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격수의 세계/미사일보다 더 무서운 ‘인간무기’

일당백 저격수, 적극적으로 육성하자

화이트보스 2009. 8. 21. 10:55

일당백 저격수, 적극적으로 육성하자

유용원 조선일보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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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파운드 폭탄 투하 등 공습 2회,
155mm 곡사포의 일제 사격,
M1 에이브럼스 전차 사격 10발,
약 3만 발의 자동소총 사격’



2004년 11월 10일 이라크 팔루자의 한 모스크를 향해 미 해병대가 퍼부은 공격이다. 적 1개
중대를 몰살시킬 만한 엄청난 공격이었다. 하지만 사실은 단 한 명의 적 저격수를 목표로 한 것
이었다.

이날 팔루자의 한 모스크에서 저항하는 이라크 저격수 때문에 미 제1해병원정대(MEF) 8연대
1대대 B중대의 공격이 하루 종일 좌절되자 미 해병대는 근접 항공지원과 포병사격·전차부대의
지원을 요구했다. 지원부대의 엄청난 화력 앞에 팔루자 시내의 10번 도로 주변이 초토화되고 연
기와 먼지로 뒤덮였다. 하지만 공격은 실패였다.

현장을 취재하던 뉴욕타임스의 덱스터 필킨스는 그의 기사에서 “But the sniper kept
shooting(그러나 저격수는 여전히 계속 사격했다)”라고 썼다. 어쩌면 단 한 명, 많아야 서너 명에
불과한 것으로 짐작되는 저항 세력 저격수 때문에 최정예 미 해병대 1개 중대는 하루 종일 제자
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라크전에서 저격수의 ‘위력’을 보여준 사례는 또 있다. 2005년부터 주바(Juba)라는 이름을
가진 정체불명의 이라크 저격수가 나타나 미군 143명을 사살했다고 주장했다. 바그다드 남부에
서 주로 활동한다는 주바는 단 한 발의 사격으로 목숨을 빼앗는 악명 높은 사격 솜씨로 유명세
를 날렸다.

미군 병사들은 어디에서 날아오는지도 모르는 총알에 목숨을 잃으면서 심하게 위축됐다. 저격
수가 미군과 동맹군 28명을 사살하는 모습을 담은 비디오가 지난해 10월 18일 미국 CNN 방송
에 공개돼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미군도 저격수 짐 질리란드 하사가 M24 소총으로 1,250미터
거리에서 적 저격수를 사살한 사실을 공개하면서 저항군의 심리전에 정면 대응하기도 했다.
한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존재였던 저격수가 이라크전을 통해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온갖
첨단무기가 등장한 21세기 디지털 전장에서도 여전히 ‘원샷 원킬’(One Shot one Kill)의 저격수
가 위협적인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저격수는 영어로 ‘스나이퍼’(Sniper)로 불린다. 이 용어는 야생 도요새와 비슷한 작은 새인 스
나이프(Snipe) 사냥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세기 후반 인도의 영국군 장교들 사이에서 스나이프 사냥이 유행했을 때 스나이프가 몸집이 작고
빨랐기 때문에 잡기가 매우 어려웠다. 이 새를 잡을 수 있는 능숙한 사냥꾼이 스나이퍼
로 불리게 됐고, 군대에서는 몰래 접근하는 기술을 가진 특등사수를 의미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스나이핑(Sniping)이라는 파생어가 생겨 군대에서는 적을 찾아서 쏘는 저격술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19세기 들어 주요 전장에서 저격수들의 본격적인 활약이 시작되면서 수많은 군인들이 희생됐
다. 각국 군대는 저격병을 양성하고, 소총 발달과 함께 정밀 사격술을 크게 발전시켰다.
군 저격수들의 기본 임무는 전장에서 높은 가치가 있는 표적을 찾아내 장거리 정밀사격으로
사살하거나 파괴하는 것이다. 적 지휘체계와 첨단 장비를 마비시키고 장병들을 심리적 공황 상
태에 빠지게 해 사기를 저하시키는 것이다.

제1, 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 베트남전 등에서도 많은 저격수가 활약했고 수많은 적군을 사
살한 전설적인 저격수도 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핀란드의 시모 하이하는 소련군 542명을
사살하여 소련군 기계화부대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제2차 세계대전 격전지였던 스탈린그라드에선 소련군에 바실리 자이체프라는 전설적인 스나
이퍼가 등장했다. 우랄산맥의 사냥꾼 출신인 자이체프는 스탈린그라드에서 하루 평균 30~40명
의 독일군을 사살했다. 부상으로 후송될 때까지 그가 사살한 독일군은 총 400여 명에 달한다.
그의 활약상은 영화화되기도 했다. 자이체프의 등장은 소련군이 일찌감치 저격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많은 스나이퍼를 다양한 방법으로 운용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저격수의 효율성은 베트남전에서도 입증됐다.
베트남 다낭 지역에서 활약한 17명의 저격수가 3개월간 올린 전과는 같은 기간 미 1군단 예하
의 어느 보병대대도 이루지 못한 것이었다. 베트남전에선 수백 명의 적군을 사살한 미 해병대의
저격수 카를로스 해치콕 상사가 ‘전설’이 됐다.

