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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유격대에게 궤멸당한 북한 해안포대

화이트보스 2009. 6. 10. 11:49

 

 

  유격대에게 궤멸당한 북한 해안포대

                
                            

1950년 북한 깊숙히 진격했던 유엔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다시 되돌아 철수 할 때 황해도의 반공 청년들은 황해도
구월산과 백령도등을 근거지로 유격활동을 개시했다.


황해도 유격대의 총병력은 30여개 부대 4만여 명에 달했고
이들이 벌인 작전만 4445회이었으며 적 2-3개 군단을 후방에
묶어 두는 대활약을 하였다.
유격대의 피해도 커서 약 일 만 명이 전사했다.


서해상의 NLL은 결코 공짜로 얻은 것이 아니었다.


유격대는 김 종벽 대위가 지휘하던 구월산 부대와 같이
육군의 직할로 활동하는 부대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보급문제로
미군의 지원으로 편성한 동키 부대로서 싸웠다.

백령도 레오파드 기지에 모인 동키 부대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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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소개하는 일화는
동키-4, 백호 부대가
대장 박 철씨와 미 고문관 벤 멜콤 중위
의 지휘 아래
미 해병대 콜세어 세 기와 영국 구축함의 지원을 받아
북한군이 해변에 설치한 해안포를 격멸해버린 1952년의
작전 이야기다.


이 글은 벤 멜콤 미 예비역 대령의 전투 회고록

‘화이트 타이거스(백호)- 북한에서의 나의 비밀 전쟁’에서
인용한
것임을 밝혀 둔다.

그는 북 조지아 대학을 졸업,임관하고 미국에서 근무하다가
중위가 되자 한국으로 파견되었다.
동키 부대에 배속되어 백호 부대의 고문관을 했다.


백령도의 모래 사장에 착륙한 수송기
백사장이 비행장으로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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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부대는 황해도 장연군 출신 반공 청년들로
구성된 부대로서 전투력이 우수한 정예부대였다.
백호 부대는 그 근거지를 백령도가 아닌 본토에
근접한
월내도에 두고 있었다.


수백명의 유격대원들 가족도 이 섬에 살고 있었다.
북한의 본토 해안에서 단지 2킬로도 되지 않아
북한이 일 년 전 바다 건너 덕동포 해변의 높이
150미터 되는 산 정상에 설치한 76미리 해안포로부터
밤낮없이 포격을 당하고 사상자가 생기는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월내도와 북한내 백호부대 활동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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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콤 중위는 박철 대장과 상의하여 이 포를 없애 버리기로 하였다.


멜콤 중위는 상부의 승인을 받아 박대장과 함께 105여명의
대원을
뽑아 3대로 나누어서 공격대를 편성했다.


2조가 제일 중요한 해안포대를 공격하고,
1조가 그 해안 포대에서 1,000미터 떨어진 산봉우리에
설치된 중 기관총 토치카를 공격하고, 다른 3조는
멜콤 중위와
박대장이 지휘하는 예비대로서 상황에 따라
다른 두 조를
지원하기로 하였다.


화력 지원은 멜콤 중위가 요청하고 그의 직접 상관인
토마스 다이 소령이 영국 구축함에 승함해서 콜세어 편대와
영국함의
포술장교에게 무선을 중계하는 지원 역할을
담당하기로 하였다.

두 사람은 사전에 다이 소령의 호출 부호는 '불독',
멜콤 중위는 '레블’로  약속했다.


영국 구축함의 대형 무전기와 미제 휴대용 무전기와는
서로 교신이
안되기 때문에 멜콤 중위는 미제 무전기와 함께
구축함과 교신하기 위한
영국제 무전기도 갖추고 출동하여야했다.


멜콤 대위는 박대장과 협의하에 치밀하게 작전을 짰다.
여러번 수정 끝에 공격 계획은 6월28일 까지 완료했다.
편성을 마친 유격대는 일주일동안 모의 목표를 대상으로
공격 훈련을 집중적으로 하였다.


7월12일 월내도로 이동한 멜콤 중위는 섬에서 하루를 보내며
모든 준비를 마쳤다.


백령도의 멜콤 중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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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에도 덕동포의 76미리 포는 열 두 발의 포탄을
발사해서 월내도
사람들을 다치게 하였다.


1952년 7월13일 밤 8시30분,
유격대는 네 척의 범선을 타고 월내도를 출발하였다.


네 척의 범선에 탄 유격대는 소리없이 해변으로
침투하는데 성공하였다.
해변에서 포대까지 침투가 어려워서 중간에 북한 순찰병들에게
들킬 뻔 했지만 다행히 포대 북방 산정상까지 도착했다.
그 곳에서 포대까지의 거리는 약 800 미터였다.


4시20분.

미리 침투한 침투조는 포대와 본대,다른 초소들과 연결한
네 개의 전화선을 모두 절단했다.

76미리 포가 들어있는 포대 시설은 첩보원이 보고한 그대로 였다.

포대는 바다를 내려 보는 산허리에 구멍을 뚫어 만들어져 있었다.
월내도를 향한 남쪽에는 포가 들어있는 동굴이 있었는데
이 동굴에는 철문이 달려있어 포격이나 공중 공격으로
파괴 할 수가 없도록 되어 있었다.


