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저지르기’가 명답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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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사수가 총을 지지대에 고정한 상태에서 목표물이 조준경의 십자선 안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격발하는 ‘트래핑(trapping)’ 방식이다. 목표물이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이면 트래핑은 좋은 성과를 낸다. 하지만 목표물이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심하게 움직일 때 고수들은 다른 방법을 활용한다. 저격수들은 자신의 몸을 움직여 목표물을 추적하면서 격발하는 ‘트래킹(tracking)’이란 방법으로 이동 표적을 공략한다.
트래킹은 삼성 임원이 말한 ‘저지르기’와 유사하다.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우기보다 일단 행동부터 시작한 뒤 세부적인 계획을 수정하면서 목표를 달성하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들은 치밀한 계획을 수립한 뒤 행동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계획 수립(formulation) 후 실행(imple-mentation)’이라는 전략 프로세스는 지난 100년 동안 위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조직 이론 분야의 거장인 미국 미시간대 경영대학원의 칼 와익 교수는 이런 통념에 반하는 주장을 펴 학계에 충격을 줬다. 그는 환경이 불확실할수록 치밀한 계획을 세운 후 행동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큰 방향이 정해지면 구체적 계획이 없더라도 신속하게 행동하라는 조언이다.
와익 교수는 예측 불가능하고 급변하는 상황에서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런 방식을 따르면 행동의 구체적 목적이나 논리, 계획 등은 오히려 행동하는 과정에서 사후적으로 나타난다. 학자들은 이를 ‘사후적 합리성(posterior rationality)’ 이론이라고 부른다. 또 실무에서는 행동(doing)이 계획(thinking)보다 앞선다 해서 ‘행동 우선(doing first)’ 경영이라고 부른다.
물론 모든 상황에서 행동 우선 경영이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이미 충분한 경험이나 지식을 가진 기존 사업을 추진할 때에는 최대한 정교한 계획을 세운 후 행동해야 한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완벽한 예측은 불가능하다. 특히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상품이나 사업을 최초로 만들어 내려면 행동 우선 경영이 필수이다. 창조적 혁신은 그 누구도 해본 적이 없는 시도를 최초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치밀하고 정확한 사전 계획을 세우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물론 오랜 시간을 투자하면 어느 정도 계획을 세울 수는 있지만 그러다가 경쟁자가 시장을 선점해 버리면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최근 창조와 혁신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글로벌 선도 기업들은 행동 우선 경영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많은 선도 기업들은 여러 전략적 대안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이를 수시로 재평가해 역동적으로 조정하는 ‘실물 옵션(real option)’ 전략을 도입했다. 또 환경이 변할 때마다 수시로 계획을 수정하는 리얼타임 기획(real-time planning)을 도입하는 기업도 많다. 아직도 20세기 산업사회 마인드에 사로잡혀 치밀한 계획 수립에만 골몰하고 있는 경영자라면 와익 교수의 교훈을 되새겨봐야 한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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