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격수의 세계/미사일보다 더 무서운 ‘인간무기’

<40>영국군의 해외 식민지 저격전

화이트보스 2009. 1. 26. 18:13

<40>영국군의 해외 식민지 저격전
두 명의 영국군 저격수 게릴라 16명 제압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군의 저격술은 전장의 뼈저린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발전을 도모했다. 하지만 이러한 오랜 전쟁경험은 많은 병사에게 파괴와 살상행위에 대한 저항감도 심어 주었다. 유럽 각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하에서 국제분쟁을 많이 제한했지만 세계 곳곳에서 전쟁은 다시 일어나고 있었다.

전후 대영제국의 쇠퇴 속에서도 영국군은 이러한 지역분쟁을 주도하고, 식민지로 국력을 전환시키기 위해 일련의 군사작전을 전개했다. 이때부터 많은 해외 오지로 영국군 스나이퍼가 출동했다. 예컨대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으로,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 비상사태에 빠진 동남아시아의 정글 속으로 영국군 스나이퍼가 잠입했다.

영국군 최강의 특수공정단(SAS) 스나이퍼들은 자유의 투사로서 말레이시아의 험준한 산악에서 호전적인 부족들과 싸웠다. 중동지역에서는 영국군 저격술이 진가를 발휘했는데, 특히 1950년대 이후 제한전을 벌였던 아라비아 반도에서 새로운 능력을 과시했다. 1958년 영국군 특수공정단이 오만의 술탄을 지원하기 위해 이집트를 배후로 둔 반란부족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했다.

반군들은 이미 높이가 2400m에 달하는 사막의 거대한 자벨 아키다드(Jabel Akhdard) 산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때 산악지대로 투입된 영국군은 정보수집과 고난도의 저격전으로 반군들을 분열시키고 아키다드를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 1970년대의 도파(Dhofar) 반란 후 전개한 영국군의 비밀공작은 마지막 재래식 전쟁이었지만 이곳에서는 스나이퍼의 정확한 장거리 사격만이 큰 위력을 발휘했다.

지역 반군세력과 부족들도 대부분 훌륭한 저격수였다. 그들은 마티니 헨리(Martini-Henry)와 같은 19세기 소총으로 무장하고 치명적인 공격을 가했다. 아덴(Aden) 비상사태(1963~1967)에서는 아랍의 게릴라 부대가 아라비아 반도 남단의 지배권을 놓고 영국과 싸웠던 복잡한 싸움이었다. 아덴 시에서 시민폭동이 일어나고 라드판(Radfan)산 곳곳에서 전투가 발생됐다.

아덴에서 겪은 영국군의 가장 뼈아픈 전투는 1967년 크레이터(Crater) 번화가 일대에서 시가지 매복 공격을 당하고 무기를 빼앗긴 사건이었다. 크레이터는 사화산의 분화구에 건설된 시가지로서 거리와 뒷골목이 미로처럼 연결돼 있어 아랍국 테러리스트들에게 훌륭한 피난처를 제공했다.

당시 영국군 제45 해병특공대 스나이퍼들이 크레이터를 둘러싸고 있는 가파른 바위산으로 잠입했다. 그들은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를 잡고 게릴라들의 행동을 지켜볼 수 있었다. 해병특공대 저격수는 그곳에 은거해 10일 동안 분화구로 정밀사격을 가했다. 이곳에서 두 명의 저격수가 25발을 사격해 테러리스트 11명을 사살하고 5명을 부상시켰다. 이것은 극적인 성공이었다.

크레이터 시가지 남쪽 건물에는 매우 까다로운 아랍 저격수가 버티고 있었는데, 영국군들이 구스타프 대전차포를 집중 사격해 건물을 붕괴시키고 제압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보복으로 해병특공대 저격수들이 다시 사격을 받아 두 명이 부상당했다. 그러나 영국 특공대 스나이퍼들은 적의 저항을 무력화시키고 아르길 대대가 7월 4일 아침 일찍 크레이터로 기동해 무저항으로 다시 도시를 확보할 수 있었다. 당시 참전한 해병대의 스나이퍼가 자신이 경험한 극적인 저격전을 밝혔다.

“나는 진지에서 몇 시간 동안 계속 기다렸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쪼여 바위를 녹이는 것 같았고 현기증이 났다. 그러나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한 아랍 게릴라가 소총을 들고 모스크 사원에서 걸어 나왔다. 그가 좁은 길로 접근했을 때 조준을 했다. 거리는 약 700m… 탕!’ 내가 방아쇠를 당기자 게릴라는 소총을 떨어뜨리면서 뒤로 넘어졌다. 정확하게 명중시킨 것이다. 그의 주변에 있던 게릴라들이 모두 놀라서 흩어졌다.”

1967년 11월, 영국군이 아덴에서 영원히 철수함으로써 결국 이러한 작전은 별다른 가치가 없게 됐지만 도시환경에서 저격술의 효과에 대한 훌륭한 교훈을 남겨 주었다. 당시 영국군 부대원들은 벨기에의 FN FAL총에 기반을 두고 개발된 7.62mm L1A1 SLR 자동소총으로 무장했다. 그러나 SLR총이 우수한 무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길고 가벼운 몸통 때문에 저격수들에게는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

그 후 L42Al소총으로 개량해 1980년대 중반까지 영국군에서 사용하게 됐는데 이 총은 표준형 No.4보다 총열이 길고 무거웠으며,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사격시 총구가 안정되고 구식 3배율 MK 32 망원 조준경을 계속해서 소총에 장착할 수 있었다. 이러한 우수한 저격총이 영국군의 새로운 저격전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