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대 보험사 AXA 카스트르 회장 인터뷰
"우린 핵심사업만 집중 G20은 A학점, 경제전망 B- 세계경제 올해안에 반등할듯"
"금융위기 불구 자본주의 영원… 정부·시장 새 균형 찾아갈 것"
실패는 시장 아닌 당국 탓 금융기관 바로 감시하고 위기 부른 규제 바꿔야
한국경제 상대적으로 안정 재정지출은 생산적 투자로 대기업 경쟁력 유지해야
포천(Fortune)이 선정한 세계 최대 보험사의 글로벌 CEO, 프랑스 재무장관 제의까지 받은 바 있는 대표적 금융 경제통, 루이 16세 밑의 유명한 해군 제독과 2차 대전 영웅을 친가와 외가의 조상으로 둔 명문가 출신의 엘리트….
까르띠에 시계를 차고 호텔 접견실로 들어선 55세의 이 명망 있는 경영인은, 환하게 웃으며 허리를 약간 굽히는 한국식 인사를 했다.
- ▲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이 회사의 앙리 드 카스트르(Henri de Castries) 회장 겸 CEO가 최근 방한 길에 Weekly BIZ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이제 곧 '소비자들의 실업(失業)에 대한 공포'와 '경기 부양책들로부터 얻을 혜택의 가능성' 사이에서 '경주(競走)'가 벌어질 것"이라며 "모든 물건값이 1년 전보다 저렴하고 이자율이 매우 낮으며 미국 부동산 시장이 안정화 조짐을 보인다는 호재(好材)들이 희망의 불빛을 반짝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얼마 전 런던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가 예상 외로, A학점을 줄만한 성공을 거둔 것도 호재"라며 "세계 경기는 올해 안에 반등할 가능성이 높다"고 점쳤다. "세계 경기의 회복 전망에 대해 'A+~D-' 중 하나로 평가해 달라"고 묻자 그는 'B-'의 학점을 매기며 "미세한 낙관"이라고 해설했다.
Weekly BIZ와 인터뷰한 숱한 세계적 지성과 석학과 경영 대가들처럼, 그도 대답과 표현이 명쾌했고 유머와 배려가 넘쳤다. 똑똑한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쉽게 말하고, 대체로 매력적이다.
―AXA는 수익을 내고 있는 몇 안 되는 기업이다. 비결은 뭔가?
"하하…. 무엇보다 우리는 절대 핵심 사업 밖으로 외도를 하지 않았다. 우리의 핵심 사업은 보험과 자산 관리이다. 우리는 언제나 여기에 엄격하게 집중했다."
이 대목에서 Weekly BIZ 독자라면 친숙한 용어, 바로 게리 해멀(Hamel) 교수의 '핵심 역량(core competence)'이 떠오르지 않는가?
―핵심 역량에의 집중을 말하는가?
"전적으로 그렇다. '핵심 역량! 그리고 오로지 핵심 역량만을!'이다. 그것이 첫 번째 포인트이다. 둘째로,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리스크 관리에 꽤 투자를 해왔다. 상대적으로 우수한 리스크 관리 시스템이 다른 회사보다 실수를 줄였다. 우리도 실수가 없진 않았지만 적었다."
―글로벌 기업을 경영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철학은?
"글로벌 기업 경영의 키 포인트는 '당신 주변을 당신보다 우수한 사람이 둘러싸게 하라'는 것이다. 위대한 사람과의 대화가 그 기업과 조직을 전진시키고 가속(加速)시킨다. 온갖 문화로부터 다양하고 우수한 인재들을 끌어오는 게 글로벌 경영의 정수(精髓)다."
―그게 CEO의 가장 중요한 역할인가?
"그렇다. 축구팀 감독과 비슷하다. 최고의 선수들을 끌어와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함께 플레이하도록 코칭해야 한다."
―최근 AXA는 'redefining standards(국내에서는 '다시 쓰는 손해보험'으로 의역됨)'라는 기치를 내걸었는데 무슨 뜻인가?
