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계 반응 "깨끗하다더니…" 배신감 일부 시민 "사실 아니길"
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봉하마을에서 400㎞를 달려 서울 서초동 검찰 청사로 들어가는 모습을 생중계로 본 시민들의 심정은 배신감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듯했다."상대방에게는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했던 참여정부의 '편의주의적인 도덕적 우월주의'가 붕괴한 것"이라는 평가도 있었고, "(부정한 돈을 받았다는 것이) 제발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는 반응도 나왔다.
서울 청량리역 대합실에서 노 전 대통령이 상경하는 장면을 대형 TV를 통해 지켜보던 이옥구(여·70)씨는 "대통령까지 한 사람이 뭐가 부족하다고 욕심을 내서 돈을 받고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진남(여·32)씨는 "앞서 비리에 휘말린 전직 대통령들이 있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민 이미지와 도덕성을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됐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많이 실망을 하고 비난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세대에서 만난 박규석(25·법학과)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진 않지만 정치인 중에서 청렴도가 가장 높다고 생각해왔다"면서 "인생사 면에서도 어려운 환경을 딛고 대통령이 된 점을 존경해왔는데 괘씸하면서도 안타깝다"고 말했다.
- ▲ 30일 오후 노사모 회원 500여명이 노란 풍선과 피켓을 들고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김형준 명지대 교양학부(정치학) 교수는 "이번 사태는 참여정부의 '편의주의적인 도덕적 우월주의'의 붕괴"라고 말했다. 그는 "참여정부는 도덕성을 절대주의가 아닌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봤다"면서 "(불법 대선자금과 관련한) '10분의 1' 발언도 그래서 나온 것이고 결국 그런 편의주의적인 태도가 오늘의 사태를 부르고 말았다"고 말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 ▲ 30일 오후 보수단체 회원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소환돼 조사를 받고 있는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노 전 대통령의 구속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오종찬 기자
노무현 정권이 출범한 이후 첫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64) 경남대 북한대학원 석좌교수는 "나라 꼴이 참…"이라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주변 인물들이 이렇게 만들었겠지만 이거 나라 꼴이 참…"이라며 "어찌 됐건 대통령이 검찰에 출두한다는 게, 나라 꼴이 참…"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1시 연세대 학생식당에서 만난 미국인 니콜라스 헬렌타리스씨는 "'넘버원 정치인(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준법의 의무가 있고, 법을 어겼으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서 "노 전 대통령이 기업가에게 불법적인 돈을 받은 의혹에 대해 검찰이 수사를 하는 것은 민주적인 절차일 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주화 이후 시민의식은 성장했는데도 정치는 구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한국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바른사회시민회의 박효종 공동대표는 "사회 전반은 투명성이 높아지는 쪽으로 나아가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그 흐름에 역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회 전반의 투명성이 높아졌다는 것을 고려하면 (다른 전직 대통령과 비교해서) 규모가 작다고 두둔하는 것은 궤변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전직 대통령을 구속할 것이냐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는 것과 관련, 법적 판단과 정치적 판단의 엄격한 구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일영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검찰은 오로지 법에 의한 판단만 내려야 한다"며 "이것을 갖고 정치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 대통령이나 정치권의 몫"이라고 말했다. 그는 "법적 판단과 정치적 판단을 섞어 버리면 법치가 확립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