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역사에서 배운다/중국 사업 자료

중국 새 '뇌관' 무너지는 농촌

화이트보스 2008. 12. 28. 16:03

중국 새 '뇌관' 무너지는 농촌

중국 안후이(安徽)성 펑양(風陽)현 샤오강(小崗)촌이라는 작은 마을의 농민 18명이 1978년 11월 24일 밤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은 비상회의를 열고 공동생산·공동분배라는 인민공사 체제를 거부하고 농지를 가구별로 나눠 경작키로 했다. 중국의 공산혁명을 일으킨 마오쩌둥(毛澤東)은 지주들로부터 땅을 빼앗아 농민들에게 분배했지만, 1960년대 인민공사를 설립하고 농민들로부터 다시 토지를 회수했다. 인민공사에 소속된 농민들은 생산의욕의 감퇴로 제대로 농사를 짓지 않았다.

▲ 귀향하는 한 농민공이 베이징 기차역 앞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 photo 로이터
이런 와중에 연이은 가뭄과 홍수 등 자연재해로 농산물 생산이 급감했고, 마을 주민 175명 중 60여명이 아사했다. 이들이 공산당의 정책에 반기를 든 것은 굶어 죽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당시 안후이성 당 서기 완리(萬里)는 이 같은 내용을 사실상 최고 지도자였던 덩샤오핑(鄧小平)에게 보고했다. 덩샤오핑은 지켜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덩샤오핑이 농민들의 행동에 자극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같은 해 12월 18일 열린
중국 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제11기 3중전회)에서 개혁·개방 정책을 과감하게 선언했다. 샤오강촌은 덩샤오핑이 추진한 개혁·개방 정책의 대명사가 됐다.

중국 정부와 공산당은 이후 농민이 국가로부터 토지를 임대해 일정 생산량을 국가에 낸 뒤 나머지는 개인이 처리할 수 있도록 한 농업생산 청부제인 이른바 ‘다바오간(大包干)’제도를 실시했다. 중국의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 처음으로 자본주의 요소가 도입된 것이었다.

농촌 현실

도시민 소득의 20%… 상대적 박탈감에 폭발 위기
돈줄인 ‘농민공’들 실직으로 불균형 한층 심해져

지난 12월 18일로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한 지 30주년을 맞은 중국에서 ‘농촌’이 다시 화두가 되고 있다. 특히 중국이 현재 최대의 경제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농촌을 돌파구로 내세우려 한다는 점에서 더욱 아이러니컬하다. 중국 경제에서 농촌문제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중국 전체 13억명 중 농촌 인구는 60%가 넘는 8억여명이나 된다. 또 농촌을 떠나 도시지역에서 돈벌이에 종사하는 농민공(農民工)만도 2억여명이다. 때문에 농촌의 발전과 개혁 없이는 중국은 국가 발전 자체를 생각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 귀향하는 농민공들이 짐을 둘러메고 기차역으로 가고 있다.
게다가 세계 금융위기 이후 중국 도시와 농촌의 소득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도농의 소득 격차는 올 들어 개혁·개방을 시작한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벌어졌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지난 7월 발표한 상반기 6개월 도시근로자 평균수입은 1만2964위안(약 265만원)이었으나, 농민은 2528위안에 그쳐 도농 소득 격차가 5 대 1까지 벌어졌다. 이같은 도농 간 소득격차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도시지역의 보건과 사회보장 서비스 등을 포함한다면 실제 격차는 더욱 클 것으로 추정된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2 대 1을 밑돌았던 도농 소득 격차가 대폭 벌어지면서 농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중국 사회과학연구원의 위젠룽(于建嶸) 농촌발전연구소 주임은 “경제상황이 나빠지면서 도농의 불균형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 중국 농부들이 도로 위에서 옥수수를 말리고 있다. / photo 로이터
이에 따라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지도노선인 ‘허셰(和諧·조화)사회’가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중국발전개혁연구원의 츠푸린(遲福林) 원장은 “현재 중국의 가장 큰 문제는 도농의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현재 농민공들 중 1000 만여명이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농촌 지역의 생활이 어려워지고 일자리가 없어진 농민공들이 대거 귀향할 경우, 자칫하면 사회불안이 가중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공산당의 체제 기반이 흔들릴 수도 있다.

