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재발견/겨례의 지도자

아버지의 용인술?…박근혜 측근관리 스타일

화이트보스 2009. 5. 21. 15:07

아버지의 용인술?…박근혜 측근관리 스타일



■ ‘김무성 NO-최경환 YES’로 본 측근관리 스타일

“박근혜는 2인자를 두지않는다. 어느 한쪽에 힘 몰아주는 일 없이 내부를 경쟁시킨다”

신뢰를 제1원칙으로 맡은 역할 명확하게
측근들 ‘의 관리’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 직후인 2007년 8월 말, 당내 화합과 대선 승리를 다짐하기 위해 지리산에서 여는 국회의원·당원협의회위원장 워크숍을 앞두고 있을 즈음이었다.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일하던 의원들은 워크숍에 참석할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박 전 대표가 깨끗이 경선에 승복하겠다고 선언한 뒤였지만 이명박 후보 캠프와의 격한 감정이 채 식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의원들은 동료 의원에게 전화를 돌리며 눈치를 살폈다. 결국 대부분의 의원은 워크숍에 가지 않았다.

이후 박 전 대표와 경선 캠프 멤버들의 식사 모임에서 이 워크숍 얘기가 거론됐다. 한 의원은 “(당에서)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했지만 안 갔다”고 말했고, 다른 의원은 “내가 연락해서 다들 안 가도록 했다”고 말하는 등 공치사에 바빴다. 박 전 대표는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었다. 그러나 이 얘기가 계속 이어지자 박 전 대표는 “거기는 당연히 안 가는 것 아닌가요”라고 되물었다. 박 전 대표의 이 한마디에 분위기는 갑자기 싸늘해졌다고 한다.

한나라당 원내대표 경선 과정에서 박 전 대표는 ‘김무성 원내대표 카드’에는 거듭 반대의 뜻을 밝히며 무산시켰지만 ‘최경환 정책위의장 카드’는 용인했다. 박 전 대표는 최 의원에게 “기왕에 그렇게 했으면 열심히 하세요”라고 말했다고 한 측근은 전했다. 김 의원과 최 의원의 정치적 무게와 두 카드를 둘러싼 정치 상황이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도 두 친박(친박근혜)계 인사를 다루는 모습에서 박 전 대표의 용인술()이 드러났다.

측근들은 박 전 대표가 주변 사람을 인위적으로 관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섣부른 판단이나 감정표현을 자제한 채 유심히 관찰할 뿐 자신의 휘하에 묶어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박 전 대표의 측근 관리 스타일을 두고 ‘무()관리의 관리’라고도 한다. 하지만 ‘무관리의 관리’에도 확실한 원칙은 있다.

○ 신뢰는 제1의 원칙

박 전 대표는 이달 초 미국 샌프란시스코 방문길에 동행한 의원들에 대해 “좋은 분들이고, 신뢰할 분들”이라고 말했다. 의원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박 전 대표의 가장 큰 찬사는 “제가 신뢰하는 OOO”이다. 그만큼 ‘믿을 만한 사람인가’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한 측근은 “박 전 대표는 쉽게 믿음을 주지 않는 만큼 일단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는 판단을 하면 오랫동안 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한 번 신뢰가 깨진 사람에게는 절대 중요한 일을 맡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가장 가깝다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한 뼈저린 경험 때문이 아니겠냐는 얘기가 나온다.

○ 역할의 한계를 명확히

박 전 대표는 각 측근의 행동반경을 명확히 정하는 편이다. 다만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는다. 측근들은 박 전 대표의 속뜻을 헤아려 나서거나 물러선다.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판단할 경우 박 전 대표의 반응은 단호하다. 한 의원은 “뭔가에 관해 의견을 구했을 때 박 전 대표가 침묵하거나 ‘에이, 뭐 이런 것을…’이라며 에둘러 말해도 더는 얘기를 못 꺼낸다”고 말했다. 김무성 의원이 이번에 박 전 대표에게 직격탄을 맞은 것도 보스 기질이 있는 김 의원이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것처럼 비쳤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 2인자를 두지 않는다

박 전 대표에게는 ‘2인자’라는 개념이 없다. N명의 측근 각각에게 ‘N분의 1’만큼씩의 권한을 줄 뿐 ‘심복’이 없다는 것이다. 한 의원은 “박 전 대표는 누구든 ‘박 전 대표의 뜻’이라며 내세우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고 말했다. 2인자를 두지 않아 친박계 내에서는 박 전 대표의 속뜻을 누가 가장 잘 헤아리는지 경쟁과 견제가 치열하다. 이 때문에 친박계 내에선 누구는 ‘구주류’, 누구는 ‘신주류’ 하는 말도 나온다. 박 전 대표도 측근 간 상호 경쟁을 유도한다. 한 의원은 “박 전 대표 본인의 뜻이 있더라도 항상 한쪽에 힘을 몰아주는 일 없이 내부 경쟁을 하게 한다”고 말했다.

○ ‘인의 장막’ 비판도

박 전 대표가 이처럼 측근과의 관계에서도 확고한 원칙을 강조하는 데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한 의원은 “측근이라도 원칙에 어긋나는 행보를 보일 경우 차갑게 관계를 단절해 버리기 때문에 결국엔 신뢰하는 몇몇 사람들만 지근거리에 남게 되기 쉽다”고 말했다. 당내 인사들과 폭넓은 접촉을 하려는 노력에 상당히 인색하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초선 의원은 “박 전 대표와는 18대 국회 초반에 다른 초선 의원들과 함께 식사한 것 외엔 대면할 기회가 없었다”며 “의견을 듣고 싶어도 만나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말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