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이야기/장군이 된 이등병

제2話 장군이 된 이등병<230> 사납고 거친 한국 고아들-125-

화이트보스 2009. 5. 20. 17:20
제2話 장군이 된 이등병<230> 사납고 거친 한국 고아들-125-

나는 주월사 인사참모 첫 임무로 주월군 행동 강령을 만들었다. 각 부대장의 조언을 받아 만든 3훈 5계가 그것이다. 3훈은 ① 우리는 적에게 용감하고 무서운 한국군이 되자 ② 우리는 월남인에게 예의 바르고 친절한 따이한이 되자 ③ 우리는 우방군에 군기 엄정하고 신의 있는 코리안이 되자는 것이다. 5계는 ① 경계 태만 ② 허위 보고 ③ 명령 불복 ④ 대민 사고 ⑤ 과욕 행위로 정했다.

이 같은 3훈 5계는 부대 조회에서 반드시 복창하도록 했다. 모든 장병은 베트남전의 전투원이지만 군사 외교관이며 민간 심리전 요원이라는 인식을 심어 줄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과욕 행위가 많이 드러나고 있었다. 아군이 한 사람이라도 죽거나 다치면 보복 행위에 들어가는데 나중에는 한국군만 보면 적들이 도망부터 갔지만 주민들의 원성은 없을 수 없었다.

이 과정에서 허위 전과 보고 실태가 상당수 적발됐다. 모 부대는 작전에 나갔다가 아군의 인명 손실이 컸으나 이를 줄이기 위해 중상의 부상병을 부대에 감추고 치료하고 있었고 적을 궤멸했다며 암시장에서 적의 총기류와 수류탄·탄피들을 구해다가 전리품으로 전시해 놓고 시체도 어디서 한두 구 끌어다가 전리품 옆에 가마니로 덮어 두었다.

이 첩보를 듣고 나는 감찰 장교를 대동하고 부대를 급습,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후송이 안된 부상병을 야전병원으로 이송했다. 깁스를 한 부상병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니 자칫 장애인이 될 수 있고 부대 사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불만이 많은 것도 당연하다. 해당 지휘관을 엄정 문책하자 이런 사례는 하나 둘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이건영(육사7기·군사령관·전 마사회장·중장 예편) 주월사 부사령관을 수행하고 대민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사이공의 한 고아원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인사참모의 역할은 인사와 인력 관리, 상벌과 복지, 군기·군법, VIP 접대와 의전 행사, 휴가·외출·외박·휴식과 부대 위문 공연, 외국인(주로 베트남인)과의 결혼 통제 등 많았지만 이처럼 대민 지원 사업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고아원에는 흑백 미국 혼혈아, 태국·호주·필리핀·대만·베트남 아이 등 150여 명(젖먹이에서 6세 사이)이 수용돼 있었는데 우리를 맞은 베트남인 고아원 원장이 이색적인 질문을 했다.

“여기 고아가 150여 명 모여 있는데 우리는 한눈에 한국 고아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부사령관님이나 참모님들이 한국 고아를 찾아낼 수 있습니까.”

그래서 찾았으나 모두 실패했다. 미국·호주의 고아는 쉽게 식별할 수 있지만 한국 고아를 비롯, 태국·필리핀·대만의 고아는 모두 베트남인처럼 생겨 식별해 내기가 어려웠다. 그러자 원장이 말했다.

“여기에는 8개국의 고아들이 섞여 있습니다. 아이들은 나라마다 모두 특징이 있죠. 한국 고아의 특징은 가장 크게 운다는 점입니다. 배가 고프면 건물이 떠나가게 울죠. 두 번째는 싸움을 제일 잘한다는 것이죠. 거칠고 사납습니다. 덩치 큰 미국 고아도 꼼짝 못해요. 그리고 한국 고아는 가장 많이 먹습니다. 식탐이 많아 남의 것을 빼앗아 먹고 자기 것은 맨 나중에 먹습니다. 남의 것을 빼앗으려다 실패하면 그 아이를 사정없이 두들겨 팹니다.”

나는 속으로 공감하는 바가 있었다. 근성이 있고 억척스럽고 거친 기질이 바로 주월 한국군의 모습 바로 그대로인 것이다. 고아의 대부분은 파월 기술자들이 만들어 낸 불행한 씨앗들이고 그래서 거친 세파를 헤쳐 나가려면 일찍부터 이처럼 자생력을 키우려는 것이거니 여겼다.

나는 얼마 전 이들 라이따이한이 성년이 돼서 아버지를 찾는 TV 프로그램을 보고 가슴이 미어진 적이 있다. 베트남 적화 이후 이들은 자기 책임이 아닌 데도 한국인 혼혈이라는 이유로 고생하면서 성장했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찾는구나 해서 가슴이 메었다.

1969년 가을 어느 날, 미군 사령부에서 갑자기 우리 군의 PX를 감찰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PX 용품은 99%가 미국 제품이고 전투 식량은 전량 미군이 지원하는 것인데 덩치 큰 자기네 병사보다 한국군이 배 이상, 어떤 부대는 세 배 이상 먹는다니 그게 이상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이계홍 용인대 겸임교수·인물전문기자〉

2004.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