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종군기자 ‘로버트 카파’의 활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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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막히는 저격현장 카메라에…戰史로 남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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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은 거대한 살육전이었다. 서로를 죽이고 죽는 치열한 싸움 끝에 연합군의 대공세로 전쟁은 막바지를 치닫게 됐다. 미국의 전설적인 종군기자 로버트 카파(Robert Capa)는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벌어졌던 오마하 해변에서부터 치열한 저격전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8월 말쯤, 프랑스 파리가 해방되고 시민들이 거리에 몰려나와 애국가를 부르며 “드골 만세”를 외쳤다. 프랑스의 전쟁영웅 드골 장군이 시민들과 함께 개선문에서 노트르담까지 승리의 행진을 하는 동안 카파는 현장을 찍었다. 이 승리의 행렬은 시청 앞 광장에서 갑자기 끝나 버렸다.
독일군 저격수의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수천 명의 시민은 곧 피로 얼룩진 포장도로에 웅크리고 앉았고 드골 장군도 위기를 모면했다. 독일 저격수는 프랑스 레지스탕스 투사들의 반격으로 사살됐지만 그 위기의 현장을 카파가 목격했다. 독일의 최후 방어선이 붕괴되면서 전쟁에서 패하는 독일군의 마지막 몸부림도 만만치 않았다.
1945년 4월 18일 전쟁이 끝날 즈음, 로버트 카파의 카메라에는 이 전쟁의 마지막 미군 희생자가 독일군 스나이퍼에게 피격당하는 극적인 장면이 포착됐다. 저격수의 총탄에 쓰러진 많은 군인이 있었지만 카파는 그 모습이야말로 마지막 전장에서 찍은 가장 비통한 저격 사진이라고 증언했다.
“전쟁이 거의 끝나가고 있을 때 우리는 한차례 전투를 치른 뒤에 라이프치히에 도착했고,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되었다. 아직도 패전 소식을 모르고 있는 독일군들이 우리를 저지하려고 저항했다. 그래서 나는 근처에 있는 고급 아파트로 올라가 멋진 장면을 찍으려 했다. 아파트 발코니에는 젊은 병사들이 무거운 기관총좌를 설치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전쟁은 이미 끝나고 있었고, 이따위 총 쏘는 사진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병사들의 모습은 마치 전쟁 첫날인 듯 단정해 보였고 아주 진지했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좋아, 이게 이 전쟁의 마지막 사진이 될 거야’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얼굴에 초점을 맞춰 셔터를 눌렀다. 그 순간, ‘탕!’ 어디선가 총탄이 날아와 병사를 쓰러뜨렸다.내가 사진을 연속으로 찍는 동안 전투는 다시 시작됐다. 그 병사의 죽음은 어쩌면 아름답고, 전쟁의 허망함을 보여 주는 사건이었다.”
그들이 피격당하는 순간의 모습은 용감한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담겨 후세에 전해졌다.미군 기갑부대의 기관총 부사수인 하사가 총을 점검하고, 사수인 중사는 탄약을 점검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 전쟁이 끝나면 전 학교로 다시 가겠습니다” “좋은 생각이야, 난 고향으로 돌아갈 테야” “독일 녀석들 이제는 모두 사라졌나 봅니다. 저격수놈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탕!” 갑자기 하사가 저격을 당하고 쓰러졌다. 중사는 소총을 들고 어디론가 엄폐했다. 적탄은 계속 날아왔다. “저격수다! 저격수다!” 여기저기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전투가 다시 시작되고 미군 병사들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하사의 몸에서는 피가 계속 흘렀다. 저격탄이 그의 양미간을 뚫었고 목에서도 피가 터져 나왔다.
섣부른 승리감이 그를 죽음으로 몰았다. 발코니에 혼자 남긴 하사는 죽어 가고 있었다. 전우들은 독일군을 색출하기 위해 모두 출동했다. 카파가 카메라를 대는 방향으로 피가 서서히 흘러내렸다. 패튼 장군의 말대로 그는 마지막 전쟁에서 최후의 총탄을 맞고 쓰러진 위대한 군인이었다.
미군들은 독일군 저격수를 색출하기 위해 주변을 포위했고 마침내 부서진 시내 전차 속에서 두 명을 발견했다. 이러한 마지막 전쟁의 저격전은 스나이퍼가 미래의 전쟁에 다시 나타난다는 예고편이었으며 불길한 징후였다.
<양대규 전사연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