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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울릉도

화이트보스 2009. 5. 16. 10:37

 

울릉도

 




출행길의 동쪽바다는 약간 흐렸습니다. 너무 어둡지도 너무 밝지도 않은 정오의 파도를 헤치며 배가 뭍으로부터 멀어져갈 때, 나는 문득 진저리치는 어떤 짐승의 제 속으로만 받아안는 숨소리를 들은 듯합니다. 그것은 내밀한 물살을 갈기처럼 치켜올린 동해의 숨소리인 것도 같고 납작하게 엎드린 채 멀리 난바다로 떠나는 한 척의 배를 가만히 응시하는 뭍의 숨소리인 것도 같습니다. 배의 앞머리에 웅크린 내 몸을 흔들어오는 숨소리들, 그 여러 빛깔의 숨소리를 가만가만 짚어가다가 나는 멀미를 하고 말았습니다. 뱃길이라면 어지간히 다녀본 터라 멀미야 하겠냐고 내심 자신하고 있었는데, 동쪽 바다를 세 시간이나 헤쳐가야 만날 수 있는 울릉도는 출행길부터 나에게 예사롭지 않은 주술을 걸어오고 있는 셈. 하긴 서른이 넘도록 나는 이 땅의 여러 곳을 떠돌았으나 유독 동쪽 끝에 있는 이 섬만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에둘러가곤 했습니다. 어린날 내 고향 바다의 모래사장에 앉아 하염없이 바라보던 수평선 저 끝에 율도국처럼 떠 있을 것 같았던 섬. 그립고, 그리워서, 자꾸만 에둘러가게 되는.



바람에게 길을 묻다


도동 항구에 내립니다. 훅, 전신으로 끼쳐오는 바람. 바닷길 내내 마음의 오장육부를 드나들던 숨소리가, 징글징글하고 사무치게 뼛속을 밝히던 숨소리가 놀랍게도 일시에 화르륵 걷힙니다. 육지로부터 따라온 숨소리를 마술처럼 걷어내며 내 온몸에 가득 들어서는 바람. 손끝 발끝 머리카락 한 올에 이르기까지 온몸 구석구석에서 소용돌이치며 이 섬의 바람이 내 몸을 허공에 띄웁니다. 돌연 나는 인간의 말을 배우지 않은 어린아이처럼 천진해지고, 말의 문법을 버린 야인처럼 자유로워집니다.


바람 속에서, 나는 문득 중얼거립니다.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 - 항구에 발을 디디는 순간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 문득 떠올라 온 것은, 그것이 카잔차키스의 말이기 이전에 바람의 말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든 것을 상대로 자신을 던지며 사랑하고 괴로워하고 싸우는 바람. 그러면서 점점 투명해지고 점점 더 가벼워져서 저 단단한 섬대나무의 속살에까지 스며드는 바람. 스며들었다가 어는 순간 유쾌하게 폭발하며 나무들을 가볍게 띄워 올리는 바람. 나는 그리스인이기 이전에 크레타인이다, 라고 말하는 카잔차키스의 마음을 이 섬에 와서 비로소 알 것 같습니다. 카잔차키스가 사랑했던 크레타 섬에도, 오로지 이 섬의 것이다, 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바람이 있었을 것이라고.


