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태평양 전쟁의 저격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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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저격수들 나무 위에서 기습공격 특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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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전쟁이 소용돌이치고 있을 무렵, 아시아에서는 일본군이 1941년 12월 진주만을 기습공격해 이를 신호로 태평양전쟁이 벌어졌다. 아시아와 태평양에서 연합군들은 일본군 저격수의 끈질긴 저항과 투쟁의지에 당혹스러워하면서 그들과 정면으로 부딪치게 됐다.
놀랍도록 정교한 위장술과 결사적인 공격·인내심 그리고 희생정신이야말로 일본군 저격수들의 전형적인 특징이면서 연합군에게는 공포스러운 존재로 알려졌다.일본의 6.5mm 38식 소총은 러일전쟁이 끝난 후 1905년 군용으로 채택됐고, 보병용 화기가 됐다. 저격용인 97식 소총도 개발됐으며 이 총에는 2.5배율 망원조준경과 개량된 노리쇠 손잡이가 부착됐다.
비록 유럽형 소총보다는 화력이 부족했지만 97식 소총은 약실이 줄어들고 총열이 길었기 때문에 저격술에 적합했다. 그리고 모든 추진 장약이 총열 안에서 완전히 연소하면서 총구의 섬광과 연기를 거의 없앴다. 이 때문에 연합군 병사들은 일본군 저격수의 위치를 찾아내기가 힘들었고, 특히 총성의 방향이 혼동되는 정글에서는 더욱 어려웠다.
전쟁 기간 동안 일본군은 99식 소총을 보급했는데, 이 총은 더욱 전통적인 7.7mm(0.303인치) 구경이었다. 저격용 99식 총은 4배율의 스코프가 장착됐고 접철식 다리가 부착돼 더욱 큰 안정감을 줬다. 동남아시아의 정글이나 착잡한 지형에서 벌어진 연합군과의 여러 전투에서 일본군 저격수들은 근거리에서 쐈다.
그들은 평균 300m 이하의 거리에서 쏘는 정확한 사격술을 중요시했고 사거리는 때때로 100m 정도로 가까웠다.일본군은 항상 부대의 위장술이 뛰어났으며 개개인의 위장에도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 정교하고 완벽한 은신을 위해 그물망을 사용하면 근거리에서도 발견하기 어려웠다.
그들의 결사적인 공격력과 인내심은 미군 병사들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죽음과 전투에서 보이는 태도는 미군이 그동안 겪어 보지 못한 것으로 일본 저격수를 상대하는 것은 아주 어려웠다. 적은 인내심이 강하고 교활하며 야전 행동술을 잘 배웠고 자살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일본 저격술의 특이한 점은 사격 진지로 정글의 높은 수목을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종종 나무 위에 의자를 끌어올려 설치했다. 그리고 저격수의 추락을 방지하기 위해 로프로 나뭇가지에 몸을 묶었다. 미군의 공격을 받으면 나뭇가지에 매달려 죽은 체하다 기습사격을 가하기도 했다. 일본군 저격수에게는 나무를 오르내리기 위한 등산용 로프나 스파이크가 지급됐다.
유럽에서 연합군과 독일군 저격수들은 이처럼 나무를 사용하는 것을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정찰병들이 종종 높은 나무를 사용해 저격수로 오해받았지만, 만약 그곳에서 저격수가 발각되면 꼼짝없이 나무가 죽음의 덫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적어도 일본군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들은 적을 유인해 다가오기를 기다리다가 자신이 죽을 때까지 잘 조준된 몇 발의 사격을 가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것은 일종의 자살공격이었다.전장에서 이러한 용기와 희생정신은 당연히 귀감이 됐다. 하지만 전쟁은 대담성보다 신중함이 요구되고 치밀한 계산이 필요했다. 이런 만용이 적에게 공포심을 줄 수는 있었지만 전투 효율성은 없었다.
영국의 저격수 장교인 잴랜드는 훌륭한 저격수의 필수요건 중 하나를 “강한 자기보존 의식”이라고 명확히 주장했다.태평양전쟁 내내 일본군 저격수들은 많은 연합군을 쓰러뜨릴 수 있었고 혼란과 공포심을 야기시켰다.1944년 1~2월 중, 미 제7보병사단이 소탕작전을 시도한 마샬 군도의 크와잘린(Kwajalein) 산호섬에서 미군들은 일본군 저격수의 끈질긴 공격을 받고 큰 난관에 봉착했다. 어느 미군 장교는 당시 전투기록을 이렇게 남겼다.
“산호섬을 놓고 벌인 5일간의 전투 마지막 날, 제32보병연대 F중대는 저격수의 사격을 받아 크게 위축돼 있었다. 병사들은 숨기 위해 더 깊숙이 모래밭을 파고 야자수 잎으로 가리려고 했다. 한 시간 동안 F중대는 산호섬의 끝, 150m도 못 미치는 거리에서 복지부동해 있었다. 차례차례 병사들이 저격수의 총에 맞았고 매번 의무병이 죽음을 무릎쓰고 기어가 후방으로 끌고 왔다. 우리에게 공격의지는 사라지는 것 같았다. 저격수의 공격을 막도록 방호막으로 지원된 탱크가 없었다면 병사들은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탱크는 계속 경기관총 사격을 가해 땅을 파헤치며 저격수들을 몰아냈고, 적 벙커를 파괴시키며 결국 산호섬의 마지막 저항도 제거할 수 있게 했다.”
일본군 저격수들은 태평양의 돌출된 산호섬이나 멀리 떨어진 뉴기니의 울창한 정글이라 할지라도 항상 위협적인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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