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호명가를 찾아서]떡 산업계의 ‘지존’ 명성 이어간다 |
사랑방 기능 겸한 퓨전 카페 프랜차이즈 ‘도전장’ 쌀·고물재료로 승부…5년내 전국 1천곳 오픈 목표 평동산단에 대규모 공장 추진…세계무대 진출 발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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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창억떡집 ‘예다손’
“보기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더라”
한민족이 떡을 먹기 시작한 것은 원시농경 때부터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떡은 흔히 관혼상제의 의식 때나 명절, 아기의 백일이나 돌, 생일·회갑 등 큰 행사때나 먹을 수 있었던 잔치음식으로 통했다.
이같은 떡의 이미지가 완전 바뀌었다. 언제 어디서나, 아무때고 손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된 대표 간식거리가 됐다.
호남지역 대표 떡 전문업체인 창억떡집이 ‘떡카페 프랜차이즈 사업’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창억떡집은 ‘예다손’이라는 브랜드를 통해 국내를 대표하는 떡 생산업체로 이미지를 굳혀나간다는 각오다.
◇프랜차이즈 사업 도전
창억떡집의 떡카페 ‘예다손’은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개발한 기능성떡과 각종 떡케익 등과 함께 식혜, 메밀차, 커피, 라떼, 밀크세이크 등의 음료를 판매하는 퓨전 카페다.
단순히 떡만 구입해 가는 곳을 넘어 휴식을 취할 수 있고, 눈요기거리는 물론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찾아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랑방’ 기능까지 겸한 공간을 만들어 냈다.
수십가지의 떡 종류를 진열해 놓고 4∼5가지 떡과 음료를 곁들여도 3천∼5천원 수준으로 저렴하게 맞춰 중년층은 물론 신세대, 어린아이들의 입맛까지 사로잡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창억떡집은 프랜차이즈사업을 출범하면서 일회용 종이시루를 개발해 주문후 바로 떡을 쪄 고객들에게 제공한다는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
창억떡집은 올해 전국에 100여개의 프랜차이즈점을 내는 데 이어 향후 2년내 500개로 대폭 확대해 갈 계획이다.
이를 통해 현재 연매출 80억원을 150억원 이상으로 늘린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또 전통떡의 세계화를 위해 미국과 일본시장 진출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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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억의 성장 과정
창업떡집은 지난 1965년 현 임철한 대표의 부친인 임창억씨가 광주 동구 동명동에 자신의 이름을 딴 ‘창억’ 떡집을 연 이래 44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당시만 해도 동네 떡집에 불과했던 ‘창억’은 지난 2002년 현 임 대표가 부친의 뒤를 이어 경영을 맡으면서 ‘기업’으로의 성장을 이어갔다.
임 대표는 창억의 경영을 맡기까지 힘든 경영수업 과정을 거쳤으며 이 과정에서 대전에 지점을 내 창억이 전국에 이름을 알리는 교두보 역할을 하기도 했다.
창억은 현재 대전 지점을 비롯해 광주 동구 동명동 지점, 현 북구 중흥동 본점, 서구 치평동 지점 등 4곳에 점포를 두고 있으며 지난 2월 광주 남구 봉선동에 프랜차이즈 떡카페 브랜드인 ‘예다손’ 1호점을 개점했다.
지난해 문을 연 중흥동 본점은 지상 5층 연면적 4천950여㎡ 규모의 초대형 생산시설과 전시판매장을 갖추고 있다.
체인점이 늘어날 것을 대비해 광주 평동산단에 1만여㎡(3천여평) 대규모 공장도 건립할 계획이다. 투자 금액은 1천억원에 달한다.
예다손은 광주·전남지역 사업영역을 발판으로 향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까지 진출해 향후 5년내 전국에 1천개 이상의 가맹점을 오픈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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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억’의 성공비결
창억떡은 광주를 넘어 ‘한국떡의 역사’로 일컬어진다.
미니기정떡, 호박인절미, 팥앙금으로 만든 팥설기, 깨녹두떡, 떡선물세트 등을 국내 최초로 개발했으며 구름떡과 떡케익은 호남지역에 처음으로 선보였다. 3대를 이어온 맛의 노하우로 흑미, 인삼 설기 등 70여종의 떡을 개발해 둔 상태다.
임 대표는 떡 원재료와 고물 재료로 승부를 걸었다.
수십년동안 간척지 등의 좋은 나락을 구해 바로 찧은 쌀을 재료로 쓰고 묵은 쌀은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맛을 좌우하는 고물 역시 비싸도 좋은 것만 엄선해 사용한다.
특히 떡을 만든 후 4시간이내 배달은 물론 다양한 상품개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품질관리, 안내 콜센터 운영 등도 창억떡을 전국화로 진출하게 한 성공요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하반기 광주은행이 지역의 명가를 선정해 지원하는 ‘소호명가’ 1호업체로 지정된 것도 창억의 제품 경쟁력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이승준 기자 lsj@namdonews.com
/이보람 기자 white4@namdonews.com 이보람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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