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행/일본

벚꽃터널 야경 보며 ‘오묘한’ 사케맛에 취해

화이트보스 2008. 12. 28. 13:35

벚꽃터널 야경 보며 ‘오묘한’ 사케맛에 취해

▲‘물의 도시’ 니가타의 비옥한 땅을 적시며 도심을 가로질러 동해로 흘러드는 일본에서 가장 긴 시나노 강 둔치의 4월 봄밤 풍경. 벚꽃이 터널처럼 길게 드리워진 산책로의 데크와 벤치 너머로 아름다움 니가타의 야경이 펼쳐진다.

 

 니가타 현. 한자로는 ‘新潟(신석)’이다. ‘석’은 개펄을 뜻하는데 실제로도 그렇다. 시나노 강 하구가 거기다. 시나노는 일본에서 가장 긴 강. 니가타 시는 바로 이 강 하구의 항구도시다. 그리고 현은 동해를 사이에 두고 한국과 마주한다.


 니가타는 ‘물의 고장’이다. 바다(동해)와 강을 두루 끼고 발달해서다. 시나노 강이 도심을 가르는 니가타 시에는 다리도 여럿이다. 그중 가장 사랑받는 것은 ‘반다이바시’다. 신·구시를 잇는 중심축 선이란 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대지진에도 살아남은 꿋꿋함 덕이다.


이 다리 주변의 강 둔치는 아침마다 북적인다. 산책을 하거나 운동하는 사람들이다. 산책로 바닥에는 충격흡수 소재가 깔려 있고 강변에는 깔끔한 데크와 벤치도 있다. 주변은 온통 벚나무와 튤립 꽃밭이고 주말이면 요트가 강을 오간다. 이곳이 연중 가장 아름다운 때는 지금, 벚꽃이 터널을 이루고 ‘튤립융단’이 깔리는 때다.


벚꽃터널 야경과 오묘한 사케맛에 흠뻑 빠지는 곳
 니가타의 상징, 물은 시나노 강 둔치에만 있지 않다. 늘 즐기는 술과 밥에도 있다. 물로 생장한 쌀, 그 쌀과 물로 빚은 술. 담백하고 수려한 니가타 사케(酒·일본 청주), 전국 최고 맛의 쌀 역시 니가타 물의 소산이다. 그 술부터 보자. 아키타 현, 효고 현, 고베 시와 더불어 일본을 대표한다. 고시노칸바이, 구보다, 핫카이산 등 우리 귀에도 익은 일본 명주가 모두 니가타산이다.

 

▲올해로 5주년을 맞은 니가타 청주품평회 ‘사케노진’에서 참가객들이 사케를 맛보고 있다.

 

 그 술과 쌀의 원료인 니가타 물의 원천은 무엇일까. 눈이다. 니가타 현을 파묻을 만큼 엄청나게 내리는. 그래서 일본 최초의 스키장은 물론 노벨상 수상소설 ‘유키구니(雪國)’를 잉태한 바로 그 눈이다.


일본판 옥토버페스트 ‘사케노진(酒の陣)’
 니가타 여행길은 늘 즐겁다. 좋은 술과 맛있는 음식 덕분이다. 내가 사케에서 헤어나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다. 거의 물에 가까우리만큼 순수한 맛도 이유지만 어떤 음식이든 그 고유한 맛을 돋워주는 반주(飯酒)로서 사케의 절묘한 맛도 한 이유다. 한국 음식까지도.


 음식과 술을 사랑하는 이라면 니가타로 여행을 떠나라. 왜냐면 술과 음식을 두루, 저렴하게 즐길 수 있어서인데 ‘사케노진’과 ‘쇼쿠노진(食の陣)’을 염두에 둔 권고다.

 


 이 이벤트는 니가타 시내 도키메세(컨벤션센터)에서 매년 3월 중순에 이틀간 여는 니가타의 술과 음식 잔치다. 단돈 1000엔으로 500가지나 되는 니가타산 사케를 저렴한 음식을 안주삼아 원하는 만큼 맛볼 수 있다. 그러니 딱히 애주가가 아니더라도 듣는 이의 입맛을 끄는 것은 당연하다.


 니가타의 봄은 특별하다. 눈도 그치고 나무와 구근에서는 벚꽃과 튤립 꽃을 피울 기운이 감돈다. 현 내 술도가도 겨우내 햅쌀로 정성들여 빚은 새 술을 내놓느라 부산하다. 사케노진은 이즈음 각 주조장이 새 술을 꺼내고 펼치는 ‘사케 페스트(청주 축제)’이다.


 현 내 주조장은 96개. 올해는 이 중 92개가 참가해 전시장에 제각각 부스를 차리고 사케(총 500종)를 전시 판매했다. 입장(총 6만 명)은 무료. 그러나 ‘백견이 불여일음(吟)’이니 술맛을 보자면 잔은 있어야 할 터. 그래서 현장에서 시음용 잔을 판매(1000엔)한다. 그런데 이게 요술 잔이다. 어느 부스든 이 잔만 내밀면 술을 준다. 게다가 술 맛이 모두 다르니 사케노진의 술 순례는 그 끝이 있을 리 없다.


 한편 장내에서 함께 열리는 쇼쿠노진은 안주 공급처다. 삼겹살 꼬치구이 등 니가타 향토의 맛을 두루 본다. 테이블은 현장 구입한 술과 안주로 식도락을 즐기는 사람으로 넘친다. 어지간해서는 대취한 일본인을 거리에서 보기 힘든데 사케노진만큼은 예외다. 그래서 앰뷸런스 7대가 대기하고 있다.

