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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인 '인생역전' 스타들...탤런트 김해숙

화이트보스 2009. 7. 19. 17:10

극적인 '인생역전' 스타들...탤런트 김해숙

입력 : 2009.07.19 14:47 / 수정 : 2009.07.19 16:39

 Don't cry for me Argentina. The truth is I never left you…. 많은 이의 귀에 익은 뮤지컬 에비타의 주제가다. 아르헨티나의 퍼스트레이디였던 에바 페론의 불꽃 같은 인생을 그린 뮤지컬이다. '거룩한 악녀이자 천한 성녀'로 대변되는 에바는 1915년 초원의 농장에서 가난한 사생아로 태어났다. 피가 뜨거운 에바는 15세가 되던 해 옷 하나 달랑 들고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간다. 그리고는 빼어난 미모와 타고난 끼를 무기로 나이트클럽 댄서, 성우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한다. 자신을 꼬마 에바란 뜻의 '에비타'로 부르며. 삼류 배우로 활동하던 어느 날 당대 실력자인 후안 페론을 만났고,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며 일약 퍼스트레이디로 거듭난다. 드라마 같은 그녀의 삶은 지금까지도 인생 역전의 표본으로 꼽힌다. 인생 역전 사례는 요즘도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사업 실패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억척스럽게 재기해 '국민 어머니'로 자리매김한 탤런트 김해숙. 나이트클럽 웨이터, 골프연습장 심부름꾼 등 잡초 같은 인생을 살다 PGA를 점령한 양용은. 연습생 출신으로 최근 올스타전 역대 최다득표의 신화를 만들어낸 프로야구 두산의 김현수. 삶이 힘겨워 고교 시절 두 차례나 자살을 기도했던 '기부천사' 가수 김장훈. '토크쇼의 여왕'으로 군림하는 오프라 윈프리는 사생아로 태어나 9세 때 강간을 당하고, 14세에 미혼모가 되는 지옥 같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세기의 작가 조앤 K 롤링은 '해리 포터'가 태어나기 전까지 정부 보조금으로 버티며 동네 카페에서 원고를 썼다. ……. 가히 심장을 고동치게 하는 얘기들이다. 더러는 인생 역전을 '대박'이나 '한방'과 결부시키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 뿌려진 땀과 눈물은 사람들에게 강력한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특히 요즘 같이 어려운 시기에는 더욱.


 


절망과 눈물이 '국민어머니'를 더 강하게 했다.


 탤런트 김해숙은 공인된 '국민 어머니'다.

연기력 운운하기가 낯간지러운 그런 존재로 자리매김해 있다. 영화면 영화, 드라마면 드라마, 무대와 장르를 가리지도 않는다. 어떤 내용, 어떤 배경에 올려놔도 모래에 물 스미듯 스르르 흡수된다.

'국민 어머니'란 애칭이 그냥 생긴 게 아니다. 올해 쉰넷이니 앞으로도 많은 세월을 모두의 어머니로 살아갈 게 뻔하다. 연기자로 태어나 하나의 똑 떨어지는 캐릭터, 한 분야의 간판으로 인정받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그러한 선명한 캐릭터가 때로는 배역 선택의 폭을 좁힌다는 이견도 없잖으나 MBC 아침드라마 '하얀거짓말'에서 분위기를 바꿨고, 영화 '박쥐'로 또 다른 색깔도 보여줬다.

그렇다면 그녀의 내면은 어떨까. 어떠한 정서가 그녀를 움직이고, 어떠한 힘이 최고의 연기로 표출되는 것일까. 어쩌면 그녀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역전 인생이 연기로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해숙은 한강 다리 난간에 서 본 적이 있다. 진짜 죽으려고. 벌써 10여 년 전 일이다. 경기도 일산에서 부업으로 시작한 한식 뷔페 사업이 망했을 때 얘기다. 대박을 꿈꾸며 펼친 판이 내리막을 달렸고, 그 끝조차 보이지 않았다. 집어넣은 돈이 제법 컸다. 어떻게든 살려야 했기에 드라마를 포기하면서까지 매달렸다.

하지만, 내리막에 가속만 붙을 뿐이었다. 더는 길이 보이지 않았고, 빚쟁이들의 핏발선 아우성은 밤낮없이 숨통을 조였다. 어느 날 기자와 마주앉아 영화 얘기를 나누던 김해숙은 "아무한테도 하지 않았던 얘기"라며 뒤늦게 눈물을 쏟아냈다.

"1500원짜리 방송사 구내식당 식권조차 살 돈이 없어 굶기도 참 많이 굶었어요. 정말 무섭고, 힘들고, 자신도 없어지더라고요."

어머니와 두 딸 생각에 참고 또 참고, 버티고 또 버티다 기어이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죽자고.

한강으로 갔다. 그나마 집이 한강 근처인 게 다행이었다. 죽으러 갈 차비조차 없었으니 말이다.

"자살하는 사람 보고 사람들은 그러죠. 왜 죽냐고. 죽을 힘으로, 죽을 각오로 뭘 못하냐고. 그런데 그게 아니에요. 오죽하면 부모 자식 버리고 목숨을 던질까요."

모질게 마음먹고 집을 나섰지만 차마 난간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어머니와 아이들을 저버릴 만큼 심성이 독하지는 못했던 게다. 목숨 붙여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금니 물고 세 가지를 다짐했다.

울지 말자. 술 먹지 말자. 음악 듣지 말자. 마음을 무르게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버렸다. 학창시절 열정적으로 두드리며 음악가의 꿈을 키웠던 손때 묻은 피아노까지 없앴다. 오로지 독해져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먹고 살자면 도리 없었다.

"8년을 그렇게 살고 나니 숨통이 트이더군요. 그때 비로소 울었어요. 음악도 다시 듣고. 하지만, 그 후로도 술은 거의 입에 대지 않았어요."

올해로 연기 생활 36년째. 삶 자체가 된 그녀의 연기는 이미 평가의 대상은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상상력도 경험을 넘지는 못한다. 어쩌면 그녀의 농익은 연기력이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얻은 내공이 아닐까 싶다.

삶과 희망의 끝자락에 서보지 않았던들, 숨통을 끊는 참담한 실패를 이겨내지 못했던들 '국민 어머니'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한때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절망이 오늘도 그녀의 연기를 더 깊고 진하게 우려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