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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격변을 맞은 한·일 경제후카가와 유키코(深川由起子)·와세다대학 정치

화이트보스 2009. 5. 18. 11:19

대격변을 맞은 한·일 경제

  • 후카가와 유키코(深川由起子)·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부 교수

 

입력 : 2009.05.15 23:15

후카가와 유키코(深川由起子)·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부 교수

주요국들이 정책을 총동원하면서 세계경제는 금융위기의 쓰나미로부터 조금은 되살아나고 있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쓰나미가 올지, 온다면 언제, 어떻게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쓰나미란 것이 지형(地形) 자체를 바꿔 버린다는 경험칙 정도이다.

쓰나미 이후의 지형 대격변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전통적인 한일 경제관계는 이미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을 맞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선 일본은 이미 한국 앞을 가로막고선 경제 대국이 아니며, 두 번째로는 일본이 기술로 동아시아를 리드하는 '안항형(雁行形·기러기가 무리지어 나는 형태로, 지역 내 한 나라가 앞서가고 다음 나라가 순차적으로 따라 발전하는 구조)' 경제구조는 끝났고, 마지막으로 FTA가 없더라도 한일 양국 시장은 이미 통합되어가고 있다는 3가지의 현실이 그 근거다.

우선 한국과 일본의 정치가와 관료, 그리고 언론도 일본이란 나라에 아직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이란 수식어를 붙이고 있다. 하지만 EU가 경제통합을 이룬 시점에서 실제 일본의 경제규모는 이미 3위가 됐다.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 보면 수년 전에 이미 중국에 뒤처졌고, 명목 기준 경제규모에서 뒤떨어지는 것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1인당 국민소득으로 중국과 인도에 추월당하는 것은 먼 미래의 일일지도 모르지만, 다극(多極)화하는 세계 경제에서 그중 한 극(極)을 유지하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일본은 비극(非極) 국가가 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경우 일본과 한국과의 경제 관계는 말 그대로 수평화할 것이다.

한편 산업·기업의 차원에서 보면, 이미 국가 단위로 '비교우위'를 말하는 것도 무의미해지고 있다. 많은 사람은 아직 일본의 기술력이 동아시아에서 최고이고, 여기 한국과 대만·중국이 따라간다는 '안항형' 경제관을 가지고 있다. 기술을 자산(스톡)으로 생각하면 아직 그런 면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는 자금과 기술은 물론, 전문 인재마저도 자유롭게 국경을 넘는 시대다. 이들을 잘 모아주면 나라 전체와는 별 관계없이, 일정 지역이 단시간에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국가'라는 단위와는 관계없이, 이웃한 한·일 시장의 통합은 급격히 진전되고 있다. 일본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뿌려댄 정액급부금의 어느 정도는 지난 연휴에 일본인들의 한국여행을 통해 국경을 넘어갔을 것이다. 한국이 변동환율제도를 택한 이후, 한국의 중소기업을 언제나 고민하게 한 것은 너무나 급격한 엔화 환율의 변화와, 일본형 소비자 금융을 둘러싼 혼란이었다. 한국의 대일관세 몇%를 훨씬 넘어서는 차원에서 여러 가지 통합이 진전된 것이다.

이런 세 가지 현실은 무엇을 시사하는 것일까. 다극화하는 국제사회에서는 국제금융질서의 형성이건, 환경과 신기술의 표준이건 하나의 극(極)이 되지 못한 '비극' 국가의 입장이 약하기 마련이다. EU 각국은 통합으로 이것을 극복했지만, 일본에는 아직 통합전략이 없다. 한국은 FTA 등 세계의 경제 '허브'가 된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지만, 특정한 경제권의 뒷받침이 없는 '허브'가 이번 금융위기와 같은 경제적 쓰나미에 극단적으로 약한 것은 이미 입증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두 나라의 효과적인 경제통합은 '비극' 국가로서 중요하고 시급한 전략과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한국이 몇 십년이 지나도록 대일 무역적자를 문제시하는 것은 '안항형' 경제관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국의 경제논의는 아직도 '국가'의 비교우위론이 지배적이고, 이에 따라 정부는 일본으로부터의 수입대체효과가 있는 투자유치를 호소한다.

하지만 산업집적(集積)이 세계경제의 주류가 된다면 한·일 경제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검역 등 무역절차를 포함해 폭넓게 물류를 개선하고, 환경·에너지절감 등을 통해 국경을 넘는 집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의료, 농업 등의 규제개혁에 두 나라가 방향을 맞추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시장의 현실을 무시한 FTA를 제도화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그보다는 오히려 현재 일어나는 역동적인 시장변화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형태로 제도를 만들어 나가면서 두 나라의 시장이 '1극'을 만들 수 있도록 전략적 분야에서 발을 맞춰 나가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쓰나미 후의 세계를 향한 준비는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