포를 감추기 위해 여산은 겹겹히 감싸고 있었는가“라고 할 정도로 너무나 웅장하고 주변의 풍광과 잘 어우러진 ‘여산의 진면목’중 하나다.

등반시간은 3시간 정도 걸리며 글자그대로 세개로 겹쳐진 물살의 폭포가 시원하게 떨어지고 주변에는 안개구름이 폭포를 휘감고 있다.
약 215m 높이에서 3층으로 떨어지는 폭포는 가을에 아름다움의 극치를 자랑한다.
특히 이곳에서 일몰을 바라보는 것은 환상적인 경험이 될것이다.

/중국 여산    글·사진=기경범 기자 kgb@

출처 : 기경범의 사진, 여행 이야기
글쓴이 : 기경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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