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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당 떠나 광장(廣場)에 자리잡은 민주당

화이트보스 2009. 6. 10. 11:28

의사당 떠나 광장(廣場)에 자리잡은 민주당

입력 : 2009.06.10 02:42 / 수정 : 2009.06.10 08:48

서울광장 사용 허가 못받자 장소 선점 위해 기습 농성 "민주주의는 피를 먹는다"
'광장으로 이슈 이동' 속으로 웃는 민주당

민주당이 10일 야당과 좌파·시민단체가 주최하는 '6·10 범국민대회' 장소 사전 확보차원에서 9일 서울광장 선점(先占)에 나섰다. 경찰이 '함부로' 법 집행을 할 수 없는 '대한민국 야당 국회의원'이라는 특수 신분을 활용해 경찰 방어막을 뚫는 선봉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2007년에는 민노당 국회의원들이 집회 허가를 따낸 뒤 그 자리를 좌파·시민단체들의 불법 집회장소로 내주는 일을 하곤 했었는데 이번엔 제1야당이 그 역할을 맡기로 한 것이다.

민주당은 이날 의원총회를 열어 "정부와 서울시가 서울광장 사용 불허방침을 내린 이상, 광장에서 1박2일 투쟁을 벌이자"고 결의한 뒤 서울광장으로 달려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에 대한 대통령 사과 등 민주당이 제시한 국회 개원 조건이 수용되지 않았다며 민주당은 국회가 있는 여의도를 등진 채 서울광장에서 사실상 장외투쟁에 돌입했다. 임시국회 법정 개원일인 6월 1일부터 9일이 흐른 날이었다.

광장에 천막 치고 '1박2일'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60여명은 이날 오후 4시부터 광장 개방을 요구하며 서울광장에서 밤샘 연좌농성을 했다. 텅 빈 광장에 들어선 민주당 의원들은 우선 스티로폼을 깔고 앉았고 '광장 없이 민주 없다'는 현수막을 들었고 천막도 쳤다. 길 건너 대한문 근처에 있던 근조(謹弔) 마크를 단 수십명이 이들의 주변에 몰려들었다. 경찰은 한때 당직자들이 천막을 설치하려 하자 "불법시설물"이라며 제지했지만, 국회의원들의 출입은 막지 않았다. 김재균 의원 등이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살아왔다. 우리도 결사항전하자"며 목청을 높였다. 이들은 천막 밑에서 비를 피하며 촛불을 들거나 구호를 외치면서 밤을 지새웠다. 광장 선점이라는 기습 전술은 앞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결정됐다.

민주당은 온종일 '출정전야(出征前夜)'를 방불케 할 만큼 좌파 단체와의 모임, 의원총회, 성명 발표, 국무총리실 및 법무장관 항의 방문 등 당력을 '6·10 국민대회'와 서울광장 개방에 맞췄다.

정세균 대표는 오전엔 민노당 강기갑 대표,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등과 시국간담회를 갖고 현 시국을 '민주주의의 후퇴'로 규정해 공동 행보를 취하기로 했다. 좌파단체까지 포함한 '투쟁전선'의 중심에 민주당이 서겠다는 뜻도 분명히 밝혔다. 정 대표는 "소수당이 거대여당과 싸워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평소에 안 하던 짓도 해야 한다"고 했다. 정 대표는 이례적으로 개인 성명도 내고 "평화집회를 할 테니 서울광장을 개방하라"고 요구했다. 또 민주당 의원들은 서울광장 사용 허가를 요구하며 한승수 국무총리 등 관련 부처를 돌며 항의 방문도 했다.

이강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를 완전히 팽개치고 밖으로 나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당 고위 관계자는 "우리에게 더 이상 장내와 장외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와 서울시가 좌파 시민단체·야당 등이 주도하는 ‘6·10 범국민대회’장소로 서울광장을 내줄 수 없다고 하자 수십명의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9일 오후 서울광장을 기습, 경찰이 막기 전에 자리를 선점했다. 의원들 은 당에서 준비한 천막 안에서 비를 피하며 우중(雨中) 철야 연좌 농성을 벌였다./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집회가 아니라 문화제" "말장난"

정부와 서울시는 서울광장 불허 방침을 밝히면서, ▲민주당이 지난 8일까지 집회신고를 하지 않았고 ▲자유총연맹이 먼저 집회신고를 했으며 ▲건전한 문화활동이라는 서울시 조례에도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었다. 민주당과 시민단체가 주최하는 국민대회를 '불법 집회'로 규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민주당은 ▲집회가 아니라 문화제이기 때문에 집회신고를 할 필요가 없고 ▲문화제이기 때문에 서울광장 사용 목적에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주장을 폈다.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2002년부터 야간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한 현행 집시법의 틈을 노려 모든 촛불집회를 '문화제'로 부르고 있다. '문화제'이기 때문에 촛불집회는 불법 야간집회도 아니고, 따라서 사전 신고 대상도 아니라는 게 야당과 시민단체의 아전인수(我田引水)식 법 해석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처음에는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생각해 낸 것이지만, 현행 집시법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노 전 대통령 추모제가 왜 정치집회냐"고 했다. '6·10 국민대회' 역시 정치집회가 아니라는 것이 민주당의 기본적 인식이다.

그러나 여중생 미군 장갑차 사망사건, 노 전 대통령 탄핵,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 등 최근의 대규모 촛불시위는 주최측만 문화행사로 불렀지 모두 정치집회였고, 일부는 폭력시위로 변질된 적이 많다. 여권 관계자는 "한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말장난이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부터 법을 마음대로 해석하고 어기는 행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당은 '국민대회'의 중심 이슈가 서울광장으로 이동한 것에 대해 전략적 성공이라는 판단도 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죽음에 편승한다는 비난 여론에 민감했던 민주당이지만 '광장 폐쇄=민주주의 후퇴'라는 구도로 전선(戰線)을 명확히 했다는 것이다.

당 관계자는 "촛불과 광장에 대한 이명박 정권의 울렁증이 얼마나 심각한지 스스로 보여줬다. 원천봉쇄로 인해 생기는 불상사의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9일 정부의 6·10항쟁 범국민대회 서울광장 사용 불허 방침과 관련, 9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6·10범국민대회 불허 관련 의원단 대책회의'를 개최하고 10일까지 철야농성에 들어갔다. /민봉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