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1945년 해외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는 150여만명에 달했다. 이들은 일본 본토나 홋카이도·사할린·남양군도로 떨어진 곳은 달랐지만 대개 돼지와 다름없는 대접을 받았다. 일본인들이 감당하지 못할 일에 혹사당하다 질병과 굶주림에 죽는 일도 흔했다. 사할린 해안에는 '레이세이'라는 악명 높은 낭떠러지가 있다. 일을 게을리한다며 조선인을 집어던졌다는 곳이다.
▶1945년 일본이 패전하자 조선인 징용 노동자들의 밀린 임금이 문제가 됐다. 지급 요구가 잇따르자 일본 후생성은 1946년 해당 기업들에 지시해 당시 돈 3억6000만엔을 모아 공탁(供託)시켰다. 1965년 한일협정을 맺으며 양국이 기왕 관계를 정상화하려 했으면 우선 징용 피해자들의 밀린 임금 문제부터 깔끔하게 처리했어야 했다.
▶"정부의 징용 피해자 위로금 정책에 문제 있다"며 피해자 후손이 낸 행정소송과 관련해 외교부가 "미불(未拂) 임금 공탁금은 65년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 3억달러'에 포함돼 있다고 봐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무상 3억달러'가 포항제철과 갖가지 사회간접자본을 건설하는 종잣돈으로 경제발전의 동력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무상 3억달러'를 강제징용 미불 임금을 받는 것으로 치자는 데에 징용 당사자들은 동의한 적이 없다. 그들의 피 묻은 돈을 토대로 나라가 이만큼 발전을 했으면 보답하는 방법을 더 찾아보는 게 정부의 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