산 남쪽은 높이 3미터가 되는 절벽이 둘러싸고 있었다.
산 주위에는 여러 방향으로 참호로 연결되어 있었다.
포대 옥상에 네 명의 사수가 조작하는 7.62미리 기관총
진지가 있었다.

덕동포 포대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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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은 여러 겹의 철조망이 둘러싸여 있었다.
포대에서 옆의 중 기관총 진지까지는 비스듬한 오르막 경사였다
멜콤은 공격이 생각보다는 어려울 것으로 느껴졌다.


새벽 4시 25분.

멜콤은 고지에서 내려와 무전병에게서 영국제
무전기를 받아 안테나를 설치한 뒤에 호출했다.

“ 불독, 여기는 레블, 감잡고 나오라. 이상!”

영국 함에 타고 있던 그의 신임 직속사령관 다이 소령의
믿음직한
목소리가 곧 들려왔다.


“ 레블. 당소 불독. 귀소 감 좋다. 이상.”
“ 불독 당소 레블, 
   침투 성공, 당소 배치 및 공격 준비 완료.

   사격 지원을 요청한다.
  
사격 요령은 아래와 같다.

   04:30 함포 목표 1번과 2번 포격,15분 포격 뒤 ,04:45분
   목표 이동, 3번과 4번에 포격 요청한다.

   05:00 포격 중단하고 05:00에서 05:10까지 1번과 
   2번에 
항공 지원 요청한다.

   항공기들은 임무 완료 후 대기하다가 레블의 요청에

   다시 지원 바란다.

   최고의 사격지원 요청한다 이상! 이하 무선 침묵함 ”


멜콤은 교신을 멈추고 다시 고지로 올라가 북한군 포대
주변을
내려다 보았다.


이번에는 여기저기에 있는 기상한 북한군들이 보였다.
포대 옆 광장에는 30명 정도의 군인들이 아침 도수 체조를
하고 있었다.
이 진지로 통하는 네 개의 전화선은 모두 절단 된 것을
모르는듯했다.


바다 쪽에서는 영국 구축함이 희미하게 윤곽만 보이고 있었다.
적은 아직도 대부대가 은밀히 침투해서 공격 대기하고 있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4시 30분,

영국 함에서 첫 사격이 있었다.
첫 탄은 너무 짧아 포대 앞 100미터 되는 곳에 떨어졌는데
폭발하지 않고 위로 튕겨나가 반대쪽 150피트 되는 지점에
떨어지면서
큰 폭음과 함께 터졌다.


북한군들은 놀라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들은 영국 함이 처음 여섯 발을 쏘는 동안 대피하지 못하고
혼이 빠진 듯 그 자리에 얼어 붙어 있었다.


오차 수정을 한 최초의 일제 사격은 목표에 명중했다.
지축을 흔드는 진동이 아군이 있는 곳까지 느껴졌다.

연기와 흙더미가 튀면서 여섯 명의 북한군 병사가 쓰러졌다.
나머지 병사들은 참호로 뛰어 들었다.
영 구축함의 포격은 5 분 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기대와 달리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예전에 침투했었던 첩보원들이 지켜 본 바에 의하면 함포 사격이
있으면 북한군들은 전부 안전한 포대 안으로 도주했다고 했었다.


그러면 유격대의 해안포 요새 공격은 대단히 쉬어지는 것이다.
지상에 아무도 없을 때 요새 안으로 돌입해서 포대를
공격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는데 이번에는 정확한 함포
일제 사격의
효과에 놀라서 포대 안까지의 위험한 피신 달리기를
하는 대신
부근의 참호로 뛰어들었으니 이제 요새 공격 작전은
이들의 소탕전을
하면서 병행하여야 했다.


멜콤은 영 구축함에 사격목표를 3번과 4번으로
이동하도록 요청했다.

그는 참호 안의 북한 병사들이 사격이 다른 곳으로 이동한
사이에
다시 뛰어나와 좀 더 안전한 포대 안으로 뛰어 가기를
원했다.

포격이 다른 곳으로 향하자 북한군들은 참호에서 머리를
내밀고 밖을 내다보았다.


그러다가 한 두 명씩 참호에서
뛰쳐나와 앞마당을
전속력으로 달려 포대로 들어갔다.
포대의 지하 대피소라면 영함이 아무리 포사격을 퍼부어도
안전한 곳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그들이 잘 알고 있을 것
이었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다섯 명의 북한군이 안전한 포대로
가지 않고
그냥 그 참호에 머물러 있었다.
멜콤은 영 함포 사격을 그 참호 쪽으로 유도해서
두 어 차례의
일제 사격을 가했다.


폭발의 먼지가 자욱했지만 이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멜콤은 다시 목표를 포대로 돌려서 25분간 포대로
대피했던 병력이 나오지 못하도록 계속 포격하게 하였다.
함포 탄은 간단없이 터졌다.

05;00 정각.

영국 구축함은 포격을 멈추었다.
동시에 서쪽 하늘에서 접근해오는 미 해병대 콜세어
전투기들의
엔진 폭음이 들려왔다.

