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영국과 독일의 저격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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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적이고 인내심 있는 감시·관측이 성패 좌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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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의 전투상황은 전술적 기동이 중요했고 대규모 강력한 지원 화력들, 특히 박격포와 경기관총(LMG) 등의 출현으로 소총병의 역할은 위축됐다. 그러나 영국군에서는 잘 조준된 소총의 진가를 보여주기 위해 경기관총 사수와 저격수를 놓고 실험을 실시했다. 각각 6개의 철판 표적을 향해 제한된 시간 내 사격해 철판을 쓰러뜨리도록 했다.
단 30초 동안 경기관총이 하나를 명중시키기도 전에 저격수는 6개의 철판을 모두 넘어뜨렸다. 이 결과는 양적인 사격보다 정확성이 더 중요하다는 증거였다.북아프리카 사막의 탱크전이나 고속기동전 상황에서는 저격수의 역할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튜니지 산악전투와 시칠리 섬, 이탈리아 전투에서는 일단 전쟁의 속도가 둔화되자 저격수가 필요했다.
탁 트인 산악 고지에서는 종종 400m를 훨씬 넘는 장거리 사격의 가치가 증대됐다. 저격전에서는 지능적이고 인내심 있는 감시·관측만이 성과를 가져오는 열쇠이며, 이는 적이 방심하거나 저격수의 존재를 무시할 때 효과적이었다. 이탈리아 전투는 이러한 원칙이 성공한 사례로서 영국군 부대가 진지를 선정하기 위해 세니오(Senio) 강을 따라 전진하고 있을 때 전사작가 쇼어 대위가 당시 상황을 목격했다.
“전방 소대가 강에서 200m 떨어진 작은 마을을 포위했다. 저격수들이 높은 지붕에 올라가 독일군이 점령한 고지를 관찰했다. 독일군들은 조심스럽게 매 시간 초병 교대를 했다. 아군 저격수들은 사격을 자제하고 독일군들이 방심해지기를 기다렸다. 온종일 기다린 끝에, 오후 늦게 마침내 희망이 이루어졌다. 잠복 12시간 만에 적군 6명의 허리 윗부분이 보였다.
배치된 아군 저격수 4명은 준비한 다음 각자 한 명씩 독일군을 골라 동시에 사격했다. ‘탕!-’ 4발의 총성이 울리며 그중 3명이 쓰러졌다. 그러자 곧 뒤쪽에 숨어 있던 동료들이 재빨리 시신을 언덕 위에서 끌고 내려갔다. 독일군의 초병 교대가 다시 매우 조심스러워졌고, 저격수들은 더 이상 사격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러나 잠복 16시간 만에 그곳에서 2명의 독일군이 또다시 공동묘지로 보내졌다.
저격수들은 28시간 동안 오직 두 차례의 ‘동시 사격’만을 해야 했던 길고 지루한 시간이었지만 이날은 아군의 피해 없이 한 장소에서 5명의 독일군을 사살할 수 있었다.” 프랑스 노르망디 전투는 독일군 스나이퍼에게 특히 유리했다. 내륙의 전원지대와 주변을 둘러싼 관목 숲은 좋은 은폐 장소와 대피처를 제공했다.
이곳에서 방어전의 이점을 가진 독일군 저격수들은 매우 효과적으로 표적을 쏘았다. 영국과 미국 병사들에게는 저격수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다가왔고 그 공포심 때문에 대부분의 소총화력이 무기력해졌다.미군의 종군기자인 어니 파일(Ernie Pyle)은 노르망디의 위기상황을 이렇게 본국으로 송신했다.
“독일군 저격수들이 도처에 있다. 나무와 건물 그리고 수많은 잔해와 잡풀 속에 저격수들이 숨어 총을 쏘고 있다. 모든 소로나 관목지대·울타리 등에도 그들이 있다.” 영국군 저격수 쇼어 대위는 극도의 공포와 긴장 속에서 어떻게 사격이 이루어지는 가를 알아보기 위해 부대원들에게 실험을 실시한 결과, 저격수나 소총수는 박격포·포병사격·기관총 등의 집중사격을 받으면 큰 혼란에 빠진다는 것을 알았다.
독일군 저격수들은 적은 수임에도 불구하고 소총만으로도 그러한 혼란과 두려움을 초래했고, 이는 목격자들의 증언에서도 나타났다. “독일군 스나이퍼들이 진지를 기어 오르고 증원부대가 뒤따라온다. 치열한 사격전이 전방 진지에서 일어났다.저격수는 어느 곳이나 숨어 있다. 그들이 선택하는 먹이들! 장교들은 감시를 피하기 위해 모든 특징적인 마크를 가리고 권총 대신 부하들처럼 소총을 들고 다닌다. 지도나 쌍안경을 멀리하고 어깨의 계급장 표지는 눈에 안 띄게 소매에 붙이고 있다. ”
부하들 앞에서 군대의 상징인 자신의 계급장 표지를 숨기는 비겁한 장교와 부사관의 태도는 적어도 연합군 지휘관들의 명예와 자존심을 크게 상하게 했다. 그러나 저격수 쇼어는 노르망디 상륙시 부사관들의 계급장과 장교들의 넥타이를 가리도록 당부했다. 적어도 저격수의 세계에서는 우선 살아남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지만 지휘관들의 태도는 강경했다. 부사관들에게는 즉시 계급장을 드러낼 것을 명령했고, 장교들은 반드시 넥타이를 매야 하며, 부하에게 당당한 모습을 보이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만약 죽더라도 명예로운 장교의 길을 택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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