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도발 뒤에 협상 제안을 하는 것은 이제는 하나의 공식처럼 돼 있다. 그렇게 이뤄진 협상은 결국 북한이 국제 사회를 속이고 핵(核) 역량을 높이는 데 이용됐을 뿐이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이런 공식을 따르지 않겠다고 수차례 다짐한 만큼 북측의 제안이 당장 먹혀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지금의 교착 상태가 이어지리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은 북한이 전제조건 없이 6자회담에 나올 경우 그 틀 안에서 미·북 양자 대화도 적극적으로 한다는 입장이다. 북측은 24일에도 "6자회담은 영원히 끝났다"고 했지만 이 입장만 바꾸면 당장에라도 미·북 협상이 벌어질 수 있다.
북한이 앞으로 2~3년 안에 핵탄두 소형화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 우라늄 농축에 큰 진전을 이룰 경우 거꾸로 국제사회와 미국이 협상 압박을 받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금처럼 중국이 결정적인 대북 억지력을 행사하지 않고 현상 유지를 바란다면 그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결국엔 어떤 형식이 되든 미국과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되리라는 얘기다.
우리는 어떤 경우든 미·북 협상이 북핵을 기정사실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방향이 아니라 해도 미·북 협상과 그에 따른 결과로 우리가 져야 할 안보적·정치적·경제적 부담은 있을 수밖에 없으며, 그에 대해 미리 예상하고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북한이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로 갈 경우 미·북 관계 정상화,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대북 에너지·경제 지원 등 포괄적 패키지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그 패키지 안에서는 주한미군의 존재와 한국의 대북 경제지원이 핵심적 논의 내용이 될 가능성이 있다.
오늘부터 미국에선 미국과 중국 간의 첫 전략·경제대화가 열린다. 북핵 문제도 주요 의제라고 한다. 아무리 한·미 공조가 튼튼하다고 해도, 미·중 대화든 미·북 협상이든 우리가 빠진 자리에서 우리의 운명이 걸린 문제가 논의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우리의 발언권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현실적인 방안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그에 앞서 넓은 시야에서 중·장기 국가 전략을 준비하고 최소한 대북 문제에선 국내 통합을 이루는 것이 우선이다. 이번 대북 제재만큼은 북한의 태도 변화가 있을 때까지 지속돼야 한다. 그러나 당사자인 우리는 그 너머 국면 전환 후까지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