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실험 직후 방북 인사 “주민들 보릿고개에 ’죽을 맛’”
북한의 2차 핵실험 직후 북한의 나진 선봉지역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 대북지원 단체 관계자는 2일 “현지에서 영접 나온 당국자들에게 ‘밖에서는 북한의 핵실험으로 난리인데 어려운 가운데 왔다’고 말을 건네자 이들은 웃으면서 덤덤히 대하더라”고 전했다.지난달 27-29일 방북한 이 단체 관계자는 “16만명 인구의 나진 시내 장마당은 1천500명∼2천명 정도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며 “건축자재, 식료품, 야채, 과일, 옷, 이불, 신발 등이 죽 늘어선 매대들에 진열돼 있고 나도 속옷 같은 것을 사느라 흥정하며 1시간 반을 시장에서 돌아 다녔는데 정말 바글바글 했다”고 현지의 ’일상적인’ 분위기를 설명했다.
중국에서 40∼50위앤하는 이불은 나진에서 30위앤으로 더 쌌고 싱싱한 털게 3.3kg에 150위앤으로 kg당 우리돈 6,7천원 밖에 안돼 180위앤어치를 사 7, 8명이 실컷 먹었다는 것.
그는 “나진 시장은 평양에서 가장 큰 통일거리 장마당보다 커 보였다”며 “주로 중국돈과 북한돈으로 거래가 이뤄졌으며 달러로도 조심스레 거래하기는 하는 것 같기는 했다”고 말했다.
그는 장마당이 열리는 시간은 오후 4시부터 7시까지로, 신의주에서 만든 가방도 팔리고 있었는데 품질이 괜찮았고 올해는 특히 명태가 풍어라고 현지인들이 말했다고 전하고 “시장 상품들은 대부분 중국산이지만 중국을 통해 반입된 한국산도 라벨을 뗀 채 거래된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또 나선 지역은 무역특별구이기 때문인지 미주 또는 호주 교포들이 영주권에 해당하는 ’거주증’을 받아 수시로 드나들고 있었으며, 최근 러시아의 나선 지역 부두 투자를 반영한 듯 “나선시 남산호텔에서 두서너 그룹의 러시아 사람들을 볼 수 있었고 오래전부터 현지에서 장사하고 있는 중국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고 이 단체 관계자는 설명했다.
미국 시민권자인 그는 “나진시 인민위원회로부터 탁아소 사업을 도와달라는 요청이 있어 이달 하순쯤 미국 한인교회들을 돌며 모금을 할까 검토중”이라며 “지금과 같은 남북 긴장국면에 남한의 대북 지원단체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지역에 가서 화해의 기초를 닦아놔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옌지에서 밀가루와 쌀을 사서 북한에 들어가려 했으나 밀가루는 관세가 30∼40%나 붙고 쌀은 아예 반출 금지 품목이어서 결국 강냉이 국수 400박스만 사서 들어갔다면서 “비료도 110%의 관세가 붙어 있어 구매 엄두도 못내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2007년 11월 시작된 중국의 대북 곡물반출 금지는 옥수수의 경우 작년 연말부터 풀렸고 밀가루는 지난 2월말부터 풀렸으나 쌀은 여전히 금지 대상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이같은 대북 곡물반출 규제 탓에 이전에는 중국에서 북한의 회령같은 곳으로 물품을 싣고 들어가는 차량이 한번 통관시 10여대였는데 이제는 1, 2대 수준”이라며 “관세가 많이 붙어 이윤도 안 남고 북.중 양쪽 세관이 검사를 까다롭게 하는 데다 북한과 거래하면서 돈도 자주 떼이고 해서 지금은 조선족 장사꾼들도 북한을 많이 드나들지 않는다”고 전했다.
또 한달전부터는 북한이 중고 컴퓨터의 반입을 금지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중국의 대북 곡물수출 규제가 1년반을 끌고 남한으로부터의 쌀 지원이 끊긴 데다 보릿고개까지 겹쳐 북한 일반 주민들은 “죽을 맛”이지만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우리 시골 장마당처럼 소쿠리에 물건을 담아와 팔고 있다”며 “호텔앞에 거지할머니가 구걸해 중국 돈 10위앤을 건네 줬더니 연거푸 ’고맙다’고 했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의 단속으로 거리에 부랑하는 소년소녀 고아들인 ’꽃제비’들이 어느 정도 줄었지만 방북 당시에도 열댓살 정도의 여자아이들이 중국돈 1위앤만 달라며 구걸하기도 했다는 것.
그는 “이번에 지원 물품을 현지 고아원과 양로원, 탁아소에 분배했다”며 특히 북한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남한 정부의 인도적 지원을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