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이 공존하고, 내일을 내다보게 하는 빠른 변화도 일어나고 있다.
2010년은 중국 방문의 해다. 상하이 엑스포가 열리고, 광저우에선 아시안게임이 열린다.
'차이나스토리'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 이야기를 주간 연재로 쓰려 한다. 제대로 역사를 말하고, 문화를 느끼고,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려 한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마찬가지다. <편집자주>
따가운 햇살이 내리쬔다. 아직 푹푹 찌는 폭염이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한낮의 더위가 만만치 않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무더위가 찾아오면 각종 보양식을 즐겼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보신탕. 요즘에는 아가씨끼리 보신탕을 즐기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중국 대륙의 남서쪽에는 동으로 후난(湖南), 서북으로 쓰촨(四川), 남으로 광시(?西), 서남으로 윈난(云南)성에 둘러싸인 척박한 땅이 있다. 바로 구이저우(?州)다. 한(漢)족을 비롯해 포의(布依)족, 묘(苗)족, 이(?)족, 회(回)족 등 33개 민족이 뒤엉켜 살아가고 있다.
2억년 전 화석으로 추정되는 '구이저우롱(?州?)'이 발견되고, 구석기 시대의 유물도 쏟아져 나온다. 먼 옛날 바다였던 곳이 지각 변동으로 솟아올라 마령하협곡(??下峽谷), 화강대협곡(?江大峽谷), 만봉림(万蜂林)등 기기묘묘한 경관을 만들었다.
전통은 오늘로 이어졌다. 싱이(??)에서 만봉림 가는 길가에선 손쉽게 '개고기 파는 집(狗肉?)'의 간판을 볼 수 있다. 나후이 마을에선 귀한 손님이 찾아오거나 동네 잔치가 벌어지면 족히 20m는 됨직한 장탁(長卓)을 마당에 펼쳐 놓고, 정성껏 개고기를 대접한다. 우리네 삶과 다를 바 없다.
도수 50도를 웃도는 독한 백주와 함께 하면 시나브로 고향 생각에 빠져든다.
만봉림 가는 길은 아주 멀다. 인천에서 구이조우의 성도인 구이양(貴?)까지 3시간여 동안 날아간 뒤 다시 싱이까지 약 350km를 서남쪽으로 가야 한다. 중국 국내선 항공으로 40여분, 기차나 버스를 이용하면 5시간30분에서 6시간이 더 필요하다.
만봉림 앞 너른 협곡에는 '팔괘답(八卦畓)'이 일품이다. 태극과 팔괘의 모양이 절묘하다. 봄이 오면 노란 유채꽃이 금빛 물결로 일렁이고, 여름이 되면 녹색 마당이 펼쳐진다. 유채는 기름을 되고, 나물이 되어 식탁에 오른다.
먼 옛날, 만봉림 산 속에는 묘족과 동(?)족이, 협곡을 흐르는 냇가에는 포의족이 살았다. 척박한 산 속에서 살아가는 민족들은 벌판이 탐났다. 냇물을 사이에 두고 끊임없는 싸움이 이어졌다. 깊은 원한과 상처만 남았다.
어느 날 더 이상의 싸움이 무의미함을 알았다. 화해했다. 공존의 의미를 깨닫고 오늘에 이르렀다.
나후이는 20~30가구가 모여 사는 만봉림의 입구 마을이다. 2005년 설을 맞아 후진타오 주석이 이 곳을 방문했다. 구이조우의 성장(省?)이었던 옛 일을 잊지 않고 찾아주었다. 마을 입구 주차장에는 그 날을 기념해 커다란 사진을 광고판처럼 세워 놓았다.
만봉림에는 정겹던 우리네 시골 모습이 지금껏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낯선 이를 보고 떨떠름하게 짝 다리를 짚고 서 있던 청년들, 남루한 옷에 깊게 패인 주름 사이로 웃는 할머니, 포대기로 손녀를 업고 어르고 있던 할아버지, 해맑은 눈을 반짝이며 서로 손을 꼭 잡고 있던 어린 남매.
만개가 넘는 봉우리 사이마다 만개가 넘는 사람 이야기가 골안개처럼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