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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대통령보다 사회통합 대통령을

화이트보스 2009. 6. 4. 22:22

경제 대통령보다 사회통합 대통령을 [중앙일보]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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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서울 인구는 양반 10%, 평민 15%, 노비 75%였으나 18세기 전반 양반 60%, 평민 10%, 노비 30%로 급격히 재편된다. 19세기 초 양반의 수가 더욱 늘어나면서 조선 사회에는 극심한 혼란이 야기된다. 갑자기 늘어난 양반들의 품위 유지를 위한 주택 장식용 서화 수요가 크게 늘면서 진경산수 등 한국 미술과 함께 민화도 발전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수복강녕(壽福康寧)이라고 쓴 길상문자도와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라는 글자에 디자인적 요소를 가미한 효제문자도다.

민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떠올리는 이유는 죽음이 고도의 정치 행위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루엣과 변혁 시기의 조선 민중의 신산(辛酸)한 삶과 요즘의 어려움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은 열심히 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국민이 알아주겠지 하는 마음가짐으로 정치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정치를 멀리하고 있는 듯하다.

즉 노 전 대통령의 죽음 자체가 정치였던 것에 비해 이 대통령은 삶 자체가 정치 행위를 결여하고 있다. 죽은 제갈공명이 살아 있는 사마중달을 한 번 물러나게 했던 것처럼, 노 전 대통령이 가지고 있었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산인 균형발전과 소외계층 배려라는 부분이 이 대통령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를 해소하는 정치 행위를 기다리게 된다.

국내에는 대통령의 경쟁 상대가 없다던 현 대통령은 떠난 전임 대통령,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등 다른 나라 대통령과도 정치를 통해 경쟁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경제 대통령의 기치를 들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미국발 경제위기를 어느 정도 헤쳐 왔다. 하지만 안팎으로 혼란스러운 현재 시점에서 이제 경제뿐 아니라 사회통합으로 승부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사회통합은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이 공동체의 소속감과 가치관, 그리고 비전을 공유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동등한 기회’와 ‘물질불평등 최소화’를 달성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사회통합을 위해선 사회의 주요 정책 영역 중 소득, 경제·고용, 금융, 교육, 건강, 재산·주거 등의 5~6개 영역으로 나누고 각각의 영역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로 상황을 점검해야 한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현 시점에서 소득 분배 상태를 보여 주는 지니계수와 5분위 소득배율은 경제위기 이후 크게 악화됐다. 빈곤율도 OECD 국가 중 높은 편에 속한다. 고용영역의 실업률 지표는 경제위기였던 1998년에 7%대로 급증했으나 이후 지속적으로 낮아져 3%대에 있지만 체감 실업률은 한계 상황이다. 가계의 교육비 지출 비중은 분명히 문제가 있고, 학력별 임금격차 지표도 관리가 필요하다.

이외에도 금융영역의 가계대출 연체율, 의료비 과부담 가구율뿐만 아니라, 재산·주거 영역에도 관리해야 할 지표가 있다. 이상 열거한 지표 이외에도 20가지 정도의 사회통합을 위한 지표는 이미 한국과 OECD에 개발되어 있다. 지표가 전부는 아니지만 계량화해 평가하고 국민과 공유하는 것이 좋다.

현재 한국의 사회통합정책은 큰 유기적 연관성 없이 부처별로 시행되고 총리실에 조그마한 조직이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의 사회통합지수는 OECD 회원국의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 이는 사회지출 수준이 전반적으로 낮고, 계층 간 격차가 크며, 정책 목표와 수단이 일치하지 않는 등 사회통합정책을 종합적으로 관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책 조정 메커니즘도 부족하다. 대통령이 경제를 넘어선 사회통합 대통령이 돼 퇴임사에 어느 정도 사회통합을 이루었다고 성과를 보고하고, 국민들이 따뜻한 박수로 떠나 보내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이 시점에서 소득, 경제·고용, 건강, 교육, 재산·주거 등 주요 정책영역을 내걸고 필수 지표 향상을 위한 정책 목표와 수단 관리를 위한 사회적 의제 실천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들을 줄이고 있는 시점이지만, 사회통합에 관한 위원회라면 재고할 수도 있겠다. 아직도 3년 반 이상 남은 임기 동안 사회통합에 기여함으로써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통합 대통령으로 불릴 수 있었으면 한다. 그렇게 하려면 국정을 기업 경영하듯이 할 게 아니라 정치를 잘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국민의 수복강녕(壽福康寧)을 바라는 사회통합이 경제와 함께 이 대통령의 상징이 되기 바란다. 손명세 연세대교수·예방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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