콜세어들은 경기도 평택 인근 안정리의 미 해군/ 해병대
비행장에서 출격했었다.


콜세어 편대는 세 기(機)였다.
콜세어들은 종대로 포대 위를 저공 비행하면서 로케트 탄과
기총탄을 퍼붓고 다시 서해 바다위로 날아갔다.

멜콤은 무전으로 포대를 재공격 해주기를
요청하면서 당부했다.


“ 불독, 레이블 부대가 공격을 개시 한다. 
  
포대 북쪽 숲에서 나오는 병력에게는 사격 하지 말고
 
포대 남쪽에만 로케트 공격하라.이상!“

멜콤은 두 개 조에게 이동 개시하라고 박 대장을 통해서 지시했다.
이 공격 작전이 그가 기획하고 화력지원을 담당했기 때문에
박대장과 멜콤은 암묵적으로 상황에 따라
멜콤이 지휘권을 행사하는 것이 양해되어 있었다.
평시에는 고문관들은 유격대 작전 지휘권이 없었다.


유격대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도 칼빈 소총과 무전기를 들고 달렸다.
북한 포대에서 1,50미터 지점에 왔을 때 콜세어 전투기들이
두 번째 공중 공격을 실시하였다.
로케트 탄은 포대 남쪽만을 때렸다.

콜세어 F4U - 20mm 기관포와 로케트탄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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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대원 몇 명은 벌써 요새 외곽에 도착하여 외곽에 설치된
철조망을 제거하고 요새 내부로 침투했다.


박대장의 선발대 40명이 철조망을 막 벗어나서 돌격을 개시할 때
아까 영 구축함의 집중 포화를 받고도 살아남았던 참호속의
다섯 명이 머리를 내밀고 이들을 봤다.


놀란 그들 중 한 명이 따발
총을
쐈다.
선두에 섰던 첨병 한 명이 쓰러졌다.
철조망을 반쯤 통과했던 후미 유격대가 즉시 응사했다.


유격대는 수류탄으로 두 명을 제거하고
예상했던 지점 이상으로 공격해갔다.

철조망 통과가 예상외로 빠르게 이루어져 대기하고 있던
화력지원조의 LMG가 불을 뿜을 필요가 없었다.


이제 참호 속에 남아있는 세 놈만 제거하면 되었다.
선두 네 명의 유격대가 반대 방향을 바라보며 동시에
다른 참호 속으로 뛰어 들었다.

따발총. 7.62mm 탄 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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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등을 맞대고 참호 양방향으로 중국제 따발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이 본능과 같은 속사로 북한군 세 명이 저항도 못하고 즉사했다.

 

 


참호안의 세 명을 제거하고 포대로의 돌격을 시작하자
그때서야 포대 안의 북한군들이 심상치 않은 상황을 눈치 챘다.

그들은 대원들이 참호에 돌격해 올 때까지 가해졌던 폭격과
함포 사격이
포대가 건축된 뒤 지난 일 년 간 흔하게
받았던 공격들과 같은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몰래 후방으로 침투한 유격대가 공격을 개시하자
비로소
허둥대며 응전을 시작했다.


멜콤은 아직 최소한 19명의 북한군이 포대 속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함포 사격이 시작하기 전 30명이 밖에서 체조를 하고 있었는데
최초 함포 사격으로 6명이, 참호 안에서 뛰어 든 유격대에게
5명이 사살되었다.
남은 북한군은, 그러니까 19명이 되는 것이다.

수적으로 유격대보다 4대1의 열세에 있었지만 북한군은
콘크리트로 견고하게 건조된 포대 안에 있었다.


월내도와 덕동포 일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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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대를 후속하던 멜콤 중위가 철조망 지대를 반쯤 통과
하였을 때
포대위의 옥상에 설치된 소련제
맥심 기관총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그는 땅에 납작 붙은 포복자세로 정지했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 북한군들은 맹렬한 기관총 사격을 해왔다.
포복 자세인 멜콤의 앞에 작은 모래 언덕 같은 것이 있었지만
기관총의 집중사격에 점차 깎여 나가 아주 낮아지고 있었다.

그와 함께 이 상황에 말려든 사람은 주변에 10명 정도 되었다.

이날 포대 옥상에서 쏴댄 기관총은 소련제 수냉식 맥심
기관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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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였다.


다행히 선두 유격대원 몇 명이 포대 아래까지 진출했다.
그들은 수류탄을 까서 포대 위 옥상의 기관총 진지로 올려
던졌지만 명중하지 않았다.
제 2파의 유격대원 몇 명은 기관총 사각지역인 산의
서남쪽
벼랑 밑으로 파고들었다.


덕동포 포대의 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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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한 대원이 포대 위로 갈구리를 던졌다.
이 갈구리는 벼랑 맨 끝에 있는 나무 기둥에 걸렸다.
그는 톰슨 기관단총을 등 뒤에 메고 벼랑을 올라서
기관총 진지 1.5미터 아래 포대 중간에 약간 발판이
있는 곳에 도달했다.