전문가들은 전문적인 저격수 1명이 1개 중대(100여 명)와 맞먹는 전력을 발휘한다고 말한다.
이런 분석은 통계로도 어느 정도 입증된다. 적 한 명을 사살하는 데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실탄
7,000발이, 제2차 세계대전 때는 2만 5,000발이, 베트남전에선 5만발이 소요됐다. 하지만 베트남
전에서 운용된 저격수는 단 1.7발로 적 한명을 사살했다고 한다.

우리 군에서도 몇 년 전부터 저격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듯하다. 특전사 707특임대
등 특수부대를 제외하고 일반 육군 저격수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5년 전인 2004년이다. 2006
년에는 육군 교육사령부에서 ‘저격수 운용’ 책자를 발간하면서 소규모 부대도 저격수를 운용하
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 군의 저격수는 소대별로 1~2명이 배치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걸음마 단계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이들은 사격 잘하는 인원으로 선발돼 상급부대에서 1주일 정도 훈련을 받는
데 장비가 K-2소총에 3~4배율의 조준경을 단 것이 고작이라고 한다. 전문 저격소총은 꿈도 꾸
기 힘든 게 현실이다.

육군에 비해 해병대는 일찍부터 저격수를 양성해왔다. 해병대는 전군에서 처음으로 2003년
저격수 교육과목을 편성했고, 이듬해 4월, 41명의 저격수가 처음으로 배출됐다. 해병대 저격수
훈련은 1년에 2번, 70여 명을 대상으로 한다. 3주간의 특수 훈련을 받은 해병대원들은 전문 저
격소총인 SSG-3000을 사용하며 수색대 저격팀이나 사단과 연대의 저격소대에 배치된다.

지난해부터는 육군 수도방위사령부에서 예비역 저격수 양성에 착수했다. 각 예하 부대 예비
군 중 현역 시절 저격수 경험이 있거나 사격 훈련 성적이 좋은 사람들을 골라 저격수 훈련을 따
로 시키고 있는 것이다. 수방사 예비군 중 저격수 훈련을 받은 인원은 지금까지 2,500여 명인데
6,000여 명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수방사는 이를 위해 저격수용 소총과 개당 20만~
30만 원 나가는 조준경도 계속 들여올 예정이다.

수방사 관계자는 “도시 지역에서 특수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저격수가 많이 필요하다. 현역 군
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예비군들을 따로 훈련시켜 역할을 나눠 맡기기 위해 이 같은 제도를
도입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군의 저격수 양성은 북한이나,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도 많이 뒤떨어져 있
다는 생각이다.

북한은 분대 당 1명의 저격수를 배치, 총 규모가 1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저
격수는 사거리가 800미터인 드라구노브(Dragunov) 저격총과 자체 개발한 반자동식 7.62mm
저격소총을 사용하고 있다. 소련 제88특별저격여단 소속이었던 김일성은 6·25전쟁 때 저격수를
활용했다.

미 해병대는 저격수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부대로 전해진다. 1개 대대당 18명의 저격수
가 있다. 저격수와 관측수가 짝을 이뤄 9개조가 활동한다. 1977년 저격수 양성학교를 세웠고 매
년 45명을 배출했다. 미 육군은 1987년 보병학교에 저격수 학교를 세웠고 현재 대대마다 1개의
저격소대가 있다.

영국군은 모든 소총에 조준경을 달아 전 장병의 저격수화를 시도하고 있으며, 일본 육상자위
대도 저격수 부대를 운용하고 있다. 프랑스, 이스라엘, 중국도 보병 부대의 분대당 1명의 저격수
를 활용하고 있다.

우리 군의 저격수 양성은 예상보다 빨리 현실화할지 모를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시급하다. 북한 급변사태로 인해 북한 지역 내에서 안정화 작전을 펴야할 경우 북한 반군 또는
저격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선 상당한 규모의 저격수가 필요할 것이다. 시가지 전투에서 저격
수의 유용성은 이라크전이나 아프가니스탄전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이제 우리 군도 ‘저격수 1만명 양성’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적극적인 육성에 나서면 어떨까?