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류수는 송양왕이 지배했던 옛 비류국,지금의 백산시 상부에서 발원하여 통화,한인현
을 지나 압록강과 합류한 다음 조선 서해로 흘려 간다
환인현은 비류수 중류에 위치한 고구려의 첫 도읍지이다
지금은 만주족 자치현이며 동쪽으로 약 10km 떨어진 곳에 졸본성(오녀산성)이 자리 잡고 있다
오녀산성은 자연적인 천하에 둘도 없는 요새다
구려5부를 통합하고 동명성왕은 높을"고"자를 더하여 고구려를 건국 하게 된다
그 시기는 BC277년 이였다
5월초 백산에서 가장 높은 태안령(1800m)에서 만난 조선패모이다
한국에서는 자생하지 않으나 북녁당 평안남도 에서 자생한다고 기록 되어 있다
패모는 보통 두 종류의 식물이 있는데 조선패모와 중국패모이다
뿌리는 하얀 덩이가 달려 있는데 아주 비싼 약재로 유명하다
야생 패모는 한근(300g)에 중국 돈으로 35위엔에 팔린다니 그 가치를 알만 하다
이런 이유로 농가에서도 패모를 재배 하는 모습을 쉽게 만날수 있다
숲개별꽃 또한 태안령에서 자란다
물론 한국에서는 자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백두산 지하림이나 이도백하 지역에서도
널리 자생한다
작은 공간을 이용하여 중의무릇도 자란다
"백합과"식물인 중의무릇은 한국에서도 그렇게 어럽지 않게 만날수 있는 식물이다
멀리 떨어진 중국땅에서 다시 만나니 전혀 어색 하지가 않다
"양귀비과" 식물인 노랑매미꽃도 자란다
역시나 한국에서도 쉽게 만나는 식물이다
대부분 식물들이 한국과 비교 하면 비슷하다
특별히 몇종류의 식물만 제외 하고는 똑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옛전 한민족이 살아든 땅인데 다르면 그것이 오히러 이상한 일이 아닌가
식물상이 같다는것은 오히러 생활 습관과 환경에도 크게 차이는 없을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풀솜대 식물을 만나면 더욱 그렇게 보일수 있다
한국에서도 자라는 풀솜대는 다른 이름으로 지장보살이라고 한다
식량이 부족 했을때 우리 민족은 풀솜대를 나물로 즐겼다
풀솜대는 5월에 피는 꽃이라 4월쯤 되면 풀솜대는 연한 잎을 가져 나물로 충분한
값어치를 한다
식량난이 시작 되는것이 4-5월이라 생각 하면 풀솜대는 식량을 대처 할수 있는 가치를
가졌고 사람을 살린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이 지장보살, 또한 지장나물이라 하는것이
아닐까 싶다
이곳 현지 조선족들도 지장나물이라 하여 나물로 즐겨 먹었다고 한다
백산을 거쳐 통화를 지나 계속 비류수(혼강)을 따라 내려간다
계속 되는 들판 같은 언덕을 넘어 초원이 형성된곳에서 홀아비꽃대를 만난다
한국에서도 만날수 있는 식물이라 기분은 더욱 고향을 찾는듯 하다
마침내 환인현에 도착 했을때 저 멀리 졸본성이 보인다
옛 고구려의 역사가 시작 된 졸본성,요녀산성이다
요녀산성 아래 주차장에 차를 대기 시키고 현지에서 마련한 차를 이용하여 졸본성으로 올랐다
졸본성은 자연이 준 요새였다
주변은 모두 바위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고 사람이 올라 갈수 있는곳은 두곳 밖에 없다
정상 부근은 넓은 초원을 영상케 하고 옹달샘터도 있다
중국에서 유적지 보호를 위해 설치된 유리관과 글귀들,
쉽게 알아 볼수는 없지만 고구려인들의 숨소리가 들러 오는듯 하다
성주변을 한바퀴 돌아 보는데 멀리 비류수가 흐르고 한포기 금강애기나리가 피어 있다
금강애기나리는 금강산에서 처음 발견되어 붙여진 이름이면서 한국에서도 자생한다
한때 한국특산식물로 지정 되어 이식물을 만날때는 향토의 냄새가 진하게 다가와
우리꽃이라는 의미를 더욱 부각 시켜 준다
8월 다시 지안에서 환인현으로 비류수를 따라 오르기로 했다
깍아진 절벽 아래에 하얀꽃을 피우는 뚜갈을 만났다
한국에서는 자라지만 백두산이나 길림성 북쪽에서는 만날수 없는 식물이었다
내가 가장 깊숙히 만나곳이 강원현을 지나 노령을 넘어서 부터 뚜갈은 살아지고 없었다
아마 최대 북방 한계점으로 생각되며 말 없이 흐르는 비류수를 보면 뚜갈은 외롭게
누군가를 기다리는듯 하다
논뚝을 지날때 또 하나의 식물을 만난다
물에서 자라는 물옥잠화다
중국의 논농사는 조선인들에 의해 부활 되었다
고구려,발해 까지 논농사가 이루어졌으나 그후 흔적을 보이지 않았다
다시 논농사가 부활한것은 19세기 후반에 조선인들이 중국을 건너서 부터 다시 시작 되었
다는 기록들이 무수히 나타나 이를 증명해 준다
가을이 오면 오갈피가 검은 열매를 맺는다
비류수를 생명 처럼 여기며 오갈피는 오늘도 내일도 살아 숨쉴것이다
아무리 시간이 1000년이 흘려도 습관이나 문화는 쉽게 변할지 모르나 산천은 변하지
않을것이다
누가 주인 이든 그것은 상관 없다
진실이 살아 있다면 진실이 답을 해 줄것이며 우린 그것을 믿는다
조상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이곳,비류수는 오늘도 조용히 흐르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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