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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웅의 지도이야기] 백두산 천지와 주변 봉우리들

화이트보스 2009. 5. 5. 19:41

최선웅의 지도이야기] 백두산 천지와 주변 봉우리들

천지 이름 1908년 명명했다고 중국이 100주년 운운하지만…
▲ 이의철이 쓴 <백두산기> 원본 일부.

우리 국민 누구나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성산(聖山)이요, 나라가 열린 조종산(祖宗山)으로 알고 있다. 또 백두산 정수리에서부터 비롯된 백두대간은 수많은 정맥과 지맥을 가르며 국토의 지형과 지세를 이루는 근간이 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백두산의 이러한 개념적 지식 외에 정확한 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다. 지도가 그렇고, 봉우리의 이름이 그렇고, 천지의 유래가 그렇다. 이는 지금까지 우리 손으로 직접 백두산을 측량하고, 조사하고, 연구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있는 자료라고는 중국의 것과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조사한 자료가 대부분이고, 최근 것이라고는 북한에서 유입된 자료가 고작이다. 지도 자료는 더욱 열악하여 지형·지세는 물론 봉우리 명칭과 위치, 높이 등이 자료마다 달라 기준을 삼는 것은 물론 진위조차 가릴 수 없다. 측량된 지도는 1926년 일본 육지측량부가 제작한 1:50,000 지형도가 있긴 하나 1935년 경도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 백두산원정대 보고서에 첨부된 1:75,000 지형도나 1943년 조선체육진흥회 등행단이 펴낸 <登行 백두산 특집>에 첨부된 지도가 세간에 알려진 정도다.


백두산 천지를 둘러싼 외륜봉은 2,500m 이상 되는 봉우리가 40여 개이고, 그 가운데 2,600m 이상 되는 봉우리가 16개라고 알려져 있지만, 봉우리 수는 물론 그 명칭, 높이, 위치 등도 제각각이다. 백두산 봉우리와 천지에 관한 옛 자료로는 1677년(강희 16년) 청나라 궁정내대신 무목눌(武木訥)이 백두산을 답사하고 ‘산정에 못이 있고, 주위에 다섯 봉우리가 있다’고 밝힌 바 있고, 1764년(영조 40년) 백두산을 오른 박종(朴琮)은 그가 쓴 <백두산유록(白頭山遊錄)>에서 “대개 석봉들이 사면에 늘어섰는데 그 수가 큰 것은 십육칠 개고, 그보다 작은 것은 서른 개이며, 아주 작은 것은 육십 개나 된다”고 봉우리 수를 밝히고 있다.


청조 지방관 유건봉이 지었다는 이름들


1903년(광무 7년) 김노규(金魯奎)가 쓴 <북여요선(北輿要選)>에는 중국의 자료를 인용한 듯한 백두산의 봉우리 명칭이 나오는데 “백산(白山)이 우뚝하여 대동의 교악(喬嶽)을 삼으니 정북에 백암(白巖)이 솟았고, 그 남쪽 오리쯤에 병사암(兵使巖)이 있으며, 그 남쪽 십여 리에 도범이측지(桃凡伊側只), 그 서쪽으로 돌아 수십 리에 마천우(摩天隅), 북으로 수십 리에 작은 안부가가 있고, 다시 동북으로 수십 리 돌면 층암(層巖)이 높이 솟아 백암과 맞서고 있으며, 그 가운데 주위가 백여 리에 이르는 대택(大澤)이 있어 마치 종소리처럼 북쪽으로 넘쳐흐르는 천상수(天上水)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자료를 지금의 지도와 비교해보면 백암은 천문봉이고, 병사암은 장군봉, 도범이측지는 제비봉, 층암은 녹명봉과 일치한다. 이 다섯 봉우리의 명칭은 90년대 말까지 일부 중학교 사회과부도에 줄곧 인용되기도 했다.


▲ 이 백두산 지도는 북한의 <백두산지도첩>을 바탕으로 제작한 것으로, 봉우리 명칭·높이·위치는 북한의 자료와 중국의 자료를 참조하여 편집하였으나 북한의 자료를 우선하였다.