 

▲연어 한 마리로 100가지 요리를 즐긴다는 연어 고장 무라카미의 연어포 상점인 ‘기카와’의 주인 기카와 뎃쇼씨. 천장에 걸린 것이 무라카미의 특미인 시오비키(염장 연어포)를 만들기 위해 지난 가을에 잡아 말리고 있는 이곳 연어다.


전통미 넘치는 연어의 고장, 무라카미
 오전 10시 15분 니가타 역. 외양부터 화려한 JR기라키라(‘반짝반짝’을 의미하는 의태어) 우에쓰 관광열차의 라운지 칸에 올랐다. 행선지는 북쪽 해안의 무라카미 시로 한 시간 남짓한 거리다. 4년 전 북쪽 야마가타 현에서 니가타 시로 오면서 이 노선 열차를 탄 적이 있다. 해안선을 달리는 ‘바다 열차’인데 차창 밖 풍치가 기막혔다.


 무라카미는 메이지유신 당시 폐번치현(영주가 다스리던 봉건제도를 폐지하고 지방 정부인 현 체제로 개혁)때까지 성주가 다스리던 곳이다. 이런 지역은 공예품과 음식, 향토물산이 발달하기 마련으로 무라카미도 예외는 아니다. 그 중심은 조카마치야(城下町屋)라는 전통상가. 옻칠과 염색, 녹차 및 과자점 등이 300여 년 째 가업을 일구는 곳이다.


 ‘오차조메(녹차염색)’로 이름난 360년 역사의 야마가미 염색점을 찾았다. 20대 후반의 여성 야마가미 아즈사 씨가 300여 년 전 선조가 디자인한 패턴을 이용해 천연 염색 제품을 만들고 있다. 녹차점 고코노엔도 같았다. 성주의 차 공급자로 지정돼 녹차를 만든 지 올해로 387년째. 상점 안에는 성주가 하사한 보검 서액 등 진귀한 유물이 가득했다. 쓰이슈(堆朱·빨간 문양을 양각으로 드러나게 장식하는 옻칠 기법)장인 가와무라 미쓰기 씨의 옻칠도 가업이다.

 

▲연어고장 무라카미의 풍미가 가득 담긴 대표적인 음식 시오비키. 무라카미에서 잡힌 연어를 북서계절풍 부는 한겨울에 여기서 건조시켜야 이 맛이 난다고 하는데 사케 안주로 그만이다.


 일본의 3월은 ‘히나’라는 전통인형 축제 시즌. 전국적으로 펼쳐지지만 무라카미는 집 안에 전시한 인형을 외래 방문객에게 공개하는 파격적인 방식으로 최근 관심을 끌고 있다. 더불어 전통상가인 마치야를 재정비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사업을 이끄는 기카와 미키 씨는 “관의 도움 없이 주민 스스로 주도하니 효율적이고 효과도 훨씬 크다.”고 말했다.


 니가타는 일본 최초로 연어 양식을 시작한 ‘연어의 고장’이기도 한데 무라카미가 발상지다. 연어 고장답게 배 가른 연어를 처마 밑에 줄지어 걸어 두고 말리는 광경을 거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요리는 시오비키(염장 연어포)와 사카비타시(사케에 절인 시오비키). 연어전문점 기카와의 장인 기카와 뎃쇼(73) 씨는 “연어 한 마리로 100가지 요리를 내는 곳은 일본에서도 무라카미가 유일하다”면서 “무라카미 연어의 독특한 맛 ‘가제노아미(風味)’는 한겨울 무라카미에 부는 북서계절풍에서 말릴 때만 얻는 이곳의 특미”라고 말했다.

 


바다 보이는 세나미 온천서 특별한 휴식을
 무라카미의 또 하나 별미는 ‘무라카미규’라는 쇠고기. 1996년 와규(和牛·일본 소) 전국품평회에서 최고상(거세 소 부문), 2003년에 1등을 수상했다. 180년 역사의 전통 식당 ‘요시겐’에서 6대째 가업을 잇는 요리사 요시다 쇼이치로 씨는 “깔끔한 뒷맛과 부드러운 육질만큼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최고 수준”이라면서 “고시히카리 볏짚을 먹이고 매일 밤 빗질을 해주는 지극 정성의 비육 방식에 맛의 비결이 숨어 있다”고 말했다.

 

▲맛있는 와규(일본쇠고기)로 정평난 무라키미규의 마블링 기막힌 등심. 이 지방에는 손가락 온기에도 녹아내리는 불포화지방산이 주로 함유됐다는 설명이다.


 80년 전 지은 2층 고옥의 요시겐은 다다미 객실에서 가이세키(회석요리)를 내는 고급식당. 연어와 쇠고기를 중심으로 다양한 요리를 세트로 낸다.

 

▲무라카미 시내에서 10분 거리의 바닷가 모래해변 앞에 자리잡은 세나미 온천의 경관좋은 전통 료칸 다이칸소의 로텐부로. 객실과 로비에서 석양과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로맨틱한 곳이다.


 무라카미에서 하룻밤이라면 세나미 온천(시내에서 10분 거리)을 적극 권한다. 그날 투숙한 곳은 다이칸소(大觀莊)온천 료칸. 넓은 백사장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아 객실 로비 대욕장에서 바다를 볼 수 있는 경관이 뛰어난 료칸이다. 압권은 히노키 탕(편백나무 욕조의 온천 탕)의 로텐부로로 욕조에서 수평선 위로 펼쳐지는 노을 감상. 속이 투명한 난방 새우와 연어, 무라카미규 등 향토 요리도 훌륭하다.

 


니가타= 도깨비뉴스 여행전문 리포터 동분서분 report2@dk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