“농촌을 살려라” 대책 1

농민이 가전제품 살 때 지원하는 ‘가전하향’ 정책
4년간 4억8000만대 판매 기대…184조원 내수 효과


중국 정부가 ‘바오바(保八·경제성장률 8% 유지)’와 일자리 창출을 강력하게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현재 도시 지역의 실업률은 4.5% 정도다. 여기에다 농촌까지 합치면 중국의 실업률은 최소 8%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실업률이 더 이상 증가하지 않도록 하려면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최소 8%는 돼야 한다. 새해 중국의 경제정책을 확정한 중앙경제공작회의(12월 8~10일)에서 후 주석을 비롯한 중국 최고 지도부가 내수 진작과 고용 창출을 위해 경기부양 정책을 적극 추진키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이미 내수 진작을 위해 농촌 살리기에 나섰다. 대표적인 사례가 ‘가전하향(家電下鄕)’정책이다. 

▲ 중국 쓰촨성 광안현에 있는 덩샤오핑의 동상에 방문객들이 절을 하고 있다. / photo 로이터
중국 정부도 지난 12월 1일부터 허난(河南)·충칭(重慶) 등 14개 지역에서 농촌 주민이 냉장고·컬러 TV·세탁기·휴대전화기 등의 가전제품을 구입할 때 한시적으로 가격의 13%를 보조해주고 있다. 중국 정부는 내년 2월부터 4년간 전국적으로 이를 확대 실시할 계획이다. 중국 정부는 이를 통해 4년간 4억8000만대의 가전제품이 추가로 팔리고 9200억위안(약 184조원)의 내수 진작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농촌에 가전 보급률을 1%포인트 올리면 수요가 200만대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장사오춘(張少春) 재정부 부부장은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중국 경제가 하강하고 수출이 약화되고 있다”면서 “농민에 대한 가전제품 보조금 지급확대 정책은 투자·수출 위주의 경제성장을 내수중심의 경제성장으로 전환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장 부부장은 또 가전하향 정책이 가전회사뿐만 아니라 철강, 비철금속, 플라스틱 등 관련 산업에도 소비진작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사회과학원 세계정치경제연구소 위융딩(余永定) 소장은 “앞으로 내수 확대 여부는 농민들의 손에 달려 있다”며 “중국 정부가 최근 농민들의 소득 증대에 힘쓰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대책 2

농지사용권 매매 허용하고 시한도 70년으로 늘려
화교들 토지매입도 허락…대규모 농촌 투자 유도


실제로 중국 공산당은 제17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제17기 3중전회·10월 9~12일)에서 농촌 소득을 올리기 위해 농민들이 토지경작(사용)권을 자유롭게 양도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도시에서는 토지 사용권이 매매되고 담보로 잡혀 은행대출도 받을 수 있었지만 농지는 지금까지 불가능했다. 공산당은 이를 개혁해 농지와 부속 가옥에 대해서도 사용권을 매매할 수 있게 하고 사용권 시한도 지금까지 30년으로 돼 있는 것을 도시지역 토지처럼 70년으로 늘린다는 것이다. 중국은 토지개혁을 통해 개혁개방 이후 삼농(三農·농업 농촌 농민)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고 내수를 확대하는 수단으로 삼겠다는 복안이다. 농민들은 앞으로 토지와 부속 가옥 사용권이라는 자산을 양도와 은행 대출을 통해 자본으로 바꿀 수 있게 됐다. 새로운 투자여력이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도시 자본가와 합작을 통해 대규모 기계화농업이 가능하다. 또 은행이 농촌에 대해 대출을 쉽게 해줄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은행이 농민들에게 대출을 해주고 싶어도 담보가 없어 방법이 없었다. 농촌의 토지사용권을 상품화하면 놀고 있는 토지 활용도를 획기적으로 높여 생산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에 이어 후 주석이 3번째 ‘토지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후 주석은 최근 샤오강촌을 전격 방문한 자리에서 “농민들이 허리에 차는 돈주머니가 두둑하게 불어나도록 당과 정부가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중국 정부는 이와 함께 대만, 마카오, 홍콩을 포함한 해외 화교들이 토지 경작권을 매입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해외 화상(華商)들의 대규모 농촌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볼 수 있다.