그는 어깨에서 톰슨 기관단총을 꺼내서 적 기관총 진지에
완전 자동으로 사격을 가했다.
총격을 당한 북한군 기관총 사수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톰슨 기관단총 사수가 다시 방향을 바꾸어 사격을 하려고
하는 순간
북한군 기관총 조수가 따발총을 꺼내들고
그에게 난사했다.
용감했던 그 대원은 가슴을 맞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톰슨 기관단총 M1A1  45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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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의 기관총 진지는 곧 네 명으로 보강되었다.
이 기관총좌가 제일 위험했고 제일 먼저 제거해야할
적의 목표였다.


덕동포 포대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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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콤은 뭔가 즉각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무전기를 벗겨들었다.

그를 엄폐해준 낮은 모래 언덕은 적의 기관총이 토해낸
수많은 실탄을 맞고
낮아 질 대로 낮아졌다.


“불독, 여기는 레블, 나오라.이상!’

그의 호출에 빠른 응답이 있었다.

그는 황해 상공에서 체공하고 있는 콜세어들의 지원을 요청했다.
세 기가 급강하 기총 소사를 하고 두 번 왕복 통과 한 뒤에
전 유격대가 포대를 향하여 돌격하기로 하였다.


몇 분지나 서쪽에서 전투기들이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두 기는 차례로 기총 사격을 하며 포대 위를 통과했다.

기총좌의 북한군들은 사방으로 뛰쳐나가며 살길을 찾았다.
콜세어들은 바다로 나가서 다시 2차 공격의 접근을 했다.


한국 전쟁중 미해군과 해병대가 사용했던 명 대지 공격기
콜세어 F4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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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적의 기총사격에 땅에 납작 엎드려 있던 유격대원들은
모두 일어나 함성을 지르며 포대로 쇄도했다.
서 너 개의 갈구리가 포대 위로 던져지고 세 개가 제대로 걸렸다.


때맞추어 콜세어 세기가 기총소사를 하며 상공을 통과하였다.
마지막 콜세어가 통과와 동시 적어도 25명의 대원들이
포대 꼭대기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기관총좌로 올라갈 때 까지는 25초 정도의 시간밖에
없었다.

줄을 타고 올라가던 일부 유격대원들은 포대의 환기창으로
수류탄을 던지고 폭발과 동시 뛰어들었다.
포대에는 지하실, 포실, 대기실등 세 개의 층이 있었다.


멜콤은 포대 안에서 중국제 따발총 소리와 미제 톰슨
기관단총 소리가 요란하게 교차하는 것을 들었다.
계속해서 수류탄의 폭발 소리도 들렸다.


유격대는 포대안의 각방을 수류탄과 기관총으로 청소했다.
그는 기관총 처리를 담당한 7 명의 다른 조를 따라
포대 옥상으로 기어 올라갔다.

먼저 올라간 유격대원들은 여러 발의 수류탄을 공습에
정신을 못 차린 기관총 사수들에게 투척했다.
수류탄들은 거의 동시에 큰 폭음을 내면서 폭발했다.


연기와 파편이 날면서 비명소리도 들렸다.
연기가 가신 뒤 기관총좌에 네 명의 북한군이
크게 손상된
시체가 되어 있었다.


멜콤은 다른 유격대원과 함께 포대 옥상으로 통한
문으로 뛰어들었다.

그가 반쯤 몸을 포대 안에 들여 놓았을 때 앞의
유격대원이
따발총성과 함께 쓰러졌다.


뒤에 따라가던 대원 한명도 다리 부상을 입었다.
멜콤과 다른 유격대원들은 다시 옥상으로 뛰어 나왔다.


그는 의무병을 불러 부상자를 치료하게 한 뒤
계단 아래로 수류탄을 던져 넣고 문을 닫았다.
폭발소리와 함께 문짝이 부서지면서 연기가 솟아 올랐다.
다시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포대의 내부는 엉망이었다.
멜콤이 던진 수류탄에 두 명의 북한군이 엉켜 쓰러져 있었다.
곧 그는 내부를 다 소탕해버린 다른 유격대원들을 만났다.


짧았지만 격렬했던 전투였다.


멜콤은 공습이나 함포 사격에는 전혀 손상당하지 않을만큼
견고하게
지어진 포대 구조에 놀랐다.


폭파를 담당할 유격대원들은 연습했던 대로
콘크리트 천정에 드릴로 구멍들을 뚫어 C3 폭약을 장치하고
진흙으로 구멍을 틀어막았다.


유격대원들과 멜콤은 76밀리 포가 있는 동굴에서
박 대장을 만났다.
박 대장은 부하를 시켜 포신에 폭약을 장치하는 작업을
감독하고 있었다.

박 대장은 그 포를 끌고 월내도 가지고 가고 싶어 했지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불가능한 생각이었다.

이 포는 일 년 이상 월내도의 유격대를 괴롭혔다.
사람과 가축을 죽이고 사는 집들을 파괴하였다.


박 대장은 폭파 준비가 끝나자 대원들에게 모두 포대를
떠나라고
전달했다.
대원들은 산 남쪽으로 이동했다.