최근 지칭되는 백두산 16봉은 1908년(광서34년) 청조 지방관이었던 유건봉(劉建封)이 여러 차례 백두산을 조사하고 <장백산강강지략(長白山江崗志略)>을 썼는데, 봉우리의 형상을 살펴 큰 것 6개는 백운(白雲)·관면(冠冕)·백두(白頭)·삼기(三寄)·천활(天豁)·지반(芝盤)이고, 작은 것 10개는 옥주(玉柱)·제운(梯雲)·와호(臥虎)·고준(孤    )·자하(紫霞)·화개(華蓋)·철벽(鐵壁)·용문(龍門)·관일(觀日)·금병(錦屛)이라 이름 지었다. 또 많은 봉우리에 둘러싸인 못은 천지라 이름 지었다 하여 중국에서는 백두산 봉우리와 천지의 이름은 유건봉이 지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최남선(崔南善)이 <백두산근참기>에서 밝혔듯 ‘천지’는 언제 누가 지었는지 모르나 조선시대 백두산을 올랐던 선비들의 글에 여러 군데 등장한다. 1751년(영조 27년) 백두산을 오른 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의철(李宜哲)이 쓴 <백두산기>에 “이 산의 형체는 두루뭉술한데 오직 한 곳에 돌산이 솟아 그 꼭대기가 터져 열려 사방에 일곱 봉우리가 에워싼 가운데 큰 못이 있으니 이것이 소위 천지다(蓋比山體團圓特一單獨石山而上頭    開七峰環立四邊中藏大澤卽所謂天池也)”라고 기록하고 있고, 조선 후기 실학자 성해응(成海應)이 엮은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에 실린 ‘백두산기’에도 “두만과 토문은 실지 같은 것인데 사람이 보고 경계를 갈랐으니 천지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른다(豆滿土門實一也 而人見分界 亦自天池發源而東流)” 하여 중국의 주장이 터무니없음이 드러났다.


1930년 백두산을 오른 안재홍(安在鴻)의 <백두산등척기>에는 병사봉·천왕봉(망천후)·한봉(일본인들은 서출봉이라 함)·차일봉(후죽봉)·비류봉(적벽산) 등이 나오는데, 천왕봉과 한봉은 이제껏 처음 등장하는 이름이다. 천지에 대해서는 “천지는 명칭이 많아 향토인은 천상수(天上水)라 하고 대택회택(大澤   澤)이 또 다른 이름이요, 중국인은 용왕담(龍王潭), 만주어로는 달문지(    門池)라 하였음이 모두 그 이칭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통일한국과 국민교육 위한 백두산 표준자료 시급


1943년 <登行>에 첨부된 백두산정천지략도(白頭山頂天池略圖)에는 대정봉(大正峰)·망천후·비류봉·백암산·차일봉·층암산·마천우 등의 봉우리 이름이 보이며, 북한이 1980년대 실시한 백두산 종합탐험의 결과로 제작한 지도에는 북한측에 장군봉·망천후(향도봉)·쌍무지개봉·해발봉·단결봉·제비봉이 있고, 중국측에 천문봉·차일봉·녹명봉·백운봉·청석봉이 있으며, 북한과 중국의 경계상에는 낙원봉이 표기되어 있다. 이 가운데 향도봉·단결봉·낙원봉은 북한의 체제를 내세우기 위해 근자에 붙인 이름인 듯하다.


중국 정부는 2005년 8월 백두산 관할권을 옌볜조선자치주로부터 분리해 지린성 산하 장백산보호·개발관리위원회 직할로 변경하면서 조선족과 백두산을 떼어 놓더니 2008년 7월 초에는 지린성 장백산관리위원회와 장백산문화위원회에서 유건봉의 백두산 답사 10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세미나를 개최하고, 유건봉이 조사하고 다녔 던 길을 쫓아 답사까지 하는 등 유건봉의 행적을 추켜세우고 있다. 최근 백두산 등산로도 북파·서파 외에 북한과 국경을 이루는 코스인 남파까지 개방하여 백두산을 중국의 장백산으로 만들기 위한 소위 ‘장백산 공정’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2004년부터 대구과학대학이 백두산·두만강·압록강 일원에서 측량탐사를 추진하고 있으나 백두산에서의 GPS기기 사용 여부나 중국의 견제, 북한의 태도변화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렇듯 백두산은 우리 관할권 밖에 있어 손을 쓸 여지가 없지만, 미래 통일한국과 국민교육을 위해서라면 백두산에 관한 지명과 유래 등을 조사 분석한 백두산 표준 자료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참고로 함께 실은 백두산 상세도는 북한에서 출간한 백두산지도첩을 바탕으로 편집·제작한 것으로, 봉우리 명칭·높이·위치 등은 북한의 자료와 중국의 자료를 참조하여 편집하였으나 북한의 자료를 우선하였다.


/ 글 최선웅 한국산악회 부회장·매핑코리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