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 '애도의 정치화'에 반감
노(盧)에 대한 연민서 조문… 야(野) 거리정치 지속 명분잃어
정치권, 민심 못 읽으면 언제든 폭발할 가능성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화물연대·쌍용차 투쟁승리 결의대회'에서 민주노총 임성규 위원장은 "지금 국민의 힘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몰아낼 수 있다"고 외쳤다. 노무현 전 대통령 '조문정국'의 동력을 '이명박 정부 퇴진운동'으로 이어가겠다는 선언이었다.그러나 '야심 찬' 구호를 뒷받침하기에 집회 규모는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참석 인원은 지도부가 당초 예상했던 1만명에 턱없이 모자라는 2500명(경찰 추산)이었다. 이날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경찰폭력 규탄 촛불문화제' 참여인원도 1600명 정도였다. '최소 5만명'이었던 경찰의 예상치를 크게 밑돌았다.
11일 시작된 화물연대 총파업도 닷새 만에 종료됐다. 파업 참여 차량은 11일과 12일 각각 46대와 56대였고, 주말인 13~14일에는 단 한 대도 참여하지 않았다.
- ▲ 조문 열기가 예상보다 빨리 사그라지고 있다. 지난 6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200여명의 시민들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다.
조문정국의 성격 자체가 오해됐다는 지적이 우선 나온다. 이내영 고려대 교수는 "조문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시였는데 현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지나치게 확대해석된 점이 있다"고 했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는 "애도는 감정을 분출하는 것이라 오래가기 어렵고, 작년 미국 쇠고기 수입 논란 때처럼 정부에 요구할 뚜렷한 목표가 없기 때문에 조문정국 분위기를 지속할 동인이 없다"고 말했다.
야당과 좌파가 노 전 대통령의 예기치 않은, 극적인 죽음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을 '노무현식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으로 잘못 이해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한 것이 착각이라는 분석도 있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는 "국민들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서민 대통령의 죽음을 슬퍼하고 인간적인 측면에서 조문할 순 있지만, 노무현 정부에 대한 과거의 실망감 때문에 조문정국이 정치화되는 것은 꺼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계의 경우도 현장 조합원들 사이에서 '추모 동참'과 '파업 참여'는 별개라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한 자동차 업체 노조 조합원 이모(42)씨는 "노 전 대통령 조문엔 자발적으로 참여했지만 불경기 탓에 공장 가동률이 70%로 떨어진 상황에서 총연맹이 주도하는 집회에 참여하는 것은 내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을 배척하고 단절을 시도하던 민주당이 마치 상주인 듯 나선 것이 거부감을 불러 일으켰다는 견해도 있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는 "민주당이 조문정국을 이어가려는 불쏘시개를 들고 나왔기 때문에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했다.
'과도한 집회·시위 피로감'도 한 요인이다. 임성호 경희대 교수는 "집회 피로증이 누적돼 국민들이 지쳤기 때문"이라고 봤다. 이정희 외국어대 교수는 "효순·미선양 추모 등 다른 이슈까지 개입되면서 혼란스러워지자 시민들이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고 했다. "1987년 이후 민주화 경험을 통해 국민들은 이제 어느 정도가 적정수준인지 판단할 수 있는 역량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거리에서 아무리 외쳐도 꿈쩍 않는 이명박 정부의 '민심 불감증'도 한 요인일 것이라는 정반대 해석도 더해진다. 송호근 교수는 "이명박 정부를 성벽처럼 느끼는 분위기 때문에 국민들이 거리에 나가 반향도 없을 소리를 지르느니 아예 정치적인 의사표현의 의지를 거둔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조문정국의 열기가 6월로 곧장 이어지는 흐름은 아니지만, 끝난 것이 아니라 물밑으로 숨어들었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많다. 언제든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장훈 중앙대 교수는 "현 정부에도 불만이고 진보 야당과 정치에 대해 실망하는 등 제도권 정치 전체가 불신당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치권이 조문정국에서 드러난 민심을 읽지 못하고, 국회를 통해서 국민들의 멍든 가슴을 풀어주지 못하면 광장의 정치는 언제든지 재개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