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격수의 세계/미사일보다 더 무서운 ‘인간무기’

<11>영국군 저격기술의 발전

화이트보스 2009. 1. 26. 20:07

<11>영국군 저격기술의 발전
SOS<저격술·관측·정찰> 훈련소 창설…유능한 저격수 양성

1916년 중반, 제1차 세계대전은 끝이 안 보이는 거대한 게임으로 치달았다. 유럽 각국의 군대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모든 힘을 무조건 쏟아 붓는 재래식 군사작전으로 상대를 격파하려고 했다.전장에서는 점점 더 우수한 저격수들이 가장 위험한 참호로 투입됐고 참호전은 더욱 가열, 처참하게 전개됐다. 저격수들의 인간사냥은 이제 조직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전쟁을 치르면서 영국군은 SOS(저격술·관측·정찰) 훈련소를 창설했다. 영국의 SOS 훈련소에서는 유능한 저격수를 선발하기 위해 야지에서 일하는 사람들, 특히 사냥꾼이나 덫꾼·광부·벌목꾼·밀렵꾼 등 시골 출신을 선호했다. 하지만 도시 출신이나 사회 고위층 지원병이 많은 영국 군대에서 이런 시골사람을 찾기란 힘들었다.

영국군들은 부대에서 전문적인 총잡이들을 골라냈고 이들을 저격수로 양성했다. 영국군 저격수 프랭크 크위텍 상사는 두 명의 동생이 전투 중 독일군 저격수에게 사살됐는데 그는 복수를 결심하고 독일군 사냥에 나서 무려 34명을 쏘아 죽였다.전장에서는 한 발로 반드시 한 명씩 죽인다(One shot one kill)는 원칙으로 작전을 수행하면서, 독일군 저격수들을 유인하기 위해 함정을 만들었다.

대 저격팀은 정교한 인형머리를 막대기에 꽂아 사용했는데 인형머리가 적탄에 맞으면 진짜 죽은 것처럼 쓰러졌고, 총알 구멍이 난 곳과 같은 높이에 관측경을 거치했다. 관측경으로 적탄의 발사 방향을 찾거나 저격수를 찾을 수 있었다. 현실감을 주기 위해 담뱃불을 인형의 입에 꽂거나 긴 고무호스를 통해 연기를 내뿜기도 했다. 영국 제1군 지역에서 특정기간에 사살한 71명의 독일군 저격수 중 67명을 인형머리로 속여 그 위치를 포착했다.

전쟁이 계속될수록 저격용 장비와 전술도 꾸준히 발전했다. 특히 중점을 둔 것은 양질의 탄약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저격용 철갑탄은 철제 방호판과 적의 기관총을 타격하기 위해 사용됐고 이에 대비하기 위해 독일군과 연합군에서는 2중 방호판을 도입했다.영국군에서는 저격수들에게 망원조준경을 충분히 보급했다.

그러나 망원조준경은 훈련이 미숙하거나 정확히 사용할 수 없는 풋내기들의 경우 조준경에 의해 선명한 시야가 확보된다면 지나친 자신감을 갖게 되고, 결국에는 아무것도 명중시키지 못하는 취약점이 있었다. 저격수팀, 즉 쌍안경과 망원조준경을 갖춘 저격수와 관측수 한 조는 일심동체로 저격전에서 매우 효율적이었다. 장기 저격전에서 이러한 팀워크는 관측과 감시·생존력을 크게 보강해 줄 수 있었다.

숙달된 관측수는 마치 사격코치처럼 임무를 수행하고 반드시 명중 여부를 확인해야 했다. 영국군 저격수 훈련소에서 훈련병들은 최소한 400m의 거리에서 확실하게 머리를 명중하도록 훈련받았다. 반면 독일군은 필요시 진지 전방으로 나아가 좀 더 짧은 거리에서 사격하도록 강조했다. 즉, 영국군은 고난도의 사격술을 강조했지만 독일군은 전술적인 면을 더 중요시했다.

저격수들은 단일 진지보다 몇 개의 진지를 번갈아 사용함으로써 적이 위치를 추적하는 데 어렵게 했다. 적이 눈치를 채면 보복이 가해지기 때문에 교묘히 위장했다. 크게 부서진 건물 같은 곳은 단지 적 포병 사격의 기준점이 될 수 있었다. 오히려 넓은 개활지에 위장된 지하 진지를 파는 것이 더 안전했다. 이렇게 노출된 저격진지는 통상 야음을 이용해 은밀하게 움직였다.

1916년 중반까지 위장술은 교전국에서 매우 중요하게 받아들여졌으며 위장 용품도 대량으로 생산됐다. 서부전선의 영국군 지역에서는 위장기술이 하나의 특수과업이었다. 위장진지 작업도 심혈을 기울여 저격수의 감시초소를 전문적으로 만들었는데, 이 초소는 철제로 만든 가짜 나무와 이정표, 심지어 철사틀을 이용해 ‘죽은 말’을 연출하고 악취를 풍기기도 했다.

저격수의 대저격작전을 위해 만든 가짜 인형머리와 천·면포에 색깔을 칠해서 만든 위장복도 도움을 줬다. 옷에 풀이나 나뭇잎을 붙인 위장복을 착용하면 저격수가 미동도 하지 않을 경우 근거리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러한 복장은 전문적인 저격수와 사냥꾼 옷의 전조가 됐다.

전선에서 어느 나라 군대의 저격수가 보다 우수한지 그 우열을 평가하기란 어려웠다. 영국군들은 건전하지만 상상력이 없고 바보같이 쓸데없는 위험을 감수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영국과는 대조적으로 캐나다와 미국의 저격수들은 지능적이며 장거리 사격에 익숙했다. 독일군도 연합군에 못지않은 치명적인 저격기술을 발휘했다.

어쨌든 전장에 등장한 저격수들이 위협적인 존재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미국 남북전쟁이 진정한 저격수의 기원을 나타냈다면,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완전한 자격을 갖춘 현대적 스나이퍼가 등장한 것이다. 또 소총이 비약적으로 발달하고 새로운 전술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