"간단하다. 많은 금융 서비스 기관들이 수많은 약속을 하고 있다. 약속은 잘하지만, 실천은 그만큼 잘하지 못하는 것 같더라. 우리는 매일 우리의 각오를 증명해서 '약속의 땅'으로부터 '입증의 땅'으로 이동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 ▲ 포천이 선정한 세계 최대 보험사 AXA의 앙리 드 카스트르(Castries) 회장이 Weekly BIZ와의 단독 인터뷰에서“이번 G20 정상회의는 A학점을 줄 만큼 성공적이었고, 이에 따라 세계 경제 회복의 희망도 밝아졌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올해 안에 세계 경제가 회복세를 탈 것으로 내다봤다. /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기업에 인재는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물론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대단히 중요한 두 요소가 '상호 존중'과 '용기'다. 우선 상대방을 경청(傾聽)하고 이해할 줄 아는 인재여야 한다. 아울러 상사나 동료에게 '노'라고 감히 말할 줄 아는, 용기 있는 인재여야 한다. 물론 언제나 '노'라고만 말하면 곤란하지만….(웃음) 조직의 큰 위험은 어떤 결정이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재고(再考)해 보시죠'라고 감히 말하는 용기가 없는 상황이다. 이를 위해 우리 회사는 매우 분권화돼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용기가 작동하지 않는다."
―잠재 부실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는데 AXA는 괜찮은가?
"그렇다. 우리 대차대조표는 시가평가제로 작성돼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물론 작년에는 가치 하락의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신용 상태는 좋다. S&P는 우리에게 AA 등급을 매겼다. 요사이 AA 등급인 회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왜 JP모간은 최근 투자 추천 등급을 내렸나?
"JP모간은 우리가 너무 빚이 많다고 느끼는 모양이다. 그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신용 평가사들도 우리와 공감한다. 가끔씩은 애널리스트들마저도 공포에 휩싸인다."
―AIG는 CDS(Credit Default Swap·신용부도스와프)를 많이 발행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AXA는?
"우리는 괜찮다. AIG가 발행한 어마어마한 CDS는 보험 비즈니스가 아니라 금융 투기였다. 우리는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우리도 CDS를 어느 정도 발행했지만, 그건 우리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AXA 주가가 많이 떨어진 이유는?
"AXA 주가는 지난 18개월 평균으로 볼 때 보험 업종의 평균 하락폭만큼 떨어진 것이다. 보험 업종 주가는 왜 떨어지느냐? 은행에서 보험 쪽으로 부실의 도미노가 넘어간다는 공포 때문이다. AIG나 ING처럼 문제가 노출된 보험사의 사례가 이런 공포를 더욱 부채질한다."
카스트르(Castries) AXA 회장은 "은행권 부실이 보험사로 넘어올 것이라는 공포는 과장된 것"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우선 보험사는 은행과 달리 유동성 문제와 거리가 멀다. 원칙적으로 보험사는 플러스의 유동성을 갖게 돼 있다. 유동성을 위해 시장에서 돈을 꿀 필요가 없다. 또 장기 이자율이 매우 낮게 유지되면 생명 보험 분야도 고생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래도 은행보다는 훨씬 덜하다."
―세계 경기는 어느 시점에 반등할까?
"하하…. 아무도 모른다. 지난 2년 동안 우리가 배운 교훈은 거의 모든 전문가들이 거의 모든 시점에 틀렸다는 것이다. 다만, 대체로 올해 연말 이내에는 경제 안정화 양상이 펼쳐질 것으로 본다."
―세계 경제가 어려워진 가장 큰 이유는?
"우리는 지금 너무 오래 지속된 '과잉(過剩)과 불균형(不均衡)'에 대해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금융 시스템의 과잉 레버리지가 심각했으나, 미국 금융 정책은 너무 둔감했고 무관심했다. 미국 소비자의 과도한 부채, 매우 심각한 미국·중국 간 교역 불균형도 문제였다."