울릉도의 바람. 그것은 이 섬의 모든 귀퉁이로부터 자신의 길을 엽니다. 그 바람은 오각형의 단단한 별을 닮은 이 섬이 처음 빚어질 때, 그러니까 한 이천오백만년 전쯤 신생대의 어느 시기에 바닷속에만 갇혀 있기가 지루해진 바람족(族)들이 한바탕 축제를 벌이듯 와글거리며 바닷속 깊은 곳으로부터 화산을 터뜨려올렸을 그때부터 한번도 이 섬을 떠나지 않은 듯한 바람입니다. 그것은 아름답게 늙어가고 있는 바람이며 늙으면서 날마다 젊어지는 바람입니다.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으로 바닷속으로부터 솟구쳐 오른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쓰다듬고 들여다보며 환희에 젖는 아름다운 관능의 바람입니다. 그러니 먼 훗날, 이 섬이 당신을 불러 무연히 이곳에 발딛게 되었을 때, 지도나 관광안내판 앞에서 서성거리지는 마십시오. 다만 온몸의 구멍들을 활짝 열어놓고 바람에게 길을 물으세요. 마음이 갈피를 잃고 부대끼는 가슴뼈 깊숙한 곳으로부터 귓불의 미세한 솜털들까지 바람 속에 나부끼게 그저 놓아두십시오. 다만 그렇게 바람이 이끄는 대로 걸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당신은 저동항에 있을 것이고 내수전 밤바다에, 천부와 황토구미에, 나리분지와 성인봉 꼭대기에 있게 될 것입니다.



정주(定住)한, 그리하여 아름다운 유목의 풍경


저동항에 숙소를 잡았습니다. 주로 여객선이 들고나는 도동항 근처가 이 섬의 행정 중심지인데 비해 저동항은 고깃배들이 들고나는 어항입니다. 이 섬을 통틀어 가장 번화한 도동이 관광객들로 붐비는데 비해 저동은 이 섬의 붙박이 주민들의 생활의 냄새가 짙은 곳입니다. 숙소를 잡아놓고 항구로 나오니 오징어잡이배가 빼곡하게 들어찬 흥성거리는 부둣가에서 사람들이 고등어를 낚고 있습니다. 더러 낚싯대를 드리우기도 했지만 낚싯대 없이 줄만 드리우고 고등어를 낚아올리기도 합니다.고등어라니!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배낚시를 나가 고등어를 낚기도 한다는 말은 들었어도 부두에 옹기종기 앉아 고등어를 낚는 모습은 난생 처음입니다. 부두 아래를 내려다보니 찰방이는 맑은 바닷물 속에서 물고기 그림자가 날렵하게 어른거리는 게 보입니다. 세상에, 그렇지! 여기는 동해 한가운데지! 내가 하도 신기해하니까 이 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스물아홉 살의 청년이 선량하고 천진한 웃음을 함빡 머금으며 덧붙입니다. “작년엔 이 무렵에 방어떼가 왔었어요.”


작년엔 방어떼가 왔다. 그리고 올해는 고등어떼가 왔다…. 이 말은 어떤 알싸한 그리움 같은 것을 건드리는 것이어서 나는 속말로 자꾸만 중얼거려 봅니다. 그들이 왔다…. 무엇이 그들을 부른 것일까. 꽃내음 뿐만 아니라 잘디잔 잎사귀와 줄기에서까지 몸 전체로 향기를 뿜어내는 섬백리향의 향내가 그들을 불렀을까. 그렁그렁해진 외로움 때문에? 그들이 왔다…. 누가 그들을 보냈을까. 예전에 내 어머니는, 그리고 내 할머니는 곧잘 이런 말씀을 하시곤 했었습니다. 웃밭 둔덕에 나생이를 가득 보내셨더라. 산탈에 꾀꼬리버섯을 지천으로 보내셨더라. 그런 말들은 이를테면 첫눈이 오셨다, 비님이 오신다, 라는 말들처럼 인간이 깃들어 사는 자연에 대한 지극한 공경이 자연스레 묻어나는 말들이었지요. 어릴 적엔 그 말의 뉘앙스가 그토록 소중한 것인지를 잘 알지 못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자연에 깃들어 있을 때 아름다웠던 사람살이가 스스로의 방종으로 인하여 파국을 향해가는 세태 속에서 이 말들은 내게 간절한 그리움을 동반하게 하였습니다. 내년엔 또 무엇이 올까요. 우리가 미처 셈할 수 없는 어떤 섭리가 무엇인가를 이 섬에 보낼 것입니다. 어머니 자연이 우리에게 보내는 것들을 감사하고 공경할 줄 아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한에서 말이지요.


