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비핵-평화' 빅딜에 나설때다
 |
질문하시죠
(푸껫=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힐러리 클린턴 미국무장관이 23일 태국 푸껫 쉐라톤호텔에서 열린 제16차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손짓하고 있다. 2009.7.23 zjin@yna.co.kr |
(서울=연합뉴스) 미국이 북한 핵과 관계정상화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하고 나섰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북한이 비가역적인 비핵화에 동의하면 관계정상화를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기자회견에서 공언한 것이다. 이 발언은 북한을 비핵화 과정으로 복귀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포괄적 패키지' 개념이 국내외에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나와 주목된다. 그는 "북한이 비핵화에 나선다면 미국과 파트너들은 보상과 관계정상화 기회 등 패키지를 진전시킬 것"이라고 말해 대북 패키지에 관계정상화 카드가 포함돼 있음을 확인시겼다. 공이 북한쪽으로 넘어가는 형국이다. 이쯤해서 북한은 국제사회의 협상장에 돌아와 화답할 차례다.
클린턴 장관은 이 발언에 앞서 러시아-일본-한국-중국 순으로 외교장관과 양자회담을 진행했다고 한다. 특히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과 회담을 거친 것은 미국이 중국의 대북 영향력과 체면 등을 감안해 6자회담의 틀을 유지하면서 북한과 양자대화의 길을 새롭게 트려는 포석으로 본다. 내용적으로 미북관계 정상화와 평화협정, 대북 경제개발 지원 등 한반도 문제를 총괄할 패키지는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경색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북한문제 해결의 돌파구로 제시한 의미가 크다. 또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공약인 비핵.개방.3000을 바탕으로 지난달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먼저 거론했다는 대북 그랜드 바게닝과 일맥상통하는 '통큰 빅딜'로 볼 수 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ARF에서 클린턴 장관과의 회담에 이어 일본-중국-러시아 외교수장과 잇달아 만나 대북 패키지 협상안 등을 계속 협의해나가기로 한 것도 시의적절했다.
문제는 북한의 선택이다.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는 '한반도 비핵화'의 뜻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되새겨 핵프로그램 폐기로 돌아설 경우 미북 수교와 한반도 평화체제 등 다양한 포괄적 조치를 전망해 볼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채찍과 당근을 함께 내비치는 투트랙 전략의 중심추가 계속 봉쇄와 제재 쪽으로 기울어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더욱 더 고립무원의 처지로 빠질 것이다. 설사 북한이 제대로 된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군사력이 막강한 미국에 대적할 수 없고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론 등을 촉발해 한반도 정세는 더욱 불안해질 것이다. 북한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과 미국이 도발과 제재 강도를 높여가며 상대를 서로 궁지로 몰아가다 최근 대립 양상이 정점을 지나면서 다행히 비상구가 일부 열리고 있다. 불법 무기를 선적한 것으로 의심받던 북한 화물선이 미군 함정의 추적속에 정면 충돌하지 않고 결국 남포로 회항했다. 또 북한 국경을 불법 침입한 죄목으로 12년 징역형을 선고받은 미국적 여기자 2명의 석방 문제에 대해 클린턴 장관이 "매우 희망적"이라고 언급했다. 북한의 유엔 대표부 등을 통한 접촉이 주효한 것으로 본다. 동양철학의 원천인 주역에 나오는 "궁하면 변해야 되고, 변하면 통한다"는 원리가 상기되는 대목이다. 북한은 이러한 기류 변화의 기회를 최대한 살려 대미 협상에 즉각 나서야 한다. 핵과 미사일 개발 등에 들어갈 돈을 주민들의 식생활과 경제력 향상에 돌릴 경우 국제사회의 대북 이미지도 좋아지고 명예롭게 평화공존하는 길이 열릴 것이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9/07/23 17:27 송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