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명(明) 왕조는 1424년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해군(海軍)을 해체키로 결정했다. 당시 중국 해군력은 다른 나라를 압도했다. 이슬람교도 환관 출신인 정허(鄭和)는 1405년 첫 인도양 탐험에 오르면서 배 317척에 선원 2만8000명을 데리고 갔다. 이보다 87년 늦게 아메리카 대륙 탐험에 나선콜럼버스가거느린 선단은 배 4 척에 선원 150명이었다. 정허 선단에는 한의사와 약제사만 180명이나 됐다. 당시 중국 보선(寶船)은 배 길이만 120m에 이르러, 100년 후 유럽의 바다를 지배했던 스페인의 전설적인 범선 갤리온보다 2배 이상 컸다.
▶영락제 사망 이후 중국 황제들은 세계 최강의 해군을 스스로 파괴했다. 2개 이상의 돛대를 단 배를 만들면 사형에 처했고, 1551년에는 돛을 달고 바다로 나가는 것 자체를 처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중국 배가 대양(大洋)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4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인 1851년 런던 1차 만국박람회 때다.
▶15세기 초 중국이 최강 해군을 포기한 것에 대해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파리드 자카리아는 "아시아의 비극"이라고 했다. 그런 중국이 23일 인민해방군 해군 창군 60주년에 맞춰 산둥성 칭다오항에서 세계 29개국 대표들이 보는 가운데 관함식(觀艦式)을 가졌다. 핵 추진 잠수함 4척과 구축함·호위함 25척이 등장해 위용을 자랑했지만, 최신예 핵 잠수함은 공개하지 않았다. 량광례 국방부장은 최근 "항공모함 보유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중국 해군이 인도양과 태평양을 내해(內海)인 양 활보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중국에 자극받은 일본도 헌법상 금지된 항모(航母)에 버금가는 준(準)항모를 실전배치하기 시작했다. 19세기 말처럼 동(東)아시아 바다를 둘러싼 경쟁이 또다시 벌어질 조짐이다. 나폴레옹은 "중국이 깨어나면 세계를 뒤흔들 테니 잠자게 내버려두라"고 했다. 그 중국이 잠에서 깨어나 큰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게 요즘 한반도 주변 정세다. 이번엔 한국이 어떻게 대응할지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