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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달라져야 한다

화이트보스 2009. 6. 5. 14:09

 

[사설] 이명박 대통령은 달라져야 한다

 

 

입력 : 2009.06.04 22:41

 
이명박 대통령은 3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최근 한나라당 등이 제기한 정부·여당 개편론에 대해 "국면 전환용으로 인사를 하는 것은 3김(金)시대의 유산(遺産)"이라며 "국민에게 이벤트나 쇼로 비칠 개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여론 압력에 밀리는 인사는 하지 않겠고, 묵묵히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서 나중에 평가를 받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앞서 한나라당 쇄신특위가 2일 "지난 1년 반 동안 이명박 정부가 한 것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과 이에 따른 국민 요구에 부응하는 차원으로" "조각(組閣) 수준의 국민 통합형 내각 개편과 청와대 개편이 필요하다"고 요구한 데 대해 하루 만에 나온 반응이었다. 같은 날 한나라당의 주류(主流) 초·재선 의원 6명도 기자회견을 갖고 "작금(昨今)의 민심 이반은…지금도 '나를 따르라'고만 외치는 한나라당과 정부, 대통령의 독선과 오만에 대한 심판"이라며 "작금의 사태에 책임질 사람은 책임져야 하고, 대탕평(大蕩平)의 정치와 인사가 단행되어야 한다"고 건의했었다. 거리에 흩어진 민심이 요구하는 것은 국정 운용 기조의 변화이고, 그것은 무엇보다 대통령 자신의 변화부터 요구하고 있다.

한나라당 쇄신특위의 건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표출된 민심의 불만만을 계기로 삼은 것은 아니었다. 4·29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은 5대0 완패를 당했다. 이대로 가면 오는 10월 6~7곳의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또다시 몇대 영(零)의 참패를 당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리고 내년 5월 지방선거에서 서울·경기를 놓치고 한나라당이 전국적으로 크게 패배할 경우 이 정권은 그때부터 반신불수(半身不隨) 정권이 된다. 대통령 임기 절반에 정권이 '식물성 정권'으로 굴러 떨어지면 세계적 경제위기 한가운데서 한국은 방향을 잃은 배가 되고 만다. 그리고 그것은 이명박 정권, 한나라당 정권의 몰락이 아니라 이 나라 보수세력의 전반적 조기(早期) 퇴조(退潮)로 연결될 것이다.

좌파 정권 10년 만에 모처럼 등장한 보수 우파 정권이 일 한번 제대로 못 해보고 주저앉고 말면 그것은 자동적으로 좌파 정권 재등장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런 위기의식은 이미 당내에 널리 퍼져 있다. 그걸 모르고 있다면 정당도 아니다. 실제로 그간 한나라당 지지율은 계속 떨어져 왔고, 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 지지율에 밟히는 역전(逆轉)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노무현 탄핵 정국' 이후 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한나라당 쇄신특위가 요구한 '조각 수준의 내각·청와대 개편'과 '당 지도부 책임론'도 오히려 미흡하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취임 후 지금까지 줄곧 잦은 개각, 특히 국면 전환용이나 '취임 1주년'식의 '계기성' 개각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피력해 왔다. 정권 임기 5년 동안에 100명이 넘는 장관들을 양산(量産)하고, 부처에 따라서는 5년 동안에 5명의 장관이 거쳐 갔던 지난 정권의 사례들을 되돌아보면 대통령의 이런 신조(信條)는 근거가 있고 옳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때가 있듯이 이 정부와 청와대 인사에도 때가 있다.

지금 정권이 쓸어담지 못한 민심은 거리를 훑고 지나가며 눈덩이 굴리듯 불만을 굴리고 있다. 이 대통령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현재 대한민국은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보다 더 통합되어 있는가. 계층과 계층, 지역과 지역, 종교와 종교 사이의 불화(不和)는 그때 그 시절보다 줄어들고, 이들 사이의 화해(和解)의 움직임은 커지고 활발해지고 있는가.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난한 사람, 힘없는 사람들이 전 정권 시절보다 법적·경제적·인권적으로 더 잘 보호받고 있고, 이 정권이 자신들의 보호자라고 믿고 있으며, 오늘이 힘들더라도 내일에 희망을 걸고 살고 있는가.

현재 대한민국 공무원들은 인사 때마다 'PK'니 '부산 갈매기'니 하는 소리로 불만을 표시하던 전 정권 시절과 달리 능력에 따른 공정한 인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믿고 있는가. 지금 이 나라 공기업과 정부 관련 연구소에는 과거 정권과 같은 낙하산 인사가 사라졌으며, 지연(地緣) 학연(學緣)이 닿거나 정권의 실력자와 선(線)을 대야 제자리를 찾을 수 있던 전 정권의 구습(舊習)은 사라졌는가. 공기업의 사외(社外)이사 자리까지 모두 청와대가 챙긴다는 요즘 시중에 떠도는 이야기는 낭설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대통령이 이 여러 질문에 확신을 갖고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면 대한민국 국민이 전(前) 정권 시절보다 더 행복해졌다고 할 수 없다.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는 정치는 실패한 정치다. 실패한 정치의 책임은 대통령이 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이제 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