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금융위기 돌파구는 결국 달러를 마구 찍어내는 것이다. 부실 기업들을 위한 구제금융과 각종 경기 부양책에 쏟아부을 천문학적인 돈을 충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달러를 계속 발행해 국채와 기업어음, 모기지 채권 등을 사줘야 할 처지다. 결국 과잉 공급된 달러는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것이라는 비관적 시나리오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 정부의 재정 부실로 달러가치가 폭락하면 금본위제를 부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 `골드`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2007년 발간 후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에 금 열풍을 일으킨 책으로 최근 국내 출간됐다.
금본위제란 통화가치를 정량의 금 가치에 고정시킨 지폐를 사용하는 통화정책. 지폐가치가 금 평가 이하로 떨어지면 지폐를 회수해 폐기 처분한다. 반대로 지폐가치가 금 평가 이상으로 올라가면 지폐 공급을 늘린다. 보유한 금의 가치에 따라 지폐 발행과 폐기 처분을 결정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과 통화량 과잉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이자 국제투자전략가인 네이선 루이스는 "금본위제는 고정된 환율에서 안정적인 물가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나 민간 기업의 사리사욕에 이용당하지 않는다"며 "금은 세상에서 가장 안정적인 통화가치를 창출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FRB와 월가 금융재벌은 오랫동안 달러를 이용해 전 세계 국가의 정치ㆍ경제를 교묘하게 조정하며 사욕을 채워왔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착취당해오던 주변 국가들은 이번 금융위기에 경각심을 느끼고 금본위제에 관심을 돌리고 있으며 금값도 치솟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금값은 고공 행진을 거듭했고 최근 한 돈(3.75g)의 소비자 가격이 20만원을 넘었다. 희소가치가 있는 금은 부동산이나 주식, 채권처럼 폭락할 염려가 적고 특정 국가 신용도나 전쟁, 사회 혼란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정책으로 경기가 회복돼도 엄청난 인플레이션 위험이 잠복하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금 선호 현상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최근 러시아는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에 기반을 둔 슈퍼통화에 금본위제를 포함시키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으며 중국과 프랑스도 엄청난 양의 금을 사들이고 있다. 국제 투기자본도 금을 매입하고 있으며 일반인들도 금 펀드나 금 통장 등 간접투자상품에 투자하는 등 `신(新)골드러시(gold rush)` 현상이 뚜렷하다.
만약 저자의 주장대로 금본위제가 시행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저자는 우선 FRB와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영향력이 많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통화를 발행하는 대신 이들 기관은 이제 유동성 부족 방어라는 본래의 기능에만 충실하게 된다. 또 통화 혼란을 이용해 세계 여러 나라 경제정책을 좌지우지해 왔던 국제통화기금의 영향력도 감소하고 대신 통화 안정성 확보라는 본래 설립 취지에 맞는 기관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금본위제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발행 가능한 화폐량이 한정되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경제 성장에 따라 화폐 수요가 증가하는 데도 화폐 유통량이 제한되기 때문에 경제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또 고정환율제도이기 때문에 국제수지 적자가 발생하면 수입을 줄이기 위한 각종 통제를 가할 수밖에 없다. 경기부양과 실업문제 해결도 어렵기 때문에 1971년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금본위제의 종말을 선언한 후 변동환율제를 선택했다. 이후 미국은 38년 동안 마음대로 달러를 찍을 수 있었다.
이은주 옮김, 에버리치홀딩스 펴냄.
[전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