흔히들 섬을 일컬을 때 고립과 고독을 먼저 떠올리곤 합니다. 나는 이 섬에서 지극히 고독해진 땅의 지극한 풍요로움을 만납니다. 나는 떠돌면서 유목을 꿈꾸는 자이지만 이 섬의 사람들은 동해의 고도에 정주해 있으면서 이미 아름다운 유목민들입니다. 철따라 다른 이름의 바다 생물들이 찾아들고 울릉국화 울릉양지꽃 섬노루귀 섬현호색 섬백리향 섬바디 섬말나리 꽃이 철 따라 피어납니다. 울릉도 말고는 다른 어느 곳에도 없는 자생식물이 마흔일곱가지나 된다는군요. 봄이면 명이나물 취나물 참나물 등 온갖 산나물과 약초들이 지천인 산에는 향나무 솔송나무 너도밤나무 섬개야광나무 섬잣나무 동백나무 섬댕강나무들이 철 따라 다른 빛깔의 수액을 뿜어올릴 터. 시시각각 변하는 산빛과 바다빛과 하늘빛과 바람의 빛깔을 이윽히 바라보아만 주기에도 유목의 나날은 흥성스러울 듯 합니다.







항아와 놀다


나리분지를 지납니다. 이 섬이 저 깊은 바다 밑으로부터 자신을 터뜨려 올렸을 때 폭발한 화산의 꼭지점이 있던 자리. 이른바 칼데라 화구인 나리분지는 깊은 경사를 지닌 이 섬의 유일한 평지입니다. 이곳을 지나면서 나는 우리가 흔히 아기냄새라고 부르는, 어린 젖먹이에게서 나는 냄새를 바람 속에서 맡습니다. 글쎄요. 향긋하면서도 비릿한, 비릿하지만 축축하지는 않은 냄새의 질감은 기억할 수 없는 어떤 향수를 자아냅니다. 그 냄새의 근원이 나리동 어딘가에 자생한다는 섬백리향 군락이나 울릉국화 군락이 간직한 냄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너와집과 투막집의 앞섶으로 아득하게 펼쳐진 달맞이꽃들의 향기인지도. 시들어가고 있는 섬말나리꽃은 꽃진 자리에 작고 단단한 머루알 같은 씨앗을 촘촘히 매달고 있습니다. 혹, 그 씨앗들이 풍기는 향기? 낱낱이 하나의 별인 그 씨앗들의?


아득한 옛날 분화구였던 이곳을 지나면서 아마도 나리분지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달밤일 거라고 나는 막연히 생각합니다. 신생대 어느 시기에 분화구였던 이곳과 보름에 가까워진 달의 어느 분화구가 막 조우했을 때, 달에서 지구를 그리워하며 지구에서의 환생을 꿈꾸던 어느 달생물이 그 소망의 간절함으로 빚어낸 식물이 백리향이 아니었을까. 우주를 가로질러 오기에 언어는 너무 무겁고 날카로워서, 그 마음 그대로를 다만 향기로 실어보낸 것이 백 리를 넘어 퍼진다는 향이 아니었을까. 혹은, 이 분지에 여전히 배어 있는 달큰하면서도 조금은 쓸쓸한 듯한 이 아련한 냄새가 아니었을까.


냄새의 흔적 속에 아득해지는 나의 몽상은 달의 여신인 항아(姮娥 : 중국 고대 신화에 나오는 달의 신으로 상아·상희라고도 한다-편집자 주)를 너와집 마당으로 불러 내립니다. 항아의 옷자락이 쓸고 지나간 자리에 펼쳐진 달맞이꽃밭을 날이 새도록 춤추며 거닙니다. 새벽이 오고, 항아는 달궁으로 돌아가고, 나는 너와집으로 들어와 새벽 단잠을 청합니다. 달빛에 끌어당겨진 바닷물이 조금씩 놓여나며 철벙이는 소리, 후박나무에 깃들어 단잠을 잔 흑비둘기들이 모이를 찾아 나서는 소리, 성인봉 꼭대기에서 봉우리를 품어주었던 바람이 새벽기침을 하며 능선을 내려오는 소리를 꿈결로 들으면서…. 넉넉한 투막집 안은 여름에는 선선하고 겨울에는 따스할 터. 통나무를 엇걸어 쌓아올린 우물 정(井)자의 벽에 흙을 바르고 지붕에는 적송 널판으로 너와를 잇고 처마에 맞춤하여 새를 엮은 울타리인 우데기를 두른 너와집 속은 자연의 질료들이 그 각각의 가장 자연스러운 맥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시쳇말로 하자면 이중으로 단열처리를 한 셈이니 눈이 많은 이 섬의 한겨울에 지붕까지 흰눈이 차올라와도 항아를 맞아 노닐기에는 충분히 따스할 것만 같습니다.