―최근 런던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를 어떻게 평가하나?
"명백하게 모든 사람의 예상보다 훨씬 성공적이었다. 제한적 합의에 그치지 않을까 우려가 많았는데, 여러 의제에서 성공적 결실이 나왔다. 확실히 A 학점을 줄 만하다. 물론 잘 이행될지는 지켜봐야 하지만, 이번 첫 발자국은 매우 고무적이다."
―G20는 앞으로 세계 경제를 이끌어갈 새로운 리더십이 될까?
"예전 체제보다 우수하다. 무엇보다 새로운 경제 이슈를 다루기 위해 반드시 고려해야 할 신흥 국가들이 포함돼 있다. 중국·브라질 등이 테이블에 앉아있지 않으면 오늘날 경제 문제를 제대로 다루기 힘들다."
―자유시장 경제의 종말을 말하는 전문가까지 나오는데 동의하나?
"동의하지 않는다. 경기 침체기나 경제 난국에서는 자본주의가 끝났다는 식으로 말하는 게 편하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여러 세기 동안 지속돼왔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자본주의는 서로 거래하면서 스스로를 부유하게 하려는 인간의 자연스런 의지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는 매우 복잡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행위를 하려 한다. 시장만이 이를 소화해 낼 수 있다.
잘 생각해보라. 이 위기는 시장이 아니라 공공 부문이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둔감한 통화 정책이라든가 과도한 은행 레버리지는 시장 탓이 아니다. 규제 당국자나 공공 기관이 잘못한 것이다. 자본주의와 자유시장경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더 우수한 수단, 향상된 규제들을 탑재하고, 새로운 균형을 찾아가고 있을 뿐이다."
"우선 미국도, 유럽도 금융기관들을 제대로 감시할 수 있도록 규제를 바꿔야 한다. 은행 시스템을 정화해야 한다. 은행 시스템의 안정화가 최고의 우선순위다.
둘째로 규제들이 경기순응적(procyclical)이어서 명백하게 이 위기와 침체의 악화를 더욱 가속(加速)시켰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그랬다. 파산에 대한 규제도, 회계에 대한 규제도…."
그가 '경기순응적(procyclical)'이란 단어로 표현하려는 바는, 쉽게 말해 지금까지의 금융 규제가 '소나기 오는데 우산 뺏고 비옷 벗기는 식'이었다는 뜻이다. 위기가 찾아올 때 규제가 완충 역할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했다는 의미다. 그는 시가평가제(Mark-to-market)를 그런 예로 들었다.
"시가평가제의 문제는 '투자 계획 기간(investment horizon)'을 무시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어차피 10년 보유할 자산이라면, 왜 가격이 낮은 시점에 굳이 재평가할 필요가 있는가? 시가평가제를 강요하면 결국 장기 투자자는 주식 시장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주식 시장은 너무 요동치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가평가제는 자산의 가치 하락을 계속 평가에 반영시키면서, 불황에 처한 기업을 더 힘들게 만드는 악순환의 기폭제란 비판에 직면해왔고, 지난 2일 미국 FASB(금융회계기준위원회)는 이를 완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보험사는 거대한 기관 투자가이기도 하다. 앞으로 어느 분야에 투자하겠는가? 주식, 달러, 금(金) ….
"그건 위험에 대한 취향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장기 투자 관점이고 위험 회피형이 아니라면, 지금 주식은 흥미로운 투자 대상이다. 뭐, 매우 저렴하니까…. 하지만 6개월 투자라면 주식은 너무 위험하다."
―미 달러화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이미 예전만큼 강세는 아니다. 미 달러화의 미래는 미국 경제가 앞으로 어떤 성과를 내느냐에 달려있다. 미국 경제가 회복세를 보인다면, 달러가 강세로 돌아설 시점이 올 것이다. 하지만 미국 경제가 고전을 계속하고 금리도 낮다면 약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금(金)은 어떻게 보는가?
