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이야기/빨간 마후라

<260>제3話 빨간 마후라 -10-일본도와 권총 내민 사토 구대장

화이트보스 2009. 5. 23. 15:23
<260>제3話 빨간 마후라 -10-일본도와 권총 내민 사토 구대장

1945년 8월15일 낮 12시. 일본 육군사관학교·항공사관학교의 전 장교와 사관후보생이 일왕(日王)의 육성 방송을 듣기 위해 대강당에 모였다. 당시 나는 육사 예과 1년을 마치고 항공사관학교 생도로 배속돼 있는 상태였다. 일왕의 육성을 듣기는 이번이 처음이었고 방송도 최초의 일이었다.

이미 예고됐던 내용이라 일왕의 방송이 끝나기도 전에 일부 장교들이 단상에 뛰어올라 일본도(日本刀)로 스피커의 전선을 절단하며 소동을 벌였다. 일왕의 무조건 항복에 전 장교와 생도들이 일제히 절규하듯 울부짖었다.

일부 장교들은 최후의 1인까지 일왕을 수호하며 미군과 맞써 싸우자고 궁성으로 달려갔다. 그들을 이끈 장교가 3중대 구대장인 우에하라(육사55기) 대위였다.

그는 궁성 수비사단(근위대)의 고노에 사단장을 만나 “일왕의 육성 방송은 잘못된 것이므로 취소해야 한다”며 무조건 항복을 따졌다. 근위대장이 “일왕의 발언은 취소할 수 없으며 일왕의 성명을 받들어야 한다”고 답변하자 그 자리에서 일본도를 빼들어 근위대장의 목을 치고 육사로 돌아와 자결해 버렸다.

이런 때 59기 김재곤 생도가 일왕의 항복 성명을 듣고 혈기를 참지 못한 나머지 “조선이 마침내 독립했다”며 만세를 외친 것이다. 이에 격분한 그의 소속 구대장이 총을 뽑아들어 사살한 것이다.

비록 신분은 일본 육사 생도지만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바라는 마음이 천추에 닿았고 그래서 그는 일왕의 항복 방송 자리에서 조선 독립을 외친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조선인 육사 생도들은 이런 마음을 갖고 있었으며 김재곤 생도가 그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8월23일 밤에는 나와 같은 기의 청주고보 출신 이성구 생도를 일본인 생도들이 죽이려 한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일본 군대의 비밀을 가장 많이 안다는 것이 이유였다. 평소 비밀 문서 창고를 자주 드나들었고, 그래서 이적 행위를 할 것이라는 풍문이 돌아 미리 처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조선인 육사 생도는 하나하나 타깃이 돼 가는 상황이었다. 이때 일본인 생도 오카다가 중재에 나섰다.

“조선은 전승국인데 전승국의 청년을 죽이면 그 책임을 지게 된다. 또 이성구는 그럴 만한 친구가 아니다. 내가 이성구를 만나 경위를 알아보겠다. 그런 뒤에 결정해도 늦지 않다.”

다행히 이성구는 오카다와의 면담으로 오해가 풀렸다. 그래서 개죽음은 면했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독일의 예에서처럼 육사 생도는 모두 사살된다는 풍문이 유포돼 육사는 완전 광기 상태였다. 이런 때 사토 구대장이 나를 불렀다. 구대장실로 들어서자 사토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돌아가겠느냐, 남겠느냐.”

나는 의심의 여지 없이 “조국으로 돌아갑니다”라고 말했다. 내 말에 한참 생각하던 사토가 “네가 일본에 남는다면 대학에 보내 주고 취업을 원한다면 취직시켜 줄 수 있다. 학교에서 그렇게 결정했다. 어떤가”하고 재차 물었다.

“아닙니다. 저는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 군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일본에 보복하려고?”

“우리나라를 지켜야지요.”

한참을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던 사토가 갑자기 허리에 찬 일본도를 쑥 뽑아들었다. 번쩍번쩍 빛나는 칼날에 손을 대더니 밑으로 싹 훑어 내려갔다. 그런 그의 표정에 만감이 서리는 듯했다. 나는 온몸이 오싹했다. 그가 다시 책상 서랍에서 뭔가를 뒤지더니 권총을 꺼냈다. 그것을 한참 내려다보던 그가 천천히 말했다.

“이것은 내가 소위 때 개인적으로 장만한 것이다. 가지고 가라.”

그는 일본도와 권총을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무슨 뜻인지 몰라 한동안 멍청해졌다.

“너는 네 나라로 돌아가는 거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정당하다. 나는 네가 일본에 남아 혼도 없이 살아갈 것이 두려웠다. 너는 사나이다.”

그가 나에게 일본도와 권총을 다시 내밀었다.

“패전국인 나는 무장할 수가 없다. 그래서 네가 대신 맡는 거다. 신변을 잘 보호하라. 일본은 지금 위험하다. 무사히 돌아가야 한다.”

그것을 받아 든 나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국적이 다르지만 이토록 사나이로서 대해 준 사람이 있었단 말인가.

〈이계홍 용인대 겸임교수·인물전문기자〉

2005.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