그 곳에서 앞 바다에 떠있는 영국 구축함이 아주 잘 보였다.
멜콤은 그 구축함에 있는 다이 소령에게 포대가 점령되었으며
곧 폭파 될 것이라고 보고했다.


대원들이 대피한 뒤 먼저 76미리 포가 폭파되었다.
포신이 폭파되고 폐쇄기와 포 다리가 박살났다.
포는 다시는 사용 할 수없는 폐품이 되었다.


소련제 76미리 사단포. 월미도에서도 해안포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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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미리 포가 완전 파괴 된 것을 확인한 유격대는
포대 전체를 폭파했다.
귀를 찢는 폭음과 함께 돌맹이와 먼지가 하늘 높이 일면서
포대가 층층이 차례로 무너져 내렸다.
마치 침몰하는 배를 보는 기분이었다.


산꼭대기에 우뚝 솟아있던 포대는 흔적도 없어지고
움푹 팬 폐허만 먼지 속에 보일뿐이었다.
포대가 없어진 덕에 산은 6미터 정도가 낮아졌다.
월내 도를 밤낮 괴롭히던 포대는 지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포대와 같이 우뚝 솟아 있던 다른 산봉우리에 설치된
중기관총좌를 공격하고 있던 다른 유격대 부대가 치열한
사격으로 철조망 지대를 통과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포대를 파괴한 유격대는 이들을 도와 그 진지를
파괴하여야 했다.


유격대는 우회해서 서쪽의 다른 작은 고지로 올라갔다.
멜콤이 포복으로 올라가 그 고지에서 살펴보니 중 기관총
진지는
완전히 콘크리트로 휘 감싸인 벙커, 즉 토치카였다.


장치된 기관총도 경기관총이 아니라 12.7미리 다쉬카
중기관총이었다.
해변과 해상의 장거리 목표를 때리기 위해서 설치
한 것일 것이다.


유격대가 파괴한 중기관총 12.7미리 다쉬카  탱크 기관총이나
대공 기관총으로도 많이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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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치카는 콘크리트로 요새화 한 것만이 아니었다.
사방을 여섯 겹의 철조망으로 둘렀고 그것도 부족해서
지뢰를 둘러서 촘촘히 심어서 난공불락의 소요새로 만들어놓았다.
이 토치카 공격을 담당한 공격조는 기관총 사격 때문에 철조망
밖에서 꼼짝을 못하고 있었다.


멜콤은 이럴 경우를 예상해서 가져온 공병용 폭파봉을
가져오라고 외쳤다.
[이 공병용 폭파봉은 폭파용 TNT를 채워 넣은 굵은 수도 파이프
같은 것으로 철조망지대나 기타 장애물 지대에 여러 개를
여러개를 연결하여 밀어 넣어 놓고 폭파시켜 통로를 연다.]


하지만 토치카에서 여전히 퍼부어대는 빗발 같은 기관총탄은
폭파조의 철조망 접근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멜콤은 다시 불독을 불러서 항공지원을 요청했다.
불독으로부터 알았다는 답신을 받고 그는 엠원 총을 빌려
토치카 쪽에
연막탄을 쏘았다.
콜세어들이 목표를 쉽게 식별 할 수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발사된 연막탄은 토치카 위에 떨어져 흰 연막을 뿜기 시작했다.

2분도 안되어 콜세어들이 나타났다.

콜세어들은 땅에 붙듯이 저공으로 접근해와서 기총탄을
뿌리고 지나갔다.
너무 저공으로 날아 프로펠러의 회전에 지상의 흙먼지가
회오리처럼 일었다.
토치카 주변의 북한군은 사방으로 피신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폭파조가 철조망 지대에 폭파봉을
밀어 넣었다.
폭발과 함께 철조망에 커다란 통로가 생겼다.

세 번째 콜세어가 기총소사를 하며 스쳐가는 순간을 이용해서
유격대는 그 통로로 쏟아져 들어갔다.
적의 기관총은 더욱 기승을 부렸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폭파조 2명이 대전차 지뢰를 투척용 대형 수류탄으로
개조한 폭탄을 들고 기관총좌에 돌격했다.
2인조는 기관총좌 몇 미터 앞에 까지 바짝 달려가서 폭탄을 던졌다.


폭발은 어마어마했다.
토치카의 천정이 콘크리트 조각이 되어 공중으로 비산해버렸다.
이 예상 못한 대 폭발에 두 폭파 요원도 뒤로 날아가 즉사해버렸다.
대원들이 완전 파괴된 토치카로 접근하려고 시도하는 중에도
폭발은 연속적으로 발생했다.
땅이 심하게 흔들렸다.


드디어 마지막으로 거대 폭발이 일어나면서 토치카 옆
동쪽 부분이
그대로 날아가 큼직한 구덩이가 하나 생겼다.


유격대는 두 사람의 희생으로 북한군의 탄약 창고를
예상치 않게
날려버린 것이다.

유격대는 다 부서진 토치카 안으로 뛰어들었다.
순간 갑자기 토치카 옆의 작은 방공호에서 북한군 두 명이
뛰쳐나와
따발총을 난사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멜콤을 따르던 통신병이 다리에 총상을
입고 쓰려졌다.