"금은 그야말로 극도의 공포에 휩싸일 때의 투자 대상이란 점만 말하겠다. 금은 수익을 내는 자산은 아니다."
그는 프랑스 재무부에서 9년 근무한 후 1989년 AXA에 합류했고, 2000년부터 현재의 회장 겸 CEO직을 맡고 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은 사회 안전망이 발전해 있다. 위험 내성(危險 耐性·risk tolerance·위험을 감수하는 능력이나 범위)과의 역비례 관계를 감안하면 약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 좋은 질문이다. 유럽에는 매우 강한 사회 안전망이 있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자동안정화 장치(automatic stabilizer·실업 수당이나 누진소득세 제도처럼 경기 하강기에는 자동적으로 경기를 부양시키고 경기 상승기에는 자동적으로 경기를 진정시키는 효과를 내는 제도)가 유럽이 강하다. 따라서 이 침체기에도 미국에 비해 재정 지출을 통한 경기 부양의 필요성이 덜했다. 그래서 G20에서도 초반에 미국과 유럽 간에 재정 지출범위를 놓고 이견이 나온 것이다.
대신 이런 사회 안전망 때문에 '위험 내성'이 줄어드는 문제가 있다. 사회 안전망이 발전하면 사람들이 리스크에 덜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높은 목표를 달성하고 싶으면 위험도 높은 수준을 감내할 줄 알아야 한다. 대체로 유럽에서는 미국이나 아시아만큼 침체의 골이 깊지 않은 대신, 회복기에는 미국이나 아시아만큼 높게 반등하지 않는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위험 선호도나 투자 심리가 잘 상향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게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프랑스 자동차 산업은 어떻게 전망하나?
"일단 나는 전문가는 아니다. 지금 세계 자동차 산업은 설비 과잉을 줄이는 구조조정 중이다. 프랑스에서는 르노와 푸조, 두 회사는 생존할 것으로 본다."
카스트르 회장은 부친이 한국전에 장교로 참전한 인연 덕분에, 한국에 '강력한 감성적 연대'를 느낀다고 말한다.
―한국의 이미지는 어떤가?
"한국은 위대한 국가이다. 긴 역사와 전통이 있고, 그걸 현대적 경제와 결합시켰다. 지난 30년간 한국과 같은 경제적 성취를 이룬 나라는 거의 없다. 또 현재의 경제 위기에서도 한국은 매우 효율적인 나라임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경제에 충고를 세마디만 해달라.
"상대적으로 한국 경제는 다른 나라들보다 좋은 상태다. 우선 은행 시스템을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만들라. 둘째, 재정 지출이 필요하다면 일상적 지출보다 생산적 투자에 쓰라. 마지막으로, 기업 경쟁력과 한국 경제 경쟁력을 유지하도록 노력하라."
―삼성과 LG, 현대차 같은 한국 대기업을 어떻게 평가하나?
"매우 성공적이다. 10여 년 전 한국 경제 위기 때 스스로를 재편하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세계적으로 한국 기업들은 매우 존경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한국 대기업 CEO를 만나서 조언한다면?
"(웃음) 우선 많은 시간을 고객에 할애하라. 고객의 요구와 고객이 이번 침체로 받는 영향을 잘 살핀 후 고객이 자신감을 되찾도록 도와주라. 고객이 실종되면 당신의 비즈니스는 최후의 날을 맞게 되니까…. 둘째, 당신 회사 직원들과 제대로 소통하라. 최근의 극심한 침체로 인해 직원들은 걱정이 많을 것이다."
―이 글의 독자에게 충고를 준다면?
"너무 비관적이 되지 말라. 물론 이 위기가 매우 엄혹할 뿐 아니라, 미증유의 전세계적 위기이긴 하지만, 갈수록 좋아질 것이다. 아마 다음 달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좀 더 뒤의 미래에는 꽤 낙관적이다. 특히 아시아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