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을 가다]조침령~쇠나드리리~갈전곡봉~구룡령
오르막 내리막 쉼없이 이어지는 무명봉 조릿대에 맺힌 아침이슬 털어내며 종주
10월 초 강원도의 아침은 초겨울 날씨 유명산 없다지만 산마루 마다‘힘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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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첩첩산중에 깔린 칠흑같은 어둠이 천근 같다. 출발시간을 한시간 늦추기로 했다. 전날 조침령 고갯마루를 답사해보니 도로공사가 한창이었다. 흙으로된 비탈길이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 사고 위험이 컸다.
이날 종주구간은 조침령에서 갈전곡봉을 거쳐 구룡령까지. 도상거리는 18.25km. 남쪽인 구룡령에서 출발해야 하지만 조침령에서 한계령 구간을 종주하는 팀이 있어 편의상 조침령으로 향했다. 차량으로 이동했지만 조침령 고갯마루까지 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차량으로 30여분을 이동한 끝에 조침령에 도착했다.
#그림1중앙#
시간은 오전 5시 40분. 조침령 표지석 앞에서 사진촬영을 한 뒤 길을 잡았다. 코끝을 스치는 새벽 바람이 차갑다. 10월초 강원도의 아침은 이미 초겨울 날씨에 접어들었다. 동트기 전이라 고갯마루 아래로는 운해가 희미하다.
잡목을 지나다보니 새벽에 맺힌 이슬이 옷속을 파고 든다. 조릿대가 쏟아내는 이슬방울은 거의 소나기에 가깝다. 30여분이 지나자 바지 전체가 물에 젖어 걸음이 무겁다.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몇개 지나니 넓은 빈터가 나온다. 옛 조침령이다.
다시 이름없는 봉우리들의 연속. 완만한 오름길을 따라 봉우리에 올라서면 또다시 내리막길.
표지리본을 따라 오르막과 내리막을 연속하다보니 도무지 지도상의 위치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다행인 것은 앞선 대간팀들이 표지리본을 곳곳에 붙여놓아 길을 찾기가 어렵지 않다는 것. 2시간 가량을 지나다 전문 산악인을 만났다. 새벽 5시에 구룡령에서 출발해 3시간 가량 지났단다. 쉰을 훌쩍 넘긴 듯 보이지만 걸음이 예사롭지 않다. 초보들에게 7시간 가량 걸리는 구간을 3시간 만에 주파했다니 존경스러울 뿐이다.
#그림2중앙#
“힘내라”는 격려를 뒤로하고 다시 길을 잡는 전문 산악인을 보니 없던 힘이 절로 솟는 듯 하다.
오전 8시께 양지바른 곳을 찾아 아침식사를 간단히 마친 뒤 다시 대간길에 나섰다. 그리고 이어지는 무명봉들. 오르고 내려감의 연속이다.
한참을 지나니 야영터인 듯한 넓직한 빈터가 반겨준다. ‘북부지방산림청’에서 내건 둥근 팻말을 찬 소나무가 있는 듯 없는 듯 떡하니 지키고 있다.
대간길을 지나는 중 시야가 거의 트이지 않는다. 전망이라도 좋았으면 하는 아쉬움 속에 발걸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숨도 가파르다.
1061봉과 쇠나드리를 지나는 동안에도 시야는 답답하다. 도중에는 짐승의 덫으로 사용한 듯한 웅덩이도 눈에 띈다. 또 대간길 주변의 곳곳이 파헤쳐져 있다. 처음에는 멧돼지의 흔적이려니 생각했으나 알고보니 산꾼들이 약초를 캐낸 흔적.
가파른 흙비탈길을 지나 한참을 걷다보니 내림길에 오래 된 무덤이 나온다. ‘유인평해손씨지묘’라고 새긴 비석까지 있다. 인적없는 첩첩산중에 묘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특별한 사연이 있을 듯해 보인다.
#그림3중앙#
다시 내리막길. 대간길은 아직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쉼없이 이어진다. 왕승골 삼거리를 지나 가파른 흙비탈길을 또 오른다. 발바닥이 땅에서 점점 떨어지지 않는다.
앞에 펼쳐진 봉우리들을 보니 숨이 턱 막힌다. 갈전곡봉이 머지 않았다는 희망으로 다리에 힘을 넣는다.
30여분을 오르다 보니 마침내 갈전곡봉. 표지석을 보니 1204m다. 지나온 봉우리들을 뒤돌아 보니 아득하기만 하다.
숨을 고른 뒤 다리에 힘을 실었다. 고도가 낮은 산에는 단풍이 절정에 달하고 있었지만 대간길은 이미 겨울이다. 단풍은 고사하고 낙엽도 모두 떨어져 앙상한 나무들 뿐이다.
‘치밭목령’이라고 쓰인 팻말을 지나 다시 고만고만한 무명봉들이 줄을 잇고 있다. 한참을 지나다 보니 눈 앞에 커다란 봉우리가 기운차게 버티고 있다. 비켜 갔으면 싶었지만 대간길은 여지없다. 대간길에 낙엽이 수북하다보니 걷기가 두배로 힘들어진다.
능선 분기 삼거리 1121봉에 도착했다. 완만한 내림길이 이어진다. 하지만 저기 만큼 1121봉이 우뚝하다. 예외 없이 가파른 오르막이 버티고 있어 쉽사리 정상을 내주지 않을 듯 하다.
‘호랑이 없는 산에 여우가 대장한다’더니 유명산은 없지만 구간 내내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이 제각기 산세를 자랑한다.
중간에 점심을 먹었지만 허기가 밀려온다. 비상식량인 초콜렛을 입에 넣으며 힘을 냈다.
1121봉에 도착하니 ‘백두대간 생태조림’이라는 산림청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이곳이 옛 구룡령인 듯 하다.
인내력이 바닥날 때가 된 듯 하지만 ‘조금만 더 가면 끝’이라고 위로하며 최후의 발악을 했다.
마침내 구간 마지막 봉우리인 1100봉에 올라섰다. 지나온 갈전곡봉과 1121봉이 우뚝하다. 구룡령 너머로 약수산도 지척이다. 산 아래에서 구룡령으로 향하는 차량행렬도 시야에 들어온다.
하지만 앞을 보니 제법 커다란 봉우리가 버티고 있다. “설마 올라가기 전에 옆으로 빠지겠지”하는 생각이 여지없이 빗나간다. 대간이 쉽사리 길을 내주지 않음을 실감한다.
그렇게 또 무명봉을 오르락 내리락. 드디어 구룡령 생태터널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 30분. 무려 10시간 30분이 소요됐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는 평범한 진리가 더욱 새롭다.
글·사진
맹대환 기자 newsing@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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