멜콤은 반사적으로 땅에 엎드려서 칼빈 소총으로
이들에게 응사했다.
유격대 4명도 그와 합세했다.
따발총을 난사하던 두 명의 북한군들은 벌집이 되어 그들이
뛰쳐나왔던 방공호 안으로 다시 쓰러졌다.

유격대는 마무리를 위해서 수류탄을 그 방공호에 던져 넣었다.


두 강력한 진지가 파괴되었다.
주요 작전 목표는 달성 되었다.

 


유격대는 전장 정리를 하며 가져갈 무기나 군수품,
정보자료등을
챙기기 시작했다.

멜콤은 불독에 작전 성공을 보고하고 해상에서 기다리는
배에 승선하여 
곧 귀대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백호 부대원- 고향 수복을 꿈꾸며 열심히 싸웠지만
전쟁후 이들에 대한 정부의 처우가 야박한 점이 없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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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교신 뒤 갑자기 불독에서 호출이 왔다.
상공을 선회 중이던 콜세어가 1마일 남쪽에서 유격대쪽으로
접근하고 있던 80명 정도의 북한군 증원군 병력을 발견했다는
긴급 정보였다.
이들은 덕동포 후방 홍가리에서 달려오는 부대였다.


멜콤는 아차했다.

이 덕동포 포대 지역을 방어하는 북한군 부대는 대대 병력이었다.
비록 유격대가 포대와 토치카를 파괴 했지만 대대의
대다수 병력은
아직 온전히 보전 된 상태였을 것이었다.
공격작전 내내 그 사실이 마음에 걸렸는데 드디어 그 주력이
나타 난 것이다.

멜콤은 급히 박대장과 탈출 작전을 의논했다,.

그러나 몇마디 말이 오고 가기도 전에 요새를 둘러싼 동쪽과
남쪽 숲속에서 콩 볶는 총소리가 나며 실탄들이 비 오듯
쏟아져 왔다.


그 방향은 유격대가 해안으로 가는 철수 예정로였다.
콜세어가 본 북한군들은 지원 부대였었고 그 선발부대는
유격대가 포대와 토치카 공격에 전력을
다하고 있을 때
유격대를 차단할 포위망을 이미 은밀히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작전 뒤 유격대를 데려갈 월내도의 범선들은 점점
해안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범선들은 2,3분이면 북한군의 사정거리에 도달할 것 같았다.


멜콤은 박 대장에게 외쳐서 범선들을 후퇴 시켰다.
박 대장은 범선들과 교신할 무전기를 가지고 있었다.

배들은 안전한 남쪽 해상으로 물러나 천천히 선회하였다.

멜콤은 빗발치는 적들의 사격에 응사하면서 상황을 살폈다.
박 대장에게 먼저 그의 계획을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북한군의 일제 사격에 다른 참호로 대피했던 박 대장에게
포복으로 기어갔다.

그러나 박 대장은 더욱 가슴 철렁한 말을 했다.

“ 15분 내에 이곳에서 빠져 나가야 합니다.
만조는 곧 끝납니다. 저 범선들은 만조가
아니면
이쪽 해안에 접안하지를 못합니다.“


멜콤 중위와 박철 대장-멜콤에게는 단순한 어부로만 자기소개를
했지만 장연군 치안대장과 군수까지 했던 분으로
본명이 최 문여씨다.-한국 전쟁의 유격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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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습 성공에 만족했던 짧은 시간에 유격대원들도 모르게
전멸당할
수도 있는 최대의 위기에 빠져 버린 것이다.

적들의 사격은 점점 강도가 높아졌다.
병력 증강이
시시각각으로 되는 것 같았다.


멜콤은 결단을 내렸다.

“ 항공지원을 받아서 적의 포위망을 정면 돌파하자.”

방법은 그것 밖에 없었다.
박 대장도 동의했다.
유격대를 구해줄 구세주는 바다 상공에서 선회하는
콜세어들 밖에 없었다.

적과 거리가 가까워서 기총 소사시 유격대도 위험했다.
멜콤은 유격대원들이 소지했던 대공포판을 모두 꺼내서
아군의 위치를 표시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는 불독을 호출했다.

“ 불독, 여기는 레이블, 세 기(機)의 연속적인 공격을 2회
 요청한다.
마지막 기는 우리 상공 3미터 상공으로 진입하면서 
 기총 소사를
해주기 바란다. 
 이때 우리가 적진을 돌파한다.이상! “


불독은 5분내에 지원이 있을 것을 약속했다.
멜콤은 박 대장을 통해서 전투기의 내습이 있을 것을
전 대원들에게 알려주고 기다렸다.

콜세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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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의 사격은 너무 치열해져서 유격대원들은 참호 밖으로
머리를 들
엄두도 내지를 못했다.

일각이 여삼추 같을 때 멀리서 전투기의 폭음이 들려왔다.
유격대원 모두는 총을 움켜쥐고 단단히 준비했다.
마침내 첫 번째 콜세어 전투기가 상공으로 들어오며
적에게 기총과 로케트 탄을 선사했다.

