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행/백두대간을 가다

[백두대간을 가다] 대간이 에두른 안개바다, 天上이 예이런가

화이트보스 2009. 1. 24. 17:28

[백두대간을 가다] 진고개∼동대산∼두로봉∼신배령∼응복산∼약수산∼구룡령

 




강원도 평창군. 이효석의 단편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 등장하는 장돌뱅이나 최근 영화 ‘웰컴투 동막골’이 그렸던 투박하고 순박한, 그래서 어쩌면 가슴 한 켠을 더욱 따뜻하게 만들었던 사람들. 꼭 그런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 같은 산길이었다.

도회지의 소음은 멀리 있었고, 번잡한 신호등과 사통팔달로 발달한 도로망 대신 내리막과 오르막, 때론 눈 앞을 성가시게 하는 잡목숲이 자리 잡았다.

백두대간이 살아 꿈틀대는 이곳에서는 휴대전화마저 ‘잠시 꺼놓지 않아도 스스로 작동을 멈추는 곳’이다.

10월 초입. 12월이 코앞인 지금에서야 단풍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거북살스럽지만 남도가 온통 황금 들녘일 무렵 강원도 평창을 출발해 홍천군과 양양군을 거치며 북으로 향한 대간 마루금에는 분명 단풍이 절정이었다. 게다가 날씨마저 쾌청해 넘실대는 동해 바다가 비탈에 선 나무들 사이를 뚫고 눈으로 다가왔다.

#그림1중앙#

아침 6시. 단단히 채비를 하고 선 진고개 정상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고갯마루에 불어닥친 찬 공기를 뚫고 휴게소 왼쪽 나무계단으로 발을 디뎠다.

진고개에서 동대산까지는 그동안 찾는 이가 많았던 탓에 등산로가 잘 정비돼 있었다.

나무 계단을 올라서 평지를 5분여 동안 향하다 곧바로 오르막이 나타났다. 동대산 정상(1433.5m)까지는 이런 오르막 길이 50여분간 이어진다.

얼마쯤 갔을까. 등 뒤쪽에서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잠시 숨을 돌리며 내려다 본 산 아래에는 어느새 드넓은 호수가 자리하고 있었다. 안개가 무리를 이루며 산 밑으로 향하다 백두대간의 험준한 산맥을 제방삼아 고이고 있는 모습에 절로 탄성이 나왔다. 안개가 무리를 이루는 곳에 두고 온 세상은 아득했다.

헬기장이 있는 동대산을 뒤로하고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동대산에서 차돌바위까지는 비교적 완만한 능선이다. 또 전망도 좋아 오른쪽으로는 선(線)좋은 우리네 처마를 닮아 날아오를 듯한 동해가 넘실대며 시야에 들어왔다 사라지기를 반복. 멀리 한반도의 동쪽 끝에 자리잡은 포구도 보일듯 말듯하다.

#그림2중앙#

날아갈 듯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한시간여. 마루금을 세개의 바위덩어리가 가로막았다. 장방형의 돌들은 차돌들. 흰색이 감도는 차돌 바위는 일부러 가져다 둔 것처럼 신기하기만 했다.

차돌바위에서 잠시 한숨을 돌리고 1천234m봉에서 준비해온 아침을 먹고 다시 기운을 차렸다.

20여분간 산보를 나온 듯 편안한 능선. 하지만 대간은 쉬운 발길을 오래 두지 않았다. 두로봉(1421.9m)을 눈앞에 두고 급격한 오르막이 이어졌다. 40여분 동안 무거워 지는 발걸음을 달래가며 오른 두로봉에서는 동해가 훤히 내려다 보였다.

두로봉에서 신배령까지 향하는 길은 능선을 따라 등산로가 선명하다. 특히 두로봉 인근에는 주목군락이 펼쳐져 있지만 태백산 보다는 못하다.

2.5㎞거리를 1시간30분만에 신배령에 도착했다. 신배령에는 나무로 된 소박한 이정표가 슬슬 세상이 그리워지는 탐사팀들을 위로하듯 서 있다.

시간은 오전 11시40분 밖에 안됐지만 남은 거리탓에 서둘러 길을 재촉했다. 해가 부쩍 짧아진 계절이라 자칫 지체할 경우 꼼짝없이 산에 갇힐 수 있다는 우려에서 였다.

#그림3중앙#

신배령에서 만월봉(128.9m)으로 향하는 구간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었다. 아침의 호기도 사라지고 발걸음이 더뎌진 탓에 자꾸만 진행 속도가 느려지고 있었다. 지도상 50분 거리를 한시간이 넘어서야 겨우 도착했다.

잠시 응복산으로 향하는 지점에 있는 중간 탈출로를 통해 일정을 앞당길 지에 대한 논의도 있었지만 힘들더라도 하루에 종주를 끝내기로 결정하고 길을 재촉했다.

당초 응복산(1359.6m)정상쯤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던 대원들의 계획도 차질이 불가피 해졌다. 무릎에 무리를 느낀 대원들의 발걸음이 오전보다 현저하게 느려져 있었다. 시간이 오후 1시30분을 넘어서면서 부담감에 점심을 포기하고 가지고 온 간식으로 허기를 달랬다.

끝없이 이어지는 잡목숲을 뚫고 고만고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을 지나 마늘봉에 도착했다. 마늘봉에서 1천280m봉으로 오르는 산길은 급경사를 이루며 막바지에 이른 대원들을 막아섰다.

간신히 약수산을 넘어 구룡령으로 향했다. 약수산에 구룡령까지는 발길에 채인 돌이 끝없이 비명을 내며 구를 정도로 경사가 심하다.

문을 닫은 구룡령 휴게소에 도착하자 어느새 등뒤에 있던 해가 앞선 능선에 걸려 있었다. 시간은 오후 5시30분. 예정보다 1시간여 정도 도착 시간이 늦어졌고 고개를 넘는 가을 바람엔 한 가득 찬기운이 감돌았다.

사진/신광호 기자 sgh@namdonews.com


강현석 기자 kaja@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