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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호 특별조사실… 노(盧)와 검찰 '팽팽한 힘겨루기'

화이트보스 2009. 5. 1. 08:23

박연차 "노(盧) 보고싶다 요청…만났지만 대질 불발"

 

입력 : 2009.05.01 02:45 / 수정 : 2009.05.01 07:09

1120호 특별조사실… 노(盧)와 검찰 '팽팽한 힘겨루기'
노(盧), 담배 한 개비 피우고 시작 물러서지 않고 날선 공방 계속 검찰 수사팀 "영장 청구해야"

검찰은 30일 소환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박연차 회장과의 심야(深夜) 대질까지 시도하며 10시간 가까이 맹공을 퍼부었지만, 노 전 대통령은 대질을 거부하는 등 조사 내내 검찰과 불꽃 튀는 신경전을 벌였다.

검찰이 당초 "재조사 필요성은 느끼지 못한다"던 권양숙 여사를 이날 밤 재소환하겠다고 밝힌 것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면서 완강하게 버티는 노 전 대통령을 더 압박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할 수 있다. 홍만표 수사기획관은 밤 10시 브리핑에서 "2007년 6월말 박연차 회장이 건넨 100만달러 문제를 노 전 대통령 조사에서 소화할 수 있었다면 (권 여사 재소환은) 안 해도 될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주임검사인 우병우 수사1과장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힘겨루기는 두 사람이 이날 오후 1시33분 대검 11층 1120호 특별조사실에서 직사각형 탁자가 사이에 놓인 소파에 마주 앉는 것으로 시작됐다. 두 사람 앞에는 13년여 만에 되풀이된 전직 대통령의 비리혐의 수사라는 우리 역사의 한 장면도 놓여 있었다.

고개 숙인 전직 대통령 30일 오전 검찰 소환조사를 받기 위해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사저에서 나온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재진 앞에서 대국민사과를 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노 전 대통령은 담배부터 한 개비 피워 물었다. 2003년 대통령에 취임할 즈음 끊었다가, 취임한 지 몇 달도 안 돼서 여택수·최도술씨 등 참모들이 줄줄이 측근비리로 구속되자 다시 입에 대게 된 담배다.

의례적인 인사말을 주고받은 뒤인 오후 1시45분, 노 전 대통령과 우 과장이 모두 양복저고리를 벗고 조사 테이블에 착석하면서 양측의 본격적인 공방이 시작됐다. 우 과장 옆에 앉은 김형욱 검사와 노 전 대통령 뒤편에 바짝 붙어 앉은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변호인)도 저고리를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우 과장이 먼저 "대통령께서는 2007년 박연차 회장이 경남은행을 인수할 때 도와주셨습니까?" "2006년 농협 자회사 휴켐스를 인수할 때는요?"라며 공격에 시동을 걸었다.

노 전 대통령이 박 회장에게 600만달러를 요구해서 받은 것은 재임 시절 박 회장 사업을 지원해준 대가라는 혐의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포문을 연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우 과장을 "검사님"이라는 존칭으로 부르면서도, 기세에서 전혀 밀리지 않았다. '뒤'(문재인 변호사)는 거의 돌아보지 않고, "모릅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사실이 아닙니다"라며 질문을 즉석에서 받아넘겼다. 지난 25일 제출된 노 전 대통령의 서면질의서 답변 내용으로 미루어, 이미 예고됐던 장면이었다.

2007년 6월 말(100만달러)과 2008년 2월(500만달러) 박 회장에게 모두 600만달러를 받은 혐의를 부인하는 노 전 대통령의 진술이 되풀이되면서, 조사실 분위기는 한층 달아올랐다.

대검 7층 중수부장실에서 CCTV(폐쇄회로텔레비전)로 수사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던 이인규 중수부장은 수시로 우 과장에게 노 전 대통령의 '방패'를 뚫기 위한 지침을 내렸고, 노 전 대통령의 혐의 입증을 위해 검찰이 확보한 100여개 정황증거를 들고 조사실 밖에서 대기하던 조재연 검사가 분주하게 조사실을 들락거렸다.

범죄혐의와 연관된 정황증거들을 들이밀며 검찰이 압박 강도를 높일수록, 노 전 대통령의 '응수'도 길어지고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뒤에 있던 문재인 변호사도 적극 거들고 나섰다.

검찰이 "박 회장이 대통령께 100만달러를 달라는 전화를 받았고, 고맙다는 전화도 받았다고 이미 진술했다"면서 통화기록을 들이밀면, "그런 내용의 통화를 한 일이 없다. 이미 아내가 빚을 갚는 데 썼다고 말하지 않았느냐"는 식으로 노 전 대통령이 반박하는 식의 날 선 공방은 이날 심야에 조사가 종료될 때까지 계속됐다. 조사가 평행선을 긋자, 임채진 검찰총장은 이인규 중수부장의 보고를 수시로 청취하면서 밤늦게까지 검찰청사를 떠나지 못했다.

이에 이 중수부장과 홍 기획관 등 수사지휘부와 우 과장 등은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들면서 밤 11시에 박연차 회장과 노 전 대통령을 대질시키기로 결정했지만, 노 전 대통령이 거부하면서 불발됐다. 대질 거부에는 이를 '전직 대통령 예우'가 아니라 '혐의를 부인하는 피의자' 대우라고 인식한 노 전 대통령의 불만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은 그러나 박 회장이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싶다"고 수사팀에 요청하면서, 박 회장과 잠시 안부인사는 나눴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1일 새벽 자신을 '대통령'이 아닌 '피의자'로 기록한 검찰 조서를 꼼꼼히 읽고 서명날인을 한 뒤에야, 귀향 버스에 몸을 실었다. 어쩌면 본인의 인생에서 가장 길었을 하루가 막을 내렸지만, 이제 노 전 대통령의 앞에는 그보다 훨씬 더 길고 고단할 수 있는 형사 재판절차가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