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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 포로 영영 버릴 건가

화이트보스 2009. 8. 4. 10:42

월남전 포로 영영 버릴 건가

입력 : 2009.08.03 23:02"월남전에 참전했던 북한군이나 월남전 한국군 포로를 본 적 있습니까?"

13년 전인 1996년 여름 이런 질문을 던지며 베트남 하노이를 돌아다녔다. 북한 공군이 월남전에 비밀리에 참전했다는 탈북자 제보를 받고 떠난 취재였다. 북한에 유학했던 북베트남(월맹) 민간인들과 월맹군 출신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돌렸다. 비밀의 열쇠는 하노이 공군박물관에 걸린 한장의 사진에서 찾을 수 있었다. 1967년 4월 하노이 북부 켄 군사공항 사무실에서 월맹 호찌민 수상이 조선인민군 창설 기념일을 맞아 보낸 선물을 월맹군 대표가 북한 조종사 10여명에게 전달하는 모습이었다. 북한군이 월남전에 참전한 사실을 한눈에 보여주는 사진이었다. 하노이 인근에 북한 조종사 무덤 10여기가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었다.

북한은 그 후 '천기(天機)'가 누설됐다고 여겼는지 2000년 4월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를 통해 1964~1970년 월남전에 공군과 공병부대가 참전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북한 공군은 월맹 국기가 그려진 미그 17·미그 21기를 몰고 미 공군과 공중전을 벌였다. 6·25 때 소련 공군이 중공 군복을 입고 참전한 것 같은 비밀 참전이었다. 북한 공군 전사(戰史)에 따르면 800여명의 조종사·정비사가 월남전에 참전해 80여명이 전사했다. 북한은 월남전이 끝난 뒤 참전 대가로 월맹측에 미군이 남긴 팬텀기 4대를 달라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해 한동안 월맹과 냉랭한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다고 한다.

남·북한은 이처럼 제3국에서 '자유세계 수호' '사회주의 형제국가 지원'이란 명목으로 대리전을 편 것이다. 우리나라 의무지원부대가 월남에 첫발을 내디뎠던 1964년에 이미 북한도 참전해 한국의 좌파들이 떠들던 '용병(傭兵)' 논란조차 이젠 무색해진 셈이다.

북한의 월남전 참전은 이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베트콩과 월맹은 우리 국군을 포로로 잡거나 납치하면 '참전 동맹국'인 북한군에 넘겨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월남전 포로는 없다"며 북에 간 군인들은 '자진 월북자'로, 그 가족들은 '빨갱이 가족'으로 내몰았다. 이번에 '월북' 누명을 벗고 '베트남전 1호 국군포로'로 인정받은 월남전 실종자 안학수 하사가 그런 경우였다.

이런 억울한 국군포로가 안 하사뿐일까. 월남전 실종자는 모두 4명으로 북송된 경우는 안 하사와 박종열 병장 등 2명이라는 게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하지만 8년여 동안 32만명이 참전해 5만여회에 걸친 전투에서 5000여명이 전사했는데도 실종자나 포로가 이게 전부라면 믿을 이가 없다.

실종자가 더 된다는 주장은 끊이지 않는다. 1968년 외출 중 베트콩에 붙잡혀 북으로 보내질 위기에서 탈출한 박정환 소위는 "한국군 대위 한명이 이미 북한에 갔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공작원 출신인 안명진씨는 한국 침투 교육을 받는 북한의 '이남화 교육관'에서 월남전에서 포로로 잡힌 장교 출신에게 '직각 식사'법을 배웠다고 한다. 월맹군은 1972년 안케 전투에서 사망처리된 맹호부대 부인호 일병을 생포했다며 그의 사진이 든 전단을 우리 군부대에 뿌리기도 했다.

미국은 월남전이 끝난 지 34년이 된 지금도 1500여명의 실종자를 찾기 위해 월남 정부와 협의해 실종자를 추적하고 유해 발굴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실종자와 포로를 안전하게 데려 오는 것을 최우선 정책으로 삼고 지구 끝까지 가서라도 유골 일부, 유품 한 조각이라도 찾아온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런 증언들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의 실종자나 포로, 유해가 없다며 눈감고 있다. 6·25 때 귀환하지 못한 국군포로가 북에 500여명이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도 50여년째 버려둔 게 바로 우리 정부이고 조국이다. 이들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조국의 부름에 기꺼이 응한 것뿐이다. 실종돼서 못 찾는 게 아니라 정부가 찾을 의지가 없는 것이다. 월남 정글에 남겨진 국군 전사자의 유해 발굴도 시급한 과제다. 팻말조차 없이 매장한 국군 묘지가 여럿 있다고 한다.

월남전은 결코 잊힌 전쟁이 아니다. 북녘 땅에 '포로'로 살아있을 국군 실종자들은 그들을 버린 조국을 탓하고 있을 것이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