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특채된 기능대회 수상자들
삼성전자·현대중공업 등 산업인력공단과 채용협약 고졸이지만 연봉도 높아
이상기(20)씨는 작년 1월 삼성전자에 특채됐다. 그는 삼성이 2006년 산업인력공단과 맺은 전국기능대회 수상자 특채 제도의 수혜자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취업을 위해 공부보다는 기술 쪽이 유리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말했다.이씨는 어려서부터 "누구나 들으면 알 수 있는 기업"에 입사하는 게 꿈이었다. 이를 위해 이씨는 기능인의 길을 택했다. 2005년 서울공고 전자과에 입학, 엑셀·파워포인트·워드 등 마이크로소프트(MS) 오피스 프로그램 활용능력을 익혔다. 방학 때도 학교에 나가 컴퓨터와 씨름했다. 한때 친구들 대부분이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흔들리기도 했지만, 삼성전자가 기능대회 출신자를 특채한다는 발표를 보고 다시 마음을 잡았다.
이씨는 고3 때인 2007년 전국기능대회 2위에 입상했고, 현재 삼성 기능올림픽훈련센터에서 국제기능올림픽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30대 기업으로 특채 확대
토익 점수도, 대학 졸업장도 없는 10대 후반 청년들이 매년 수십명씩 삼성전자, 현대중공업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에 입사하고 있다. 고졸 학력임에도 대졸 사원보다 고(高)연봉인 경우도 많다. 인문계 고교 대신 공업계 고교에 진학,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입상한 후 특채되는 것이다.
기능대회 입상자 특채제도는 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인력공단과 개별 기업 간 협약으로 공식화돼 있다. 산업인력공단은 2006년 삼성전자와 첫 기능장려협약을 맺은 뒤 2008년 현대중공업, 2009년 보루네오가구와 체결했으며 앞으로 30대 기업으로 확대하려 하고 있다. 지금까지 기능장려협약을 통해 특채된 기능대회 출신은 모두 31명에 이른다.
협약을 맺지 않았더라도 우수한 기능인력 확보를 위해 기능대회 출신들을 특채하는 기업들도 많다. 삼성중공업·삼성전기·삼성테크윈·삼성엔지니어링·에버랜드·호텔신라 등 삼성그룹 계열사들은 2007, 2008년 모두 153명의 기능대회 출신을 특채했다. 매년 80명이 넘는 인원이다.
- ▲ 왼쪽부터 삼성전자 이상기, 현대차 이희봉, 현대중공업 이도희씨. 이들은 기능대회 입상으로 대졸자도 뚫기 힘든 대기업 취업에 성공했다./한국산업인력공단 제공
◆협력업체 근무 아버지 한 풀어
이희봉(20)씨는 스스로를 '자동차 아티스트'라 부른다. 이씨는 찌그러지거나 흠집이 간 자동차 패널을 완벽히 복원해 내는 작업을 한다. 복원된 부분의 색을 차의 다른 부분과 완벽히 맞추는 작업은 예술적인 감각이 필요하다. 새 차의 도장 작업은 대부분 기계가 하지만, 손상된 차체를 복원하는 작업은 사람이 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씨는 2007년 전국기능경기대회 자동차 페인팅 분야에서 금메달을 딴 뒤 2008년 3월 현대자동차의 정직원이 됐다. 신라공고를 졸업하자마자 특채된 이씨의 연봉은 3500만원으로, 대졸 초임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씨에게 현대차는 단순히 자동차 회사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경북 경주의 현대차 협력업체에서 20여년간 생산직원으로 일해 왔다. 이씨는 "현대차 입사로 아버지의 한(恨)을 풀어 드렸다"고 말했다. 대학에 다니는 이씨의 친구들도 "나도 대학입시 대신 기능 공부나 할 걸 그랬다"며 이씨를 부러워하고 있다.
◆취업 고민하는 대학생들 보며 각오 다져
이도희(20)씨는 19세 때인 2007년 12월 현대중공업에 특채됐다. 연봉 3600만원의 현대중공업 정사원이다. 현대중공업 생산기술직 입사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의 경우, 우선 평균 7대1의 경쟁률을 뚫고 현대중공업 기술교육원에 입소해 3~6개월가량 연수를 받는다. 이후 1년간 협력업체에서 근무 후 재면접에 합격해야 정규직 사원이 될 수 있다.
이씨는 2007년 전국기능경기대회 폴리메카닉스 종목에서 2위에 입상, 기능대회 입상자를 특채하는 현대중공업에 입사했다. 폴리메카닉스는 금속 등의 재료를 밀링·선반 등으로 가공·조립, 자동화 공정에 쓰일 수 있게 만드는 작업을 말한다.
이씨는 "지금 대학생이 된 친구들은 또다시 취업 준비로 고민을 하고 있다"며 "진로 때문에 고민하는 친구들과 달리, 기능 올림픽 금메달이란 확실한 목표를 갖고 있어서 고된 훈련을 견뎌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경북기계공고 '기능반'에 들어가 전국기능경기대회를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