대책 3

“2020년까지 소득 2배로” 농촌육성 방안 마련
 지원기구 신설… 행정체제도 농촌친화형으로

중국 정부는 앞으로 2020년까지 농민들의 현재 1인당 소득을 2배로 늘리는 농촌 육성안도 마련했다. 이에 따라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농민의 생산과 수입을 증대하고 식량과 농업생산을 촉진하기 위해 6개 분야의 ‘강농혜농(强農惠農)’ 정책을 발표했다.

6개 분야는 △농산품 매입 강화 △식량수매가격의 대폭적인 상향조정 △식량재배농민에 대한 보조강화 △화학비료시장의 조정메커니즘 개선 △돼지 생산 및 낙농업 발전 △농업분야에 대한 투자 대폭 증대 등이다. 중국 정부는 또 행정체제도 ‘농촌친화형’으로 바꿀 계획이다. 현행 중국 지방 행정구역은 성(省)·시(市)·현(縣)·향(鄕) 등 4급 체제로서 시가 현을 관할하고 있다. 그런데 시의 범위가 확대되고 정책이나 자금이 집중되면서 관할 현의 경제 발전은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고 농촌과 농민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해왔다. 때문에 중국 정부는 내년 3월부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이 직접 현을 관리하는‘성(省) 직할제’를 강력하게 추진할 방침이다. 중국 정부는 또 농촌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을 뒷받침할 전담 기구로 국무원 산하에 ‘원농(援農·농촌 지원) 판공실’도 설치할 계획이다.

대책 4

귀향 농민공 추적제도 마련하고 창업 적극 지원
농민공 일자리 찾아주기가 경제위기 극복 열쇠

중국 대도시 기차역에서 요즘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은 보따리를 둘러메고 귀향하는 농민공들의 모습이다. 농민공은 농촌을 떠나 도시지역 건설현장, 공장 등에서 막일을 하며 저임금으로 살아가는 농촌 출신 도시유동인구를 말한다. 농민공들은 경제악화로 도시에서 더 이상 일자리를 얻을 수 없게 되자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들의 귀향은 단순히 인구 이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농민공은 개혁·개방 정책 이후 고도성장을 뒷받침해온 눈에 보이지 않는 핵심 주체였다. 상당수 농촌 가정이 그동안 농민공들이 벌어온 돈으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산둥(山東)성의 한 농민 가정의 경우 농사로 번 소득이 연간 3000위안(약 62만원)에 불과하다. 반면 가족 중 2명이 농민공으로 일해 얻는 소득이 연간 1만6000위안으로 농사를 통한 소득의 5배 이상이다. 이 때문에 농민공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중국 정부의 시급한 과제이다. 중국 정부는 앞으로 귀향하는 농민공들의 창업을 위해 자금 등을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이들이 중·소규모 도시나 농촌에서 창업할 경우, 내수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농민공의 창업 유도는 토지 사용권 매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농민공들이 창업하면 토지사용권을 내놓은 농촌의 많은 유휴노동력을 흡수할 수 있다.

하지만 농민공들의 창업은 말처럼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창업한다 해도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도 귀향 농민공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인웨이민(尹蔚民) 인적자원·사회보장부장은 “귀향 농민공들을 등록하는 신속 추적제도를 수립하고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 역대 왕조가 무너진 주요 원인 중 대부분은 농민들의 민심 이반과 반란 때문이었다. 개혁·개방 정책 30주년을 맞아 다시 농촌을 경제위기 극복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전략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입력 : 2008.12.23 13:48 / 수정 : 2008.12.28 1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