세 기의 전투기가 연속으로 공격을 하는 동안 공격당하는
앞의 적진으로부터 폭음과 함께 무수한 흙먼지와 돌조각들이
유격대 진지로 날아왔다.


콜세어 F4U-  덕동포대  전투에 큰 활약을 한 로케트 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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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흙더미에 묻혀 죽을 것 같았다.
콜세어들의 공격 통과가 있을 때마다 적 사상자의 비명이
처절하게 날아왔다.

콜세어 들의 공격이 끝나자 멜콤은 머리를 들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적진은 먼지와 연기가 자욱했다.
꺾어진 나뭇가지가 무수하게 땅에 널려있었다.

100미터 떨어진 곳에 몇 구의 북한군 시체가 보였다.
다시 선회한 콜세어 기들이 연달아 지나가며 기총소사와
로케트 폭격을 했다.

콜세어 편대가 세 번째 공격을 할 때 멜콤은 박대장에게
연락하고
탈출할 준비를 했다.


그는 첫 번째 콜세어가 기총소사를 하고 통과 한 뒤
참호에서 일어나 신호를 했다.

유격대원들도 참호에서 전원 뛰어 나왔다.

그리고 북한군이 포위선을 치고 있는 남쪽을 향하여
죽을힘을
다하여 뛰었다.결사적인 돌격이었다.


두 번째 콜세어가 유격대와 달음질 경쟁이나 하듯이
날아오면서
정면의 북한군을 강타했다.

콜세어의 무서운 기세에 겁을 먹은 몇몇 유격대원들이
땅에 엎드렸다.
멜콤은 그들에게 지체하지 말고 계속 뛰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 남쪽 방향은 배들이 기다리는 해변으로 가는 최단거리였지만
아까 콜세어가 발견했던 북한군 증원 병력이 배치되어서
새로운 차단선이자 포위망을 치고 있었다.

그들은 기존 참호 안에 머리를 박고서 공습을 피하고 있다가
유격대가 10미터 앞에 도착했을 때 머리를 들었다.


백여 명의 유격대가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것을 본
북한군은 크게 놀랐다.


그들은 주춤했지만 유격대가 3 미터 앞에 왔을 때
쇄도하는 그들에게
기관총 사격을 개시했다.

이 근거리에서의 기관총 사격에 박대장의 참모장 송 성일씨가
다리에
부상을 입고 쓰러졌으며 두 명의 대원이 전사했다.


다른 몇 명도 총탄에 부상당했다.
기관총의 소리는 일이초 뒤에 정지했다.

파도같이 몰려온 유격대원들이 참호속의 그들을 덮치듯
타격했기 때문이다.

몇 초 동안 허공은 북한군의 비명소리와 이들을 타격하는
개머리판의 둔탁한 소리와 총성으로 가득 찼다.
참호속의 북한군은 거의 궤멸되어 버렸다


이제 해변까지 2킬로를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유격대는 북쪽과 서쪽의 북한군 진지에서
여전히
소총 사격을 받고 있었다.


멜콤은 무전기로 불독을 다시 불렀다.
그에게 아군 철수로를 좌표로 알려주며
함포 사격과 공중 공격 지원을 동시에 요청했다.


유격대는 축차 철수방법으로 두 개 분대를 엄호 부대로
남겨놓고
두 번째 엄호 분대를 그 곳에서 800미터 떨어진
곳까지 철수해서 다시 배치했다.


첫 번째 엄호부대는 전대원의 철수를 완전하게 엄호하고
두 번째 엄호부대의 엄호를 받으며 철수했다.


멜콤은 철수로 마지막 해안쪽 남쪽 능선에서 마지막
엄호조의
철수를 기다렸다.
다른 유격대원들을 해안으로 질주했다.


그는 시계를 보았다.
오전 7시 30 분이었다.

영국 구축함이 첫 탄을 발사한 4시 30분부터 정확히
세 시간 밖에 지
나지 않았으나 사흘이 지난 것 같았다.

콜세어 전투기들이 다시 돌아와 추격하는 북한군을
폭격했지만 그
들의 추격은 집요했다.



영국 구축함 온슬로우[작전 참가 함은 아님 - 영국 구축함들은
미국 구축함보다 약간 작았다.1500톤 대 2300톤] 덕동포 포대
습격 유격대를 지원한 함포는 4.7인치 포로 추측된다.
[ 미 구축함은 5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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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공격과 함포 공격이 가세하자 추격은 약간 주춤해졌다.
그 사이 유격대는 도착 순서대로 범선을 타고 출발하였다

예상 밖의 일이 터졌다.
30여명의 묵한 주민들이 이 난리 속에서 이삿짐을 싸가지고
몰려나와 동
행을 요청한 것이다.

유격대는 인원이 너무 많아서
그들을 단지 열 명만 태울 수밖에 없었다.
박 대장은 며칠 뒤 반드시 나머지 사람들을 데리러 오겠다고
성의껏 달래서 그들을 돌려보냈다.
힘없이 돌아가는 그들을 보는 것은 보기에도 안 된 노릇이었다.


