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테러' 논의는 안한채 여(與), 국정원 관련법 강행 준비
야(野), '사이버 북풍(北風) 의혹' 공세
여야 정치권이 한국과 미국 주요 기관들의 인터넷 사이트가 북한 소행으로 추정되는 사이버 테러 공격을 받는 초유의 사태까지도 정쟁(政爭)의 소재로 삼는 한심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국가 주요 기관의 통신망이 동시다발적으로 마비되는, 영화 속에서나 보던 국가 비상 상황이 발생했는데도 국회차원의 진상 파악과 대책 마련은 뒷전으로 밀려났다.한나라당은 이번 기회를 그간 손 놓고 있던 국가정보원 관련 4대 법안들을 밀어붙일 호기(好機)로 활용하려는 반면 민주당은 '정보기관에 의한 사이버 북풍(北風) 의혹'을 제기하며 대여 공세의 빌미로 삼을 태세다.
한나라당 공성진 최고위원은 9일 자신이 지난해 말 대표 발의했던 '사이버위기관리법' 처리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 법안은 국가와 공공기관, 주요 정보통신 기반시설 관리기관, 국가 핵심기술 보유 연구기관에 사이버 위기 예방 및 대응조치를 의무화하고, 사이버 위기가 발생할 경우 국가정보원장이 사이버위기대책본부를 구성해 관계기관에 인력과 장비 제공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 ▲ 열리지 못한 정보委최근‘사이버 테러’사태를 다뤄야 할 국회의 주관 상임위는 정보위이다. 그러나 정보위는 이날 회의 일정을 잡아 놓고서도‘여야간 의사일정 미합의’를 이유로 열리지 않았다. 대신 여야는 장외에서‘사이버 북풍’공방전을 벌였다. 참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 정치권이다./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한나라당은 이 법안과 함께 ▲국정원법 ▲비밀보호관리법 ▲대(對)테러활동법의 '패키지 제·개정'을 집권 초부터 추진해 왔지만 민주당과 시민단체의 반대를 의식해 처리를 강행하진 못했다.
민주당 등은 그동안 "국정원 기능을 강화해 '빅 브라더'로 만들려는 MB 악법"이라며 반대해 왔다.
그런데 이번 사태가 터지자 한나라당은 뒤늦게 이들 법안 추진에 의욕을 보이는 분위기이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이번 사이버 테러가 법안 처리에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국정원이 사이버테러 배후로 북한이나 종북(從北) 세력을 지목한 것을 문제 삼으며 '사이버 북풍 의혹' 제기했다. 이강래 원내대표는 "국정원이 아무런 근거도 제시 못 한 채 북한 관련 추정설을 내놔, '사이버 북풍'이 오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감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이 원내대표는 또 "일부 네티즌 사이에선 정부의 자작극설마저 나돌고 있는 만큼 정확한 실태 파악이 이뤄지고 보완 대책도 만들어져야 한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이날 예정됐던 국정원의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는 여야 간 의사일정이 합의되지 않아 취소됐다. 긴급한 현안이 있는데도 민주당은 "등원 거부 방침이 유효하다"며 참여를 거부했고, 한나라당도 기다렸다는 듯 "단독으로는 하지 않겠다"고 나섰다.
숙명여대 도준호 교수(언론정보학과)는 "사이버 인프라는 전기·수도와 같은 국가 기반시설"이라며 "국가 기관을 중심으로 한 대응체계를 만들고 이를 뒷받침할 법제화가 시급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