시원(始源)의 숲


나리분지를 지나 나는 어느새 성인봉을 오릅니다. 성인봉은 해발 984미터의 봉우리이니 그 아래 종종 구름평야를 거느리는 높은 곳인데, 이상하게도 나는 봉우리에 가까이 오를수록 층층이 깊은 심연으로 내려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내가 여지껏 보아온 중 가장 아름다운 나무들을 원없이 만납니다. 저마다 성정과 피부빛과 느낌이 다른 그 아름드리 나무들을 일일이 쓰다듬고 인사해 주기에도 한 생이 모자랄 것 같습니다. 이 원시림 속에서 내 호흡은 시간여행을 시작합니다. 머위와 섬고사리와 맥문동과 고비, 일 미터가 족히 되는 관중 등속이 짙푸르게 자라있는 나무 밑둥으로 입자가 만져질 것 같은 농밀한 안개가 피어오르고 솨아솨아― 물결치는 소리를 내며 나무들이 흔들립니다. 붉은 마가목열매가 오리나무 가지 사이를 맵시나게 통과하면서 공작고사리 잎사귀 위에 사그락-탁, 소리를 내며 떨어집니다.

 

울창한 나무 그늘로 인해 숲은 적당히 어둑신하고 습윤한 질감의 수액냄새가 바람에 이리저리 쓸립니다. 잠깐 한눈을 팔면 저만치에서 알을 품고 있던 원시의 날짐승이 날아오를 것도 같습니다. 이곳은 산인데, 그것도 험한 비탈을 가진 봉우리인데, 오를수록 내려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해집니다. 나는 물밑으로 내려가고 봉우리는 내가 내려가고 있는 물밑보다 더 깊은 심연으로부터 서서히 올라오고 있다는 느낌. 그리하여 현실의 성인봉은 그 하강과 상승의 힘이 딱 만나는 지점에서 돌연 위치감을 상실하고 하나의 둥근, 혹은 평평한 숲을 ―시원의 숲을 이루고 있는 듯 합니다. 그 느낌은 아득한 현기증을 동반하면서 또 한 번 나를 멀미나게 하였습니다.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흙의 질감이 촉촉해지고, 아름드리 나무들이 무정형으로 얽히며 드러낸 뿌리의 감촉이 발바닥으로 전해져 올 때, 나는 그것이 물너울인양 몇 번이나 놀랐습니다. 나는 심호흡을 합니다. 이 섬이 내게 선물하는 비밀들은 도무지 끝이 없을 것 같습니다. 더 있으면 안되겠구나. 더 있으면 돌아가지 못하겠구나. 내 마음이 한 백년쯤 이곳에서 살고싶어 하겠구나.