멜콤의 마지막 배가 해안을 떠나려고 했지만 또 문제가 생겼다.
바람이 멈춰 서버린 것이었다.
범선은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인데 정말 낭패였다.


폭격과 포격을 무릅쓰고 유격대를 추적해온 북한군이 해변의
낮은 둔덕에 자리를 잡고 배에 엄청난 화력을 퍼부어댔다.


범선은 뱃전에 두께 20센티의 두꺼운 판자를 둘러서 그럭저럭
소총탄을 막을 수가 있었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물이 들어왔다.


사격은 구멍을 낼 뿐만 아니라 펼쳐놓은 돛대를 마구 뚫어서
사용할 수 없는 상태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배 이물과 고물에 설치한 노를 이용해서 해변을 떠나려고 했으나
배에 실은 전리품의 무게와 북한군이 쏴대는 사격으로 
그것이 여의치 않았다.


기습당한 충격에서 벗어나 해변으로 달려 나오는 북한군이
점점 늘어났다. 몰려오는 모습이 벌떼 같았다.


목이 바짝바짝 타는 긴장감속에서 유격대는 심장이 멈추는
광경을 보았다.
박격포탄들이 범선 주변에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모두 끝장인가 하는 순간 앞 바다에 달려온 영국 구축함이
근거리 포격으로 
박격포 진지를 날려 버렸다.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백호 부대원들이 사용하던 범선- 장산곶 앞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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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다가온 구축함은 범선을 공격하는 북한군들에게 포탄을 안겼다.
드디어 바람이 불어오며 배는 해변을 떠났다.
배가 북한군의 사거리를 벗어나자 안심한 유격대원들은
갑판위에서
소란하게 춤을 추며 무사한 철수를 즐겼다.


돌아오는 도중에 해상에서 멜콤은 화력지원을 해준
영국 구축함에
들러 고마움을 표하고 노획한 경기관총
한정을 선물했다


유격대는 월내도로 돌아와 대기했던 다른 대원들과 주민들의
어마어마한
환영을 받았다.


대원들과 주민들은 박대장과 멜콤을 무등 태우고
해변을
질주하며 공격 성공을 자축했다.


멜콤과 유격대 지휘관들은 전과 분석에 들어갔다.
유격대와 영 구축함과 콜세어 전투기들이 합동작전을
벌여 적에게 준 타격은 막대했다.


적 225명이 사살되었고 중상을 입고 후송된 부상자는 27명이었다.
유감스러웠지만 아군의 전사자도 여섯 명이 나왔고 부상자도
7명이 발생했다. 세명은 중상자였다.


파괴된 무기와 노획된 무기는 76밀리 포와 중기관총 2정을
포함해서 기관총과 소총, 권총등이 수백정이 되었다.
이 무기들은 월내도 백호 부대의 무장을 대폭 증강해줄 것이었다.


무기 외에 포대와 토치카에서 수집해온 여러 서류는 귀중한
정보를
제공했다.
황해도 서부에 위치한 적 군사기지와 병력과 장비등이
자세히 기재된 정보는 서울로 보내져 공군과 해군의 귀중한
공격
자료가 되게 했다.


이런 군사적인 노획물외에 북한군으로부터 탈취해온 소가
여섯 마리가
있었다.

이 소들은 배에 묶여서 해협을 헤엄쳐 끌려왔다.
밤낮없는 포격에 시달리다가 유격대의 활약으로 평화를 누리게 된
월내도 유격대 가족들에게 또 다른 선물이 되었을 것이다.


멜콤 중위는 이 포대 파괴 성공으로 미국 정부에서
은성 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한국 전쟁중 한국군 지휘관과 미 고문관 사이가 원만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었고 한국군을 경멸하고 임무를 소극적으로
한 못된 고문관들도
있었다.


그러나 맬콤 중위와 유격대의 유대는 전우애로 뭉쳐진 것이었다.
그는 소령 때인 1963년 월남으로 전속되어 월남군 23보병사단의
인사 참모부 고문관으로 근무했다.
정규군이었던 월남군은 그를 크게 실망시켰다.


----월남군의 첫 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10여년전에 함께 일했던 한국 유격대원들이 훨씬
더 감명을
주는 전사들이었다.

그들은 가족을 구하고 조국을 되찾아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대의를 위해서 싸웠다면 월남군들에게서 그와 같은
전의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많은 월남 군인들은 징집되어 입대한 사람들로서 그들의
나라보다는
자신들의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1972년 대령이 된 그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미 제 2사단의
여단장으로 2년을 근무했다.

그는 인맥을 동원해서 박대장등의 백호부대 전우들을 찾았지만
성공하지 못한것을 유감으로 생각했다..


책의 자기 소개에 의하면 그는 전역 후 성공적인 기업인이 되었다.
그의 저서는 한국의 백호부대 전우회가 국방 전사 편찬 연구소에
의뢰해서 번역 출간된 것을 다행히 그와 전우회가 접촉이
되어 해후를 한듯하다.

청춘에 헤어져 백발이 되어 만난
전우들이니 감회가 더욱 깊었을  것이다.

            

 

 

 

 

출처 : 봉래산
글쓴이 : 봉래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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