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역사에서 배운다/임진왜란

유성룡의 징비록

화이트보스 2009. 1. 25. 11:31

조선의 가장 큰 전란인 임진왜란(1592~1598)은 우리 민족에게 많은 시련과 고통을 안겨 줬다. 숱한 문화재가 소실되었고, 많은 인명이 살상되었으며, 정치적·사회적 변화가 일어났다. '징비록'은 이 전쟁의 이면사를 당시에 중요한 직책에 있으면서, 여러 방면에 관여했던 유성룡이 직접 쓴 것이다. 그는 영의정(領議政)까지 지냈으며, 중종(中宗) 37년(1542)에 태어나서 선조(宣祖) 40년(1607)에 죽었는데, 자는 이견(而見), 호는 서애(西厓),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이 책은 임진왜란(壬辰倭亂)과 정유재란(丁酉再亂)의 역사적 사실들을 사건 중심으로 정리, 저술한 것이다.

'징비록'에서 '징비'는 시경(詩經)에 "내 지나간 일을 징계(徵)하고 뒷근심이 있을까 삼가(毖)노라" 한 문구에서 따온 것이다. 저자는 정부의 요직에 있으면서 전란을 겪는 동안에 여러 가지 정치·경제·군사적인 중요 정책을 수행했다. 이후 벼슬을 그만 두고 한가롭게 있을 당시, 전쟁의 혼란과 국난의 위기에서 이를 극복해 가는 처참한 과정을 회고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다는 뜻에서 쓴 것이다. 즉 자신이 겪은 환란을 교훈으로 삼아 후일에 닥쳐올지도 모를 우환을 경계토록 글을 썼다. 저자는 자신의 잘못으로부터 조정 내의 분란, 나아가 임금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 등 임진왜란을 둘러싸고 발생한 모든 일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

양 난에 관한 기록은 '선조실록(宣祖實錄)' '용사일기(龍蛇日記)' '난중일기(亂中日記)'에서도 볼 수 있고, 일본과 중국의 기록으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처럼 자세하고 실감나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징비록'은 양 난의 생생한 역사적 기록일 뿐만 아니라, 당시의 문물제도를 살펴 볼 수 있는 귀중한 문헌이며, 민족적으로 감동하지 않을 수 없는, 전쟁문학으로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이 책은 '초본징비록(草本懲毖錄)'과 2권본, 16권본이 있는데, 이중 16권 7책으로 되어 있는 것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왜란이 일어나게 된 원인과 전쟁의 상황에 대한 기록이 들어 있다. 즉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6년 전부터 정탐을 위하여 왜국의 사신이 오간 일과 왜란이 일어난 경위―조선의 통신사가 일본에 갔다 오고, 일본이 명나라를 치겠다고 한 사실, 이순신의 발탁 등―를 밝혔다. 그리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파격적으로 국토가 무너져 왜군의 수중에 들어가는 과정, 왕이 서울을 떠나 평양으로 피난 가고, 서울이 적군의 손에 들어가 종묘까지 불타기까지의 역사적 사실을 자세히 기록했다. 또한 평안도와 함경도까지 점령돼 우리 민족이 겪게 되는 비참한 경험과 두 왕자가 포로가 되는 비통한 과정, 이순신의 승전과 의병들의 봉기, 명나라 군사의 참전으로 국토를 수복해 가는 과정을 담았다. 정유재란이 일어나 다시 2년 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마지막으로 노량 싸움으로 왜군이 패주하기까지의 과정도 망라 돼 있다.

이 책 내용은 당시의 내정과 외교 등 각 분야에 걸쳐 국내외 문물제도를 폭넓게 연구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아울러 국민이 와해되고 국력이 약화되면, 외적의 침략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전란이 일어나 온갖 고난을 당하게 되며, 반대로 국민이 단결하고 애국심을 발휘한다면, 아무리 강한 외적의 힘이라도 이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 지난날의 잘못이 크다 하더라도 이를 반성하고, 새로운 앞날의 평화와 안락을 위하여 노력한다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교육적, 교훈적인 내용도 담고 있다.

우리는 오늘날에도 이러한 선조들의 가르침을 소홀히 해 혼란과 폐해를 자초하는 일이 자주 있다. 최근 서해에서 발생한 기름 유출로 얼마나 큰 국민들의 고통과 피해를 가져왔는지 모르며, 우리의 자랑스럽던 국보 1호 숭례문이 불타 버려 얼마나 많은 국가적인 손실과 민족적 자존심이 훼손되었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이런 불상사들은 사전에 조심을 하고, 사고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던들 충분히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또 어떤 일이 닥칠지 알 수 없는 조짐들이 있다. 예컨대 외국어를 중요시하고 우리말과 글을 홀대하다가, 마침내 우리의 얼과 참모습을 잃어 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라든가, 큰 공사를 일으키다가 더 큰 자연의 자연의 훼손과 환경의 파괴가 일어나지나 않나 하는 걱정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이런 국가적 대사에 충분한 연구나 부작용에 대한 대비책이 마련되지 않고, 그저 한 건 올리기 식의 즉흥적 발상이나, 권력 유지의 발판으로서 강행된다면, 틀림없이 나중에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일들에는 '징비록'에서 시사하는 바 '미리 대비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지혜'가 절실히 필요하지 않나 싶다.  성낙수 한국교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