다시, 바람에게 길을 묻다


문명과 개발의 욕망이 아직은 그 얼굴을 다 드러내지는 않은 울릉도는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은 섬입니다. 그러나 나는 두렵습니다. 자본의 무지막지한 힘이 저 고적한 나리분지를 그대로 두지 않을 것 같아 두렵고, 성인봉이 간직한 원시의 신성을 훼손해 버릴까봐 두렵습니다. 벌써 외지인들이 드나드는 번화한 항구 쪽에는 자연의 섭리에 대한 공경을 잃은, 먹고 마시고 소비하는 일에 길들여진 육지의 인간들이 남긴 쓰레기들이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몇 천 톤의 배가 정박할 수 있는 부두가 만들어진다는 소문, 골프장과 스키장이 만들어진다는 소문, 이런 소문들이 두렵습니다. 벌써 이 섬의 자생식물인 섬개야광나무는 울울한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으며 섬백리향 군락지에는 자생하는 백리향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이어도’라고 하는, 이 섬의 훼손되지 않은 자연의 비경을 보고자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옵니다. 그들이 이곳에서 얻어가야 할 가장 그윽한 것은, 자연의 섭리를 섬기고 그 섬김의 힘으로 스스로 평화로움을 얻는 공경의 마음일 것입니다. 훗날 이 섬이 당신을 부르거든, 온몸으로 파도에 흔들리며 뱃길이 자주 묶이는 작은 배를 타십시오. 그렇게 어렵게, 귀하고 낮은 마음으로 발 디뎌야 하는 ‘섬김’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만, 바람에게 길을 물으십시오.












울릉도가 2천~5천만년 전쯤 화산 폭발에 의해 이루어진 섬이라는 것, 그런 섬들은 대부분 기암괴석이 있기 마련이고 그것들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이 보통은 아니라는 것 등등을 확인해 보기에 딱 좋은 곳이다. 우변도로보다 주로 좌변도로 쪽에 사람들이 많이 몰렸는데 아마 더 볼게 많아서겠다.

 

파도가 발밑 바로 밑으로 들이닥치고 울릉도에서만 볼 수 있다는 흙비둘기가 바위에 붙어 자는 것을 보면서 꼬불탕 몇 길을 돌다보면 어느새 삼면이 병풍바위로 둘러쳐진 분위기 좋은 해변 카페에 도착한다. 맥주 음료수만 시키고 여유작작을 부려도 눈총 안 준다.


울릉도 여행은 바다와 그 주변의 비교적 편한 코스로만 집중되어 있어 보였다. 우리가 오르던 알봉에서 성인봉까지 1시간여 오르는 동안 내려오는 등산객을 본 게 세 팀 정도였기 때문. 하지만 여행 일정이 빡빡하더라도 성인봉 등반은 꼭 넣길 바란다. 알봉에서부터 왕복 3시간만 들이면 충분하다. 다녀오면 왜 그러는지 꼭 알게 된다. 한 가지 더, 등산로 주변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오르내리길 권한다. 아니 그렇게 된다.


알봉에서 1시간 여, 드디어 성인봉 정상에 오르다. 웬걸, 구름에 막혀 주변 10미터 정도밖에 보이지 않았다. 괜히 올라왔나 하는데, 일순 바람이 불며 흩날리는 구름, 잠시 후 동행한 이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와, 하는 탄성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구름과 바람과 산의 연봉들과 그 밑의 동쪽 끝 섬 주변이 함께 빚어내는 몰아의 광경에 동행한 어떤 이는 “언어가 무슨 필요 있겠냐”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천변만화의 풍경”이라 했다.


공암과 송곳산은 울릉도를 상징하는 곳 중의 하나로서 사진으로도 많이 찍히는 곳이다. 하지만 이곳 사진은 대부분 낮에 배를 타거나 하여 여기 보이는 장면의 반대쪽에서 바라보고 찍고들 한다. 왼쪽의 뾰족한 송곳산이 오른쪽에 보이게 말이다. 그런 사진들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에게 그 반대편 서쪽에서 잡아보는 광경도 괜찮으니 한 번 맞춰보라고 권하고 싶다. 일몰쯤에 도착했는데 적당한 구름 등 날씨까지 맞춤하게 도와준다면 이런 장면 볼 수 있겠다.


밤바다의 소리와 빛과 바람, 그리고 그 속에서 좋은 사람들과 나누는 작은 술잔을 귀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라면 잊지 못할 곳이 될 것이다. 짙푸른 밤바다, 수평선 근처서 오징어잡이배가 내는 가뭇가뭇 작은 불빛, 몸으론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불어오는 가장 동쪽 끝 바람들, 파도들, 소리들…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취해보기 딱 좋은 곳. 저동항에서 차로도, 천천히 걸어도 20~30분이면 닿는다.



울릉도 아낙들 얼굴에서 한 가지 특징을 찾으면 피부가 곱고 탱탱하다는 것이다. 어디서 만나든 탱글탱글 피부에 잘 웃는 여인들, 예순 넘은 할머니들에게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울릉도, 뱀 도둑 공해가 없고 물 돌 바람 향나무 그리고 미인이 많다는 3무 5다의 섬 아닌가? 오염되지 않은 물 돌 바람, 향그런 나무들 속에서 건강한 노동을 하며 안분(安分)하는 삶이 그 비결이겠지?


울릉도에서 섬잣나무, 섬개야광나무, 섬댕강나무, 섬초롱꽃 등등 식물 이름 앞에 ‘섬’ 자가 붙은 것은 울릉도에서만 나고 자라는 것들이다. 이 섬백리향도 마찬가지. 겉보기엔 풀 같지만 식물도감을 찾아보니 반상록성 나무(관목)라 한다. 나리분지 자생지에 가봤지만 멸종돼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찾기 힘들었다. 아무튼 이 녀석, 그 이름답게 냄새 한 번 잘 풍긴다. 사알살, 손끝으로 어루만져 주면 그 향 정말 ‘백 리’ 넘어도 갈만하다. 도동항 여기저기 작은 화분에 담아 파는 백리향 뭍으로 데려 나와, 울릉도 그리워질 때마다 살짝, 그 향 맡으면 좋겠다.






울릉도에서 잡히는 홍합은 보통의 홍합보다 잡기도 어렵고 크기도 훨씬 크고 맛도 담백하다고 한다. 홍합과 해물, 야채를 넣어 지은 밥으로 울릉도에서만 먹을 수 있는 별미다. (상록식당, 054-791-1052)


울릉 약소는 청정지역 울릉도의 다양한 약초와 물을 맘껏 먹고 자란 울릉도산 소를 말한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육질과 담백한 맛, 높은 영양가 등이 육지 쇠고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암소 한 마리 식당, 054-791-4898)


오징어 외의 울릉도 특산 먹거리로는 대부분 호박엿을 떠올릴 것이다. 생각과는 달리 울릉도 호박엿은 서면 남서리에 있는 울릉농협 직영 공장에서 위생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대규모로 제조되고 있었다. 달지 않아 많이 먹어도 질리지 않았고 사탕처럼 먹기 쉽도록 개별 포장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특이한 것은 만들어 오래된 엿일수록 호박 본래의 맛과 향이 강해진다는 점이었다. 이 공장 홍보담당자는 “오래 뒀다 먹는 게 더 맛이 좋다”며 한 봉지씩 선물로 주기도 했다. 잼이나 조청 등으로 하여 판매도 한다.(구입 문의:울릉농협 서울배송센터, 031-766-3335~7)




포항과 묵호(동해)에서 쾌속선을 이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포항(왕복 98000원)에서는 3시간, 묵호(왕복 68000원)에서는 2시간 50분 걸린다. 포항에선 매일 오전 10시, 묵호에선 매일 11시에 뜨지만 바다 사정에 따라 바뀌는 날이 있어 가기 전 확인해야 한다. [02-514-6766(대아여행사), 054-242-5111~3(포항), 033-531-5891(묵호), 054-791-0801~3(울릉도)]. 울릉도엔 도동항이나 저동항 등지에 호텔 여관 민박 등이 많아 성수기 외엔 쉽게 방을 잡을 수 있다. 울릉도 여행에 관한 이외 문의는 앞에서 소개한 울릉군 홈페이지 www.ullung.kyongbuk.kr,울릉도닷컴 www.ullungdo.com 등을 이용하면 쉽게 얻을 수 있다.)

 

 

 

 

출처 : hgmja
글